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얼리 시장은 세계 5위권에 달한다. 그러나 정작 주얼리 시장의 주도권은 해외 명품 브랜드에 내주고 있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시대, K-주얼리는 안방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품질과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세계적인 브랜드를 키우지 못한 탓이다. 여전한 음성 거래와 디자인 베끼기, 주먹구구식 운영 등이 K-주얼리 브랜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K-컬처의 약진과 함께 K-주얼리의 잠재력도 살아나고 있다. 실력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새 바람도 일으키고 있다. 여성경제신문은 K-주얼리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있는 토종 브랜드를 응원하는 '주얼리즈' 시리즈를 시작한다. 주얼리즈는 '주얼리'와 '리즈 시절'의 합성어다. 지금이 리즈 시절인 신흥 K-주얼리 브랜드를 발굴해 국내 독자에게도 소개하고 세계시장으로 발돋움하는데 일조하려 한다. [편집자]
33세의 주얼리 디자이너가 객석에 앉아 흐르는 눈물을 삼켰다. 눈물은 환희의 눈물이었다. 1996년 KBS 빅쇼 나훈아 설날 특별공연 무대. 뿜어 나오는 나훈아의 아우라와 함께 선율에 따라 그가 무대에서 입은 의상 속 다이아몬드가 조명을 받아 섬광을 번뜩였다. 이날 나훈아가 입은 무대의상에는 ‘비상’(飛翔)이라는 이름의 주얼리가 영롱한 빛을 일렁였다.
‘비상’은 나훈아의 특별 주문으로 1996년에 디자인한 총 550캐럿, 1070개의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주얼리 작품이다. 비상을 만든 이가 박은숙 주얼리 디자이너였다. 박은숙 캐럿투 대표(62)는 80년대 일본 주얼리 전문학교인 히꼬미즈노를 졸업한 주얼리 디자이너 1세대이자 (사)한국귀금속보석디자인협회 명예회장이다. 유학을 마치고 1988년에 국내에서 최초로 개인 주얼리 쇼를 개최하면서 한국의 전문 주얼리 디자이너 시대를 열었다.
청와대 사랑채 주얼리 문화 작품전시회(2012~2013년), G20 퍼스트레이디를 위한 작품전시회(2010년) 등 대형 전시회를 국내외에서 100회 이상 열어 우리나라 주얼리 디자인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한 사람만을 위하여 태어나는 아트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우리나라 주얼리 황금기를 이끈 주얼리 디자이너. 박은숙 캐럿투 대표를 지난 9월 10일 그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비상’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나훈아 선생님과 작업할 때 3개월이라는 시간의 몰입 끝에 디자인 스케치가 나왔습니다. 제가 그린 디자인을 설명하자마자 선생님은 바로 그냥 오케이였어요. 지금까지 제가 디자인한 모든 작품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일도 없습니다. 혼신을 다했기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는 에너지가 좀 많았습니다(웃음).”
1995년 10월경 어느 날. 그녀에게 나훈아의 기획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공연을 5개월여 앞두고 한남동에 있는 기획사 사무실에서 나훈아를 직접 만났다. 미팅에서 나훈아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제대로 갖추고 싶다.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어떤 주얼리를 착용하면 좋을지 제안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이후, 나훈아의 노래를 듣고 영상도 보고 작업실과 집안 전체에 나훈아의 사진으로 도배해 놓은 뒤 보고 또 봤다. 나훈아라는 선이 굵은 캐릭터에 반지, 목걸이, 팔찌, 브로치 등 어떤 주얼리가 어울릴지 고민했다. 그러나 쉽사리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이 훌쩍 흘렀다. 얼마나 고민했던지 박은숙 디자이너는 체중이 10kg이나 빠졌고 나훈아와 2차 미팅을 목전에 둔 어느 날 급기야는 몸이 아파 119를 겨우 부르고 나선 실신하고 말았다.
그다음 날 병상에서 일어났는데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날개였다. 나훈아가 30주년 공연에서 다시 한번 더 떠오르며 비상하는 상상을 하면서 디자인 스케치를 했다. 날개를 어떻게 붙일지 생각하다 의상으로 입는 주얼리 작품 ‘비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상의 양쪽에 스카프처럼 날개가 연결되어 노래를 부르면 날갯짓하며 비상하는 모습으로 3캐럿, 2캐럿, 1캐럿 그리고 1캐럿 미만의 다이아몬드 총 1070개, 550캐럿를 세팅했다. 옷에 매달 수 있도록 다이아몬드 하나하나를 난집(보석을 고정시키는 금속 틀)에 넣고 박은숙 디자이너가 직접 손으로 꿰맸다. 제작 과정만 약 두 달. 30여 년 전에 재료비와 제작비만 10억이 든 대형 작업이었다.
현재 가격으로 환산한다면 최소 3~5배 이상으로 가격을 매기기 어려울 만큼의 가치로 추정된다. 비상은 우리나라 무대의상 중 전무후무한 다이아몬드로 만든 아트 주얼리 작품으로 역대 최고가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나훈아는 1996년 설날특별공연에서 ‘비상’을 입고 전체 공연의 2/3가량을 소화했다.
—나훈아의 ‘비상’은 대표님께 어떤 작품인가요.
