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에 대한 기록으로 남은 그림이 없어 징기스칸 4 일러 사용)
금나라의 장수
완안진화상 (1192 ~ 1242)
생몰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당시는 몽골 제국이 죄다 패 죽이고 다니던 시기임
금나라는 서하, 호라즘, 중동국가들 과는 다르게 끝까지 맞짱 뜨며 20년을 버텨냄
이거보다 더 질기게 버틴건 40년을 버틴 남송 뿐
그 칭키즈 칸 마저 금은 급히 멸망시키기 어렵다며 신중하게 하라고 유언을 남김
이런 끈질긴 금나라를 조져버리기 위해 몽골은 1228년 다시 대규모 침공을 시작하는데
이때 혜성같이 완안진화상이 등판함
원래 완안진화상은 군무를 보다가 월권행위를 저질러서
사형되었어야 했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형이 집행되지 않고 감옥에서 계속 지내고 있었음
그러다가 똑같이 금나라의 장수였던 완안진화상의 형이 죽자
금나라 황제가 사면 시켜주겠다며 풀어줌
이후 본격적으로 몽골 제국이 금나라를 줘패던 1229년, 방어하러 나간 사령관 완안합달이
누가 선봉에 서겠냐고 하자 완안진화상이 자신이 막겠다며 출전하여
현재 중국 간쑤성 칭양시인 대창원 으로 출전하여 몽골군을 상대 하는데,
보병 400기로 기병 8000기를 궤멸시키는 정신나간 대승을 거둠
그냥 땡 보병으로 기병을
그것도 전 세계를 유린하던 최강의 몽골 기병을 압도적 수차이에도 불구하고 개박살을 내버리는 전과를 냈는데
금사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 제국에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킨지 20년 만에 이러한 대승을 거뒀다고 되어있음
이 전공으로 완안진화상은 정원대장군 직을 받게됨
이후에도 하남, 섬서 등을 전전하며 연전연승을 했다.
시간이 흘러 1231년
현재 중국 산시성 일대인 도회곡 에서 몽골군과 전투를 벌여서
보병 11,000명으로 몽골 기병 100,000명을 패퇴시켜버림
충격적이게도 이때 몽골군의 지휘관은
몽골 제국군 총사령관 수베게데이 바가토르
인세에 강림한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수부타이였다
이렇게 완안진화상이 수부타이에게 사실상 유일한 패전 기록을 만들어주며 어모 중랑장으로 승진했다.
정확한 피해 기록은 불명이나,
수부타이는 이 전투에서 살아서 돌아갔지만, 오고타이 칸에게 뒤지게 쪼인트 까였다고 하니
꽤 큰 패배였던 것으로 보인다.
허나,
평범한 나라였다면 우리나라의 충무공 이순신 급의 대우를 받을수도 있었겠지만
1년뒤인 1232년
현 중국 허난성 쉬창시 일대에서 벌어진
삼봉산 전투에서
대장군이였던 이랄포아가 개삽질을 저지르며 금나라군 150,000명이 궤멸되고 만다.
이 전투의 패배로 금나라에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완안합달과 완안진화상은 남은 병력을 추스려 근처 균주성으로 후퇴하였으나
직후 전투에서 완안합달마저 전사하고
완안진화상은 가망이 없음을 느껴 몽골군 진영에 자진 출두하여 처형되었다고 한다.
몽골군 대장은 완안진화상을 겁주어 투항시키려고
칼로 정강이를 베어내고, 입술을 귀까지 벌려 찢으며 겁박했지만
그 와중에도완안진화상은 피를 뿜으며
이렇게 외쳤다고 함
이에 몽골군 대장이 그가 의로운 자라고 여기며 땅에 마유주를 뿌리며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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