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개인 AI영화 제작 시대’가 도래했다. 장비, 인력, 장소 등 수많은 제작 비용과 절차가 필요한 영화를 개인이 생성형 AI로 만들 수 있게 되면서다. 미술 비평가이자 전시기획자로도 활동 중인 심은록 작가는, 이 생성형 AI를 통해 총 한 달간을 들여, 노트북 한 대로 영화 ‘AI 수로부인’을 제작했다. 전통적인 영화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형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최근 AI 영화로는 최초로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AI영화 제작론』을 출간했다. 200여 개의 생성형 AI를 소개하며 종합예술로서의 영화 제작법을 알려준다. 더불어 일반인공지능(AGI)의 도상에서 21세기 신인류인 ‘호모 AI’의 인간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AI영화 이론’을 구축하기도 한다. 시간도, 돈도, 네트워크도 없지만 '나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던 사람이라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AI 수로부인’은 어떤 영화인가요?
현대미술과 한국고전을 엮은 영화입니다. 1984년 1월1일, 백남준은 위성을 이용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해 실시간으로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했죠. 올해가 그 40주년 입니다. ‘AI 수로부인’의 프롤로그에서 백남준은 시공간을 넘어 소통하게 되고, 수로부인을 불러냅니다.
본론은 『삼국유사』의 내용대로,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 때,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純貞公)이 태수 부임을 위해 강릉으로 가는 길에서 모든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를 몰고 가던 노인(영화에서는 ‘하늘 신’)이 높은 벼랑 위에 핀 철쭉꽃을 꺾어 주며, 수로부인을 위해 ‘헌화가’를 부릅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수로부인은 우주를 여행하게 되고, 미래 우주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겪게 됩니다. 노래가 끝난 후, 다시 강릉 가는 도상에서 바다의 용에게 납치됩니다. 이에 백성들은 부인을 구하기 위해 ‘해가’를 지어 부릅니다. 제의적인 의미도 있지만, 전쟁, 힘, 권력, 자본이 아닌 '예술'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 제게는 감동적이었고, 회복되어야 할 예술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수로부인을 주인공으로 삼게 됐고요. 샤머니즘을 통한 ‘자연에 대한 존중’과 AI의 도움으로 인한 우주적 소통을 다뤘습니다.
Q. AI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요.
손영호 나라지식정보 대표님이 ‘개인 영화 제작 시대를 앞당기는 K-AI 영화를 만들자’고 하셨고, 이에 ‘AI 수로부인’이 제작됐어요, 환경, 조건 특히 재정적 제약으로 꿈을 접었던 분들도 AI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회사의 모토가 “역사가 없으면 AI도 없다”로, 제1세대 AI 영화 툴의 초기 모습을 역사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작업을 최대한 자제하며, 2023년 10월까지의 AI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시놉시스, 시나리오, 더빙, 영상, BGM, 음향효과 등 모든 분야를 52개의 AI 툴을 사용하여 생성했습니다. 지금 이 영화를 보면, 1년 전과 후의 AI를 생생하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 고전이 주제였기에 세계 스타일과 한국 것의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했습니다.
Q. 일상 속 AI가 차지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미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AI를 사용하고 있는데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저희는 제4차 산업혁명에 와있습니다. 작년부터 ‘산업’ 대신에 ‘지능’을 넣어 지능혁명이라고 일컫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공지능’의 무게가 커졌고, 21세기의 도구는 AI라는 의미입니다. 베르그송은 인간을 “Homo Faber(도구인)”으로 정의하고, “인간의 본질은 물질적·도덕적으로 창조하고, 사물을 만들고 자신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에 근거하여, 21세기 인간은 AI를 도구로 삼는 ‘Homo AI’라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AI영화 이론’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푸코의 ‘인간의 죽음’ 위에 인간론을 부활시켜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고, 아직도 다양한 난관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Q. AI 영화에 이어 AI를 담아낸 책 『AI영화 제작론』이 출간되었습니다.
‘AI영화’를 제작했기에, 그 다음 단계로 『AI영화 제작론』을 쓸 수 있었습니다. 현재가 AI영화의 초창기이기에 가능한 균형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인 것처럼, 우선, ‘경험’과 ‘이론’을 겸비하고자 했습니다. 책의 전반부에는 ‘AI 수로부인’을 만들면서 사용한 생성형 AI 툴의 사용법을 비롯해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정보들을 담아냈습니다. 후반부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21세기 인간학에 근거하여 ‘AI영화이론’을 제안했습니다.
다음으로, AI영화도 '제7의 예술'이기에. 이 책은 200여개가 넘는 생성형 AI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리치오토 카누도(Ricciotto Canudo,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 이론가)는 영화를 '제7의 예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는 일곱 번째 나온 중요한 예술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의 여섯 개 예술의 총체적 조화라는 것입니다. 즉, 영화는 "공간의 리듬(조형예술: 건축, 조각, 회화)과 시간의 리듬(음악과 시, 이후, 무용 추가)의 탁월한 조화"라고 했습니다. 이 여섯 개는 각각 또 다른 분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분야와 관련된 툴을 몇 개씩만 소개해도 금방 200개가 넘어 버립니다.
