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인생 책’이 있듯, 한 권의 책은 작게는 생각의 전환을, 크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해준다. 소설은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고, 실용서는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고, 자기 계발서는 성공으로 가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렇다면 인문서는 어떨까. 인문서는 어떠한 감정의 기복을 가져다주지도, 이렇다 할 명확한 답을 내놓지도 않는다. 그저 생각해 볼만한 여러 맥락을 제공하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답을 알려주지 않으니 스스로 찾아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럼 왜 우리는 인문서를 읽는 걸까. 을유문화사 김경민 편집장은 “글을 통해 ‘다른 현실’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와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내 일상에 적용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것을 내 삶에 응용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인문서를 읽는 게 아닐까. 한 권의 유용한 인문서가 어떻게 우리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김경민 편집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지난 8월, 노년의 삶을 이야기하는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가 출간과 동시에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나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작업이었어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품게 되는 질문인데, 저마다 추구하고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고, 그렇다 보니 명확한 답을 얻기란 쉽지 않잖아요. 마흔 중반에 들어서니까 그러한 고민들이 한층 더 깊어지고, 질문이 점차 의문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전에는 비교적 납작하게만 인식되었던 문제였다면, 지금은 입체화되어 제 앞으로 쭉 당겨진 느낌이었죠.
그래서 중·장년층, 노년층과 관련된 책들을 마구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백 세 시대에 나이 오십을 기점으로 인생 2막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대부분 건강이나 재테크 분야에서의 변화를 많이 언급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는 ‘내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정체된 일상에 어떠한 변화를 일구면 좋을까’와 같이 좀 더 정서적인 측면을 다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저한테 필요한 얘기이기도 했고요. 그러다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원고를 접하게 됐고,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나이 든다면, 늙어가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책 출간까지 할 수 있게 되었죠.
Q. 최근 출판계 경향을 보면, ‘나이듦’, ‘웰에이징’ 등을 주제로 한 도서들이 늘어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역시 노년기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만이 말하고 있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요.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삶의 자기결정권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늙어 가는 것”이라는 문장이 확 와 닿았어요. 내가 맘먹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모습을 만들어간다는 거잖아요. 제가 추구하는 바가 그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었고, 그렇다 보니 어떤 책인지, 저자가 앞으로 더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해졌죠. 특히 저자가 심리학 교수였기 때문에 정서나 마음 쪽으로 초점을 맞춰 책을 집필했다는 게 더 크게 다가왔고요. 저자가 본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경험, 그리고 심리 상담을 진행하면서 치료받았던 분들의 얘기들을 다 녹아냈어요. 아무래도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 사례에 더 눈이 가곤 하잖아요. 여러 사람의 데이터가 한데 다 모여져 있으니 비슷한 주제의 다른 도서보다 잘 읽히게 되는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 공감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공감 가는 부분은 정말 많았어요.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편집자분들과 얘기를 종종 나눴는데, 많이들 제 나이 때부터 노화를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기억력도 좀 떨어진 것 같고, 노안 증상 등 다양한 신체적인 부분도 그렇고, 그밖에도 책에서 언급되는 노안에 관한 얘기들이 꼭 제 얘기 같아서 크게 와 닿았어요. 한 80% 정도는 다 저에게 해당되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노년을 다룬 책에 관심을 보이는 독자층 절반 이상이 40~50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주 독자층이 제 나이 또래인 거예요. 노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앞으로 노년을 준비하는 세대들에게 더 유효한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젊은 친구들도 마찬가지고요. 책을 읽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랬나 봐요.
Q.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책 속에 유머를 다룬 부분이 있어요. 웃긴 거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저도 웃긴 거 좋아하고, 남들이 저 때문에 웃으면 기분 좋아지고 뿌듯해하는 사람 중 한 명이거든요. 그래서 회의할 때 분위기를 좀 띄우고, 좋게 만드는 역할을 자처하기도 해요. 저자분들하고 관계가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는데, 상대방과 농담 주고받고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이러한 성격이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유머는 노년에게도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해요.
책에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잦아지는 실수를 어떻게 유머로 전환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있어요. 한 사례를 소개해드리면, 본인 생일 파티에서 음식을 급하게 먹다가 음식물을 튀기면서 재채기를 한 할아버지 얘기가 나와요. 난감하고 민망할 수 있는 상황인데, 할아버지는 “여러분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세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밥을 지저분하게 먹는 장난꾸러기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요. 이 같은 사례를 보면서 유머 감각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죠.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을 편안하게 만드는 유머가 어쩌면 가장 힘써야 할 자기 계발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비단 노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기도 하고요. 유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점에서 책은 또 다른 특별함을 지니는 것 같아요.
Q. 저자분들과의 원활한 소통 역시 편집자로서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들었어요. 유현준 작가님과 10년 정도 작업을 같이 진행했다고 들었는데, 한 명의 저자와 오랜 인연을 맺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사실 한두 권 작업한다고 해서 신뢰가 많이 쌓이지는 않아요. 처음 유현준 작가님과 작업한다고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원고를 확인했는데, 그때 원고가 너무 좋았어요. 제가 기획한 책이 아님에도 애정을 쏟을 수 있던 이유였죠.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글이 계속 읽히는 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요. 그래서 최대한 독자들이 편하고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어요. 그런 점들이 유효하지 않았나 싶어요. 작가님이 준 원고를 충분히 이해하고, 성심껏 작업하고, 그걸 완성도 높은 책으로 만들어가며 조금씩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그 이후로는 제가 전담이 되어 계속 작가님의 책을 기획할 수 있었죠. 내년에도 작가님의 책이 출간될 예정인데, 공간과 인간에 관해 역사적으로 다루는 내용이라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것 같아요.
Q. 편집자로서 새로운 책을 기획하거나 출판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고려하는 요인이 있다면요.
책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물이잖아요. 그래서 유행을 너무 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출판사마다 성격이 다 다르겠지만, 저희는 인문서를 주로 기획하고 있어서 그런 부분에 더 주의하면서 작업을 하려고 해요. 물론 시대의 흐름은 살펴야 하지만요.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도 노년에 관한 책이 길게 갈 유행이라고 생각해서 진행하게 된 거예요. 노년층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그럼 관심을 꾸준히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 관심사도 중요한 것 같아요. 관심이 있으면 더 공부하게 되고, 결국 그게 좋은 기획을 만들어내더라고요.
Q. 그럼 앞으로 나올 책들이 편집장님의 관심사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아마도요. (웃음) 최근에는 철학에 빠져 있어요. 이전에는 철학이 뻔한 얘기를 일부러 어렵게 꼰다고 생각했었는데, 조금씩 파고 들다 보니 제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어요. 철학에 관심은 있어도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것을 탐닉하고 잘 모르는 분야를 배워가는 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됐어요. 그게 인문서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사고의 범위가, 내가 가진 시야를 계속해서 넓혀주잖아요. 책 한 권의 편집이 끝남과 동시에 저에게는 책 한 권의 지식이 쌓이는 것. 편집자라는 직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죠. 개인적으로는 멀쩡하게 살려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거예요. (웃음)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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