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소설 '블러핑'17] 명성황후 살해뒤 대원군에게 책임을 떠넘길 음모 꾸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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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소설 '블러핑'17] 명성황후 살해뒤 대원군에게 책임을 떠넘길 음모 꾸민 일본

헤럴드포스트 2024-10-15 04:1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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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1885년 민씨 정권이 친러 성향을 보이며 청나라를 견제하려 하자, 청나라는 원세개 의 주선과 정치적 계산에 의해 톈진의 보정부에 구금되어 있던 흥선 대원군을 4년 여 만에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1885년 8월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착한 대원군은 운현궁에 칩거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대원군은 고종이 명성황후에게 휘둘린다고 단정하고 고종을 폐위하는 계획을 세웠 다. 고종을 폐위한 뒤 자신을 빼어 닮은 손자 이준용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계속 시도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2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기 4시간 전, 강녕전에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명성황후의 정치적인 맞수였던 대원군이었다. 그 당시 대원군은 별장인 아소정에서 외부와 차단한 채 은둔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일본 군대가 아소정을 침입하여 대원군을 강제로 끌어내어 가마에 태우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명성황후 시해 현장에 대원군을 데려다 놓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옥호루 밖 뜰 앞에는 40여 명의 훈련대 소속 병사들이 총을 내린 채 정열하고 있다. 훈련대는 1895년 일본이 조선의 군사력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조선 군대다.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대원군과 훈련대에 전가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삽화=윌리엄
삽화=윌리엄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주모자로 대원군을 이용하려고 했다.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새벽 5시에 총성이 울렸다. 이것이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신호탄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일본군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궁궐의 북서문인 추성문과 북동문인 춘생문으로 쏜살같이 공격해 들어갔다. 궁궐의 양쪽에서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자, 궁궐을 방어하던 시위대는 싸울 엄두도 못 내고 모두 달아났다. 광화문은 15분 만에 일본군에 의해 장악되었다.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5분 정도였다. 일본 군대의 목표는 궁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처인 건 청궁이었다. 황후의 침전인 옥호루로 통하는 모든 문들은 일본군 보초들이 지키고 섰고, 옥호루 안팎은 일본군 장교와 양복과 기모노를 입은 일본 낭인들이 황후를 찾기 위해 휘젓고 다녔다. 

[팩션소설 '블러핑'18]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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