“‘비상’은 제가 만든 작품 중 가장 대작입니다. 나훈아 선생님의 무대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그 아름다움은 제가 처음 보석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고 싶다고 결심했을 때 꿈꾸던 주얼리와 마주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이아몬드와 공연장에서 그 기세의 만남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비상’이 제 손에서 탄생했다는 것도 보람 있었고, 그 작업을 하고 나서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 좋은 작품 많이 해야 하겠다는 각오도 생겼습니다.”
—나훈아 외에도 문화예술계의 영향력 있는 분들과 협업을 많이 하셨는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어울림과 혼연일체입니다. 드라마든 방송사 협찬이든 고객이든 요청하는 것에 맞는, 어울리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협업을 시작하면 혼연일체가 되어 작품과 함께 호흡합니다. 사실 어떤 때는 하루 전날 와서 뭘 만들어 달라 그러면 너무 힘들죠. 그러나 다 해냈어요.
작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빨간 풍선> 의 경우, 주인공 한바다(홍수현)가 주얼리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보석 자문을 했는데, 저의 실제 경험이 전체 대본에 반영되었습니다. 문영남 작가가 빨간 풍선을 주제로 한 주얼리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드라마가 시작하기 약 1년 전에 요청했었는데 작가의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스케치를 그렸어요. 그중 한 가지가 채택된 것이 첫 화에 나온, 루비로 된 20년 절친이 나눈 우정 목걸이입니다. 빨간>
드라마 중반에는 한바다가 국제 주얼리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인 ‘여인의 외출’이 나옵니다. 7캐럿과 3캐럿의 루비를 메인 스톤으로 장식한 화려한 이 작품도 대상 수상작에 걸맞은 목걸이를 만들어 달라는 문영남 작가의 특별한 요청으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캐럿투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캐럿투는 소비자가 원하는 요구를 수렴하여 나만의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브랜드입니다. 32년의 디자인 노하우와 차별화된 신기술공법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제품을 상품화합니다. 1989년 브랜드 창립 이래, 2001년부터는 ㈜시스템주얼리디자인연구소로 확장하여 ‘시스템 주얼리’ 개발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디자인한 모든 작품에는 특별한 이름이 있습니다. 아트워크 네이밍과 한 사람 만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소장 가치가 높고 다채로운 소비자의 상상과 꿈을 작품에 담아 세월이 흘러도 실생활에서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트렌디한 주얼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시스템 주얼리는 무엇인가요.
“보석을 사면 소비자들은 특별한 날에만 착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 년에 며칠을 제외하면 늘 장롱 속에서 잠자기 마련인데, 이런 보석이 아까워 반지가 목걸이의 펜던트가 되기도 하고, 브로치도 되고 혹은 노리개의 장식 보석이 되도록 여러모로 변신하는 주얼리를 만듭니다. 이것이 시스템 주얼리입니다. 하나의 보석이 다용도의 아이템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실용성을 강조하는 걸 의미하죠.”
—캐럿투의 주 고객은.
“저의 고객이 20대부터 70~80대까지 있습니다. 엄마와 딸이 같이 반지를 맞추기도 하고 예물도 하러 오시고 음악을 전공하는 분이 자신을 상징하는 주얼리를 주문하는 분도 있고 아빠가 딸에게 선물하는 분도 있고 다양합니다. 고객별로 맞춤 디자인을 제안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주얼리를 원하는 분들이 주요 고객입니다. 고객들이 다른 브랜드의 기성품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주문이 늘었어요. 올해 초에 방영했던 드라마 <마이 데몬> 의 주인공 김유정과 송강의 커플링을 제작했는데,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듯 다이아몬드도 전체를 감싼 디자인이에요. 드라마를 보고 해외에서 주문이 들어오는데, 한국 드라마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저도 커플링을 통해 실감하고 있습니다.” 마이>
—후배 주얼리 디자이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기 디자인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자기 생활을 해야 하므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장사꾼이 아닌,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갈 길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꾸준히 디자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을 만족시키는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크루즈에서 보석 쇼를 하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여행이라는 테마로 전 세계 VIP를 초대해 항해하며 우리나라 주얼리 디자인을 알리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작품을 모두 모아 기록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주얼리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스타 주얼리 디자이너를 배출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보석에 생명을 불어넣는 여자’, ‘장롱문을 여는 여자’로 방송가에서 이름을 날렸던 박은숙 대표와 인터뷰하면서 루비, 다이아몬드, 오팔, 진주, 호박, 에메랄드, 사파이어 등 다채로운 유색 보석으로 만든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국내 파인 주얼리 시장이 침체한 이 시기에 그런 작품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보석 같은 인터뷰였다. 박은숙 대표에게 ‘대표님에게 주얼리란 무엇인가요?’라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주얼리란 사치가 아니고요. 나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얼리를 보면서 본인도 만족하고 상대방한테도 보여주면서 자기만족은 더 커지죠.
보석은 그냥 아름다운 돌이었어요. 그러나 사람과 그 보석이 어우러졌을 때 보석은 비로소 생명을 얻은 것처럼 숨 쉬고 더욱 아름다움을 발하게 됩니다.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또 하나의 행복이죠. 주얼리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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