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프리즈 서울 현장.
써놓고 보니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대여섯 명이나 되는 것처럼 1주일을 보낸 기분이다. 그러니 ‘액체가 아닌 형태의 식사’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충분히 납득된다. 런던, 파리, 바젤, 뉴욕, 로스앤젤레스, 홍콩 등. 각자의 아트 페어나 아트 위크를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 온 친구나 동료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이걸 어떻게 치러내니? 매년 어떻게 이 일을 반복하는 거야?”라고. 흥미롭게도 비명에 가까운 이 질문에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많은 일이 한 번에 벌어지는 곳은 서울밖에 없어.” 그들에겐 예술경영지원센터나 한국국제교류재단 같은 정부 산하 기관까지 발 벗고 나서서 그 누구도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사가 이뤄지는 모습이 매우 생경한 듯했다. 이 역시 무척 한국적인(‘K’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는) 광경이라고 말이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수면 사수’ 시간을 박제해 놓고 지낸 한 주. 그동안 마주친 광경들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이 21세기 서울에서 구현된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문을 연 전시장 앞에 길게 늘어선 멋진 옷차림의 이들, 갤러리 리셉션에서 가져온 핑거 푸드를 들고 삼삼오오 길가에 앉은 사람들, 흥이 지나쳐 경찰이 출동해 해산시켜야 했던 몇몇 애프터 파티 등.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마주쳤고 올해 다시 한 번 마주했지만, 왠지 내년에도 또 보게 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 작가나 큐레이터 동료들, 간혹 갤러리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미술에 대한 소통의 전부인 내게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9월의 아트 위크는 꽤 유용한 환기와 성찰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비록 몇 달 치 할 일, 몇 달 치 만날 사람을 한 번에 만난 듯한 이 시간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2025년의 아트 위크가 대략 언제일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내년을 위한 준비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2025년 9월 1~2일, 일정 괜찮으신가요?”
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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