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양 진영의 교류에 애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별세했다고 유족이 16일 전했다.
한국일보 기자와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주로 여당에서 중책을 맡았지만 민주계 정당과 소통을 하며 진영 간 교류와 화합에 기여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안‧근로자의 날 조정 등 현대사에 굵직한 발자취 남겨
고인은 1934년 1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진출했다.
이후 민국일보를 거쳐 1962∼1972년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1972년 서울신문 편집국장, 1977년 서울신문 주필을 지냈다.
고인이 기자 시절 혁신계(진보) 정당을 출입하면서 남긴 기사와 증언은 한국 현대사 혁신계 정당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됐다.
이어 고인은 정치계 활동도 시작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3대까지 강서구에서 4선을 역임했다.
1980년에는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두 번 역임하는 등 주로 여당에서 중책을 맡았지만 항상 민주계 정당과 소통을 하고 여당의 강경 방침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고인은 두 딸이 운동권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권이 추진하던 ‘학원안정법’에 반대의견을 냈다.
또한 1986년 3월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는데 고인이 벽으로 던진 술잔 파편이 군 장성에게 맞은 것이 일이 커져 양측 간 폭력사태로까지 비화됐다.
고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김지하 시인 석방을 건의하기도 했으며 노태우 정권 인수위에서 5·18 광주사태 명칭 변경이 논의됐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제안해 관철했다. 당시 야당은 5·18 광주민주화투쟁이라는 용어를 주장했었다.
고인은 김영삼 정부에서 1993∼1994년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이때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존 3월 10일이었던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바꿨다. 당시 노동부 안은 명칭도 ‘노동절’로 바꾸자는 것이었으나 보수 진영의 반발을 고려, 명칭은 ‘근로자의 날’을 쓰기로 했다.
또한 고인은 김 전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라고 건의한 일화도 있다.
이처럼 고인은 보수 정권에 몸담았음에도 진영 간 교류와 화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새마을훈장 근면장과 청조근정훈장도 받았다. 이 같은 공로를 반영하듯 고인의 별명은 ‘체제 내 리버럴’이다.
고인의 딸인 남영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아버지는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힘쓴 분이셨고, 이런 점이 자랑스럽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5년간 호남대 객원교수로 정치 문제를 강의했다.
주요 저서로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1984) '양파와 연꽃: 체제 내 리버럴의 기록'(1992) '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2006) '김두관의 발견'(2012) '진보열전'(2016) '시대의 조정자'(2023)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변문규씨와 남화숙(미국 워싱턴주립대 명예교수)·남영숙·남관숙·남상숙 4녀, 사위 예종영(전 가톨릭대 교수)·김동석(KDI 국제정치대학원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5시 2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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