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한국 소설가 한강이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명소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21명 가운데 여성으로는 18번째 수상이며, 아시아 여성 최초의 수상이다.
한강은 "문학 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전했다.
“언어는 실을 따라 다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을 만나는 일”
한강은 10일(현지시각) 밤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 열린 연회에서 1300여명의 청중을 향해 수상 소감을 전했다.
한강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우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고 물으며 문학의 재료가 되는 언어를 말했다.
이어 “가장 어두운 밤에도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진 존재인지 묻는 언어가 있다. 이 행성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살아있는 존재들의 관점에서 상상하도록 요청하고,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다”며 “이 언어를 다루는 문학 작품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갖고 있다.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행위는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와 반대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강은 8살 때 주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있었던 일을 전하며 “한낮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스무명 정도의 아이들은 처마 밑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다. 길 건너편 처마 밑에도 작은 아이들 무리가 있었다.
한강은 이들의 무리를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며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길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로서 살아가고 있었다”라고 했다.
이어 “내 얼굴이 비에 축축하게 젖은 것처럼 그들도 같은 것을 느꼈다. 이렇게 많은 1인칭의 관점들을 느낀 건 경이로운 순간이었다”고 했다.
이후 읽고 쓰는 시간을 통과하며 한강은 “이 경이로운 순간을 몇 번이고 반복해 살았다”며 이는 “언어의 실을 따라 다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을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이날 한강은 연회 말미에 연회장 가운데로 이동해 약 4분 동안 소감을 말했다.
엘렌 맛손 “친애하는(dear) 한강” 청하자 기립박수 쏟아져
노벨상 시상식은 앞서 현지 시각 오후 4시부터 시작됐다. 칼 16세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이 입장하자 오케스트라 연주로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한강이 예상대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검은색 클러치도 들려 있었다.
한국인이 처음으로 노벨상 시상식장에 깔리는 ‘블루 카펫’을 밟는 순간이었다. 한국인 첫 노벨상 수상자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상했었다.
한강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입장하자 수상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로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 등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단상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부터 물리학상·화학상·생리의학상·문학상·경제학상 수상자 순으로 자리에 앉아 한강은 왼쪽에서 아홉 번째 의자에 착석했다.
물리·화학·생리의학상 시상이 끝나고 문학상 차례가 됐다. 앞선 수상자들의 업적이 영어로 소개됐던 것과 다르게 문학상은 관례에 따라 스웨덴어로 설명됐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 위원인 엘렌 맛손이 스웨덴어 연설을 통해 한강의 문학세계와 그 의의를 밝혔다.
엘렌 맛손은 이날 ‘2024 노벨상 시상식’ 문학 부문 시상 연설에서 한강의 작품 세계를 흰색과 빨강, 두 색(色)에 비유했다.
맛손은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 보호막을 긋는 역할을 하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면서 “빨간색은 삶,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통과 피를 의미한다”고 짚었다.
노벨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를 호명하는 마지막 문장은 수상자의 모국어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날 맛손은 영어로 한강을 호명했다.
맛손은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따뜻한 축하를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한국어로 말하기 위해 준비를 했으나, 한국어 발음이 어려워 영어로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강이 바로 국왕 앞으로 나와 노벨문학상 증서와 메달을 받자 장내에서는 기립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스트디르 비딩 노벨재단 이사장은 “문학상 수상자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인간의 연약함을 탐구했으며, 심연과 변화에 대한 갈망은 항상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인간의 숙명적인 조건을 조명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한강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21명 가운데 여성으로는 18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아시아인으로는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를 제외하고 2012년 중국 소설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고, 아시아 여성으로만 따지면 최초의 수상이다.
앞서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10일 한강을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의 작품들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했다.
앞서 2007년 출간한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2024년에는 노벨문학상 까지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노벨상은 스웨덴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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