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러버들의 가장 사적인 프리즈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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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러버들의 가장 사적인 프리즈 체험기

엘르 2024-09-23 11:15:26 신고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프리즈 서울 현장.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프리즈 서울 현장.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9월 첫째 주가 나를 비롯한 여러 아트 피플에게 1년 중 가장 바쁜, 피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3년째인 이제야 자리를 잡은 듯하다. 첫 번째, 두 번째 해엔 너무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바빴다. 그저 아트 페어일 뿐인데 이 행사가 서울에 상륙한다는 소식에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유치한 것처럼 과도한 흥분이 감돌았달까. 각자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 프리즈 서울 혹은 서울아트위크에 대한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오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정신이 없었다는 건 변함없겠지만 나에게 이 한 주는 ‘고체로 된 음식’을 먹을 순간이 거의 없었던 시간으로 남았다.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월·화·수요일을 지나 목요일 저녁에 비로소 ‘액체가 아닌 식사’를 했다. 몇 차례 ‘디너’ 자리에 참석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밥’은 없었고, 500원 동전만 한 고급 핑거 푸드만이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예술 전문 통번역가, 아트 저널리스트, 비평가, 큐레이터, 비영리 예술공간 운영자 등 여러 역할로 9월의 첫 주를 살았다. 우선 통번역가로서 몇 군데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요청받은 일을 맡았다. 저널리스트로서는 영국의 미술 잡지 〈프리즈 Frieze〉(‘프리즈’ 아트 페어와는 별개의 조직) 소속 컨트리뷰팅 라이터로 프리즈 서울 후반부에 이틀간 광주비엔날레 취재를 해야 했고, 비평가로선 국내외 미술 잡지에 싣기 위한 인터뷰와 프로필이 담긴 두 편을 위해 작가(마침 서울에 방문한)들을 만났다. 큐레이터 동료들과 함께하는 ‘큐레이팅 스쿨 서울’에선 9월 4일 ‘삼청 나이트’에 맞춰 밤 10시 30분에 토론을 겸한 공개 수업을 열었고, 역시나 동료들과 운영 중인 ‘서울리딩룸’에선 올해로 3년째 미술계 사람들이 소개하고 싶은 책을 추천받아 선보이는 ‘후 원츠 투 행아웃 인 서울’ 행사를 열었다. 이 와중에 프리즈 서울 측의 요청으로 ‘가이드 투어’를 맡아 프리뷰 기간 중 서울을 방문한 해외 VIP들에게 투어를 제공했다.

써놓고 보니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대여섯 명이나 되는 것처럼 1주일을 보낸 기분이다. 그러니 ‘액체가 아닌 형태의 식사’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충분히 납득된다. 런던, 파리, 바젤, 뉴욕, 로스앤젤레스, 홍콩 등. 각자의 아트 페어나 아트 위크를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 온 친구나 동료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이걸 어떻게 치러내니? 매년 어떻게 이 일을 반복하는 거야?”라고. 흥미롭게도 비명에 가까운 이 질문에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많은 일이 한 번에 벌어지는 곳은 서울밖에 없어.” 그들에겐 예술경영지원센터나 한국국제교류재단 같은 정부 산하 기관까지 발 벗고 나서서 그 누구도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사가 이뤄지는 모습이 매우 생경한 듯했다. 이 역시 무척 한국적인(‘K’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는) 광경이라고 말이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수면 사수’ 시간을 박제해 놓고 지낸 한 주. 그동안 마주친 광경들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이 21세기 서울에서 구현된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문을 연 전시장 앞에 길게 늘어선 멋진 옷차림의 이들, 갤러리 리셉션에서 가져온 핑거 푸드를 들고 삼삼오오 길가에 앉은 사람들, 흥이 지나쳐 경찰이 출동해 해산시켜야 했던 몇몇 애프터 파티 등.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마주쳤고 올해 다시 한 번 마주했지만, 왠지 내년에도 또 보게 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 작가나 큐레이터 동료들, 간혹 갤러리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미술에 대한 소통의 전부인 내게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9월의 아트 위크는 꽤 유용한 환기와 성찰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비록 몇 달 치 할 일, 몇 달 치 만날 사람을 한 번에 만난 듯한 이 시간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2025년의 아트 위크가 대략 언제일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내년을 위한 준비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2025년 9월 1~2일, 일정 괜찮으신가요?”

박재용

큐레이터, 비평가, 예술 전문 통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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