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화를 상징하는 4개의 사과 이야기는 아는 사람이 많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과인 아담과 이브의 사과, 즉 선악과는 서구를 대표하는 기독 신앙 문화를 상징한다. 두번째 사과는 파리스의 사과, 즉 그리스 로마 문화를 상징하는 사과이다. 세번째 사과는 윌리엄 텔의 사과이다. 이 사과는 서구에서 먼저 구체화되기 시작한 자유와 독립, 인권, 민주제도를 상징하는 사과이다. 마지막 사과는 뉴턴의 사과이다. 이 사과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 문화를 상징한다.
이런 서구 문화의 모티브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기독 문화를 상징하는 선악과는 메시아 사상을 담고 있다. 이런 메시아 사상은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캐릭터는 슈퍼맨이다. 슈퍼맨은 다양한 면에서 메시아적 캐릭터 특성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을 구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슈퍼맨의 모습은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나우시카의 모습도 메시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는 많은 명작을 남겼지만, 대표작 중 하나로 빠지지 않는 것이 ‘피에타’이다. 경외, 공경 등을 의미하는 ‘피에타’는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말한다. 게임에서 기독 문화를 모티브로 한 대표적인 게임은 기념비적인 인디게임 ‘아이작의 번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 게임은 기독 문화의 중심인 성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한 서사를 이삭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서사의 형태로 재해석하여 스토리 구조를 설계하였고, 인간이 가진 원죄를 기반으로 다양한 상징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문화를 상징하는 파리스의 사과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로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어진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고, 그 대가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취하게 된다. 이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다. 트로이 전쟁은 영화 트로이처럼 직접 그 이야기를 영상화 하기도 하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처럼 문학 작품으로 남기도 했다.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연인’은 대양의 신 아폴론과 요정 다프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고, 그 외 수 많은 콘텐츠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게임에서 대표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한 것 중에는 ‘갓 오브 워’가 있다. ‘갓 오브 워’에서 신들도 타락할 수 있고, 신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며, 인류에게 그런 부조리를 극복할 희망이 있으며, 타락한 권력과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뉴턴의 사과가 상징하는 과학 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SF 소재 콘텐츠를 통해 너무 많이 다루어져 하나하나 소개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윌리엄 텔의 사과는 자유, 독립, 저항, 민주제도, 인권, 권리와 책임에 대한 부분으로 많이 나타난다. 이런 의식을 담은 대표적인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가 있다. 이 영화에서 인조인간 레플리칸트는 창조주인 인간이 되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인간으로부터 벗어난 자유 의지의 인정을 받고자 하고, 인간의 지배에서 독립하고자 저항하고, 자신들의 인격체로서 권리를 가지고자 한다. 이는 다양한 신화와 문학에서 나타나는 신으로부터의 독립과 저항, 창조주와 닮아가고자 하는 인간 등의 모습과 유사하다.
게임에서는 제목부터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니어 레플리칸트’같은 게임도 있고, 신에게 가고자 하는 인간과 인간에 가고자 하는 인조인간을 모티브로 자유의지와 독립, 저항 등을 표현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같은 게임도 있다. 최근 12.3 비상계엄을 소재로 국민들의 저항과 자유의지, 민주제도에 대한 의식을 보여주는 인디게임 ‘서울의 밤’이 출시되었다. 짧은 시간에 제작된 게임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게임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과 주제 의식을 잘 표현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문학, 미술, 영화 등 다른 콘텐츠에 비하여 오락적 요소가 부각되어 가벼운 콘텐츠로 무시되는 경우가 많지만, 게임은 결코 가벼운 콘텐츠가 아니다. 게임이 다른 콘텐츠가 차별화된 가장 뚜렷한 특징은 상호작용성에 있다. 게임은 경쟁이 본질이며, 그런 의미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게이머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그 선택을 통한 게임의 진행은 게임의 본질을 구현하는 것이다. 게임은 다양한 선택을 게이머에게 요구하고 그 선택은 다양한 형태의 철학적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게임은 개인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에서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결정을 확인하는 상호작용성을 가지고 있다. 계엄에 대한 영화가 나오려면 멀었지만, 게임은 이미 나왔다. ‘서울의 밤’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실제 우리 삶은 아니더라도 게임 속 국민들의 삶에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제도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의 선택은 미래의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당신이라면 12.3 비상계엄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게임은 결코 가벼운 오락 콘텐츠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보다 만화보다 혹은 문학보다 더 무섭게 게이머의 철학적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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