『AI영화 제작론』은 많은 생성형 AI툴과 다양한 이론을 담고 있기에, 이 책만을 위한 ‘책봇’이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관련 페이지 숫자까지 알려줍니다.
Q. 책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첫째는 빠르게 발전하는 AI의 속도감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생성형 AI툴의 홍수 가운데 방황하는 분들을 위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AI 영화는 아직 제1세대에 머물러 있지만, 저는 과감하게 제5세대까지 전망했습니다. 이는 제가 임의적으로 구분한 것이 아니라, 수십 편의 생성형 AI관련 백서를 읽으면서 얻어진 자연스러운 열매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2022년 11월 챗GPT발 태풍과 함께 인식론에 대해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보다 더 빠르거나, 강하거나, 더 아름답거나 혹은 더 애정이 있는 생물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성과 지식이 있기에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LLM의 등장으로, ‘이성이나 지식’ 위에 세워졌던 토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피언스(지혜)’를 두 번이나 강조하며 우월성을 자랑했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자존감이 LLM앞에서 풍전등화가 되었습니다. ‘지식’(Sophia ‘지혜, 지식’)을 ‘사랑한다’(Philein ‘사랑하다’)는 ‘필로소피아(Philosophia, 철학)’도 그러하며, 이러한 ‘소피아’ 위에 있는 철학의 제4분과 중의 하나인 ‘에피스테몰로지(Epistemology 인식론: [지식] 위에(epi-) 서있다(-stēmē))에 대한 전면 검토가 필요해졌습니다. 이러한 인식론적 붕괴로 암담한 가운데, 성파스님의 ‘선예(禪藝)인식론’은 제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Q. AI영화를 5세대까지 구분하셨다고 하는데, 짧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1세대 AI영화는 크게 판타스틱(호러 포함), 애니메이션, 미디어아트 스타일이 있는데, 이는 올해 앞다퉈 개최되고 있는 AI영화 페스티벌 공모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현재 AI툴은 일관성(Consistency)이 없고, 보디 디스토션(Body Distortion)이 심한데, 이를 장점으로 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판타스틱 스타일입니다. 또한 AI툴은 오브제나 캐릭터를 귀엽게 잘 생성하기에 애니메이션에도 적당합니다. 미디어아트 스타일은 올해보다 작년에 더 빈번했는데, 구상적으로 재현이 힘들었기에 추상적 미디어아트 스타일이 많았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뛰어난 미적감각이 필요합니다.
제2세대 AI영화는 다큐스타일이라고 명명했는데, 좀 더 정확히는 물리적 세계 재현을 의미합니다. 2세대의 가장 좋은 예시는 2월 15일, 오픈 AI가 제시한 소라 영상들입니다. 그런데 오픈AI는 1세대 문제인 일관성이나 보디 디스토션을 해결했다는 것보다 “월드 시뮬레이터로서의 소라”를 강조하며, 실제 물리적 세계를 시뮬레이션한다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제3세대는 감성적인 면의 발전과 생성형 AI 3D툴의 발전입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대본이나 감독은 AI가 대체할 수는 있지만, 배우는 그럴 수 없다”고 했는데, AI가 감성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지의 여부가 AI영화의 변곡점이 될 것 같습니다.
제4세대는 AI영화가 모든 분야에서 일반영화와 같아지는 수준입니다. 여기까지는 인간이 할 수 있지만, 시간적 재정적으로 AI가 효율적으로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제5세대는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AI가 도와줘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합니다.
Q. AGI/ASI시대의 AI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책에서도 상세히 설명했지만, 지금 AI의 속도는 그래도 인간이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AGI에 이르면 ‘지능 폭발’이 일어나서 곧 ASI에 이르게 되고, 그때는 인간이 AI를 이해하는 것도 컨트롤하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제가 책이나 영화에서 AI의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부머(boomer)라고 알고 있는데, 저는 ‘예술의 부머’이지 ‘AI의 부머’는 아닙니다. 제게 있어서 AI두머(doomer)의 입장은 간단하고 강렬합니다. ‘인류가 사라진다’는 결론인데, 그러면 그 뒤에 더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AI가 인간의 한계를 명료하게 인식시켜 주고 외부와의 소통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3년 10월, AI는 인간은 만질수도 펼칠 수도 없었던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불에 탄 2000년 된 두루마리를 판독해 냈습니다. 2024년 7월, AI는 375개의 백색왜성을 효율적으로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AI는 시공간적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AI는 바쁜 세상에 스쳐 지나가며 놓친 것을 상기시켜줄 수도 있고, 소소한 것 뒤에 숨겨져 보지 못했던 것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AI가 알려준 이러한 것들을 담아 영화로 구현하여 우리 모두 향유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미래의 AI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은록 감독의 신간 『AI영화 제작론』에 대해 전찬일 평론가(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는 “이 책의 으뜸 덕목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으리만치 자세하며 겸허하게 ‘AI 수로부인’을 만들면서 깨달은 시행착오들과 한계를 전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읽다 보면, 저자와 동료들이 흘렸을 ‘피, 땀, 눈물’이 생생히 떠올라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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