[문화매거진=벼내림 작가] 올해 내 포지션은 ‘보는 사람’이었다. 창작보다 무언가 시청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보는 재미가 더 크게 느껴져 그랬던 걸까. 첫 시작이 ‘인피니티 풀’인 건 아직도 놀랍다. 새해에 볼법한 잔잔하거나 훈훈한 영화는 아니어서. 같이 일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호기심이 생겨 보았는데 무지막지하게 기이한 에너지를 가진 영화다. 불쾌한 만큼 미친 듯 강렬했다. 하도 기괴해서 감독을 검색했더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아들이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자주 접하지 못했지만 ‘엑시스텐즈’와 ‘네이키드 런치’를 보고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 여겼는데 그의 아들도 독창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크로넨버그’라는 이름(성)부터도 굉장히 아우라 있다. 가만 보면 내가 좋아하는 독창적인 세계를 가진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름도 멋있다. 떠오르는 대로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름도 멋진 사람들: 천계영, 박찬욱, 신하균, 공리, 이토 준지, 콘 사토시, 킬리언 머피, 리버 피닉스, 미아 고스, 모니카 벨루치, 헬레나 본햄 카터, 산드라 휠러, 틸다 스윈튼]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인피니티 풀’이 강렬했어도 1월에 본 영화 중 나를 가장 사로잡은 인물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스즈메’였다. ‘우에노 주리’는 원체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지만 여기선 곱절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마 이 영화를 아는 이라면 귓가에 울리는 대사가 있을 것. “휏휏휏휏 아즈키 판다짱~!”하는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하다.
원래는 숫자로 달의 구분이 되어있던 맨 왼쪽 부분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의 사진을 붙여두었다. 그래서 1월의 자리엔 스즈메를 연기한 우에노 주리가 있다. 인물 사진만 따로 놓고 보아도 흡입력이 있다. 왜 사로잡혔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는 이미지들. 달마다 한 명씩만 붙여두기로 규칙을 정해두고 10월과 12월은 지키지 못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그냥 전부 붙여버렸다.
특히 12월에 있는 ‘마가렛 퀄리’는 2장이나 붙일 수밖에 없었다. ‘서브스턴스’라는 영화인데 이 작품은 ‘인피니티 풀’보다 더 충격적이다. 나처럼 영화를 고르는 데 있어 시각적인 부분이 가장 큰 요소를 차지하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다. (단, 잔인하고 무서운 걸 보지 못한다면 굉장히 힘들 수 있다.) 올해 단 하나의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서브스턴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의 스토리만 공개되었을 때부터도 끌림이 강해 개봉날 바로 극장에 달려갈 정도였다. 끝의 끝까지 폭주해 보고 난 후에도 여운이 깊었다.
영화로 올해를 돌아보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다.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영화 진심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마음에 드는 새 별명이다. 올해 131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골고루 섭취했고 잘 소화했다. 한눈에 볼 수 있게 포스터 달력에 기록한 점은 칭찬해 주고 싶다. 좋은 도전이었다.
올해 포스터는 대략 A1 사이즈였으니 내년엔 좀 더 큰 A0에 기록하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틈틈이 책도 많이 읽었는데 칸이 좁아 같이 기록을 못 한 부분은 아쉽다. 내년엔 내가 본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싶다. 흐릿해지는 모든 기억을 기록으로 붙잡아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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