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박상현 기자] 의료대란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세브란스 의사 출신인 인요한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특정 의사에게 환자 수술을 직접 부탁한 것'으로 보이는 문자가 기자들에게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야권에서는 의사 출신인 인요한 최고위원이 동료 의사에게 지인 환자의 수술을 긴급 부탁한 것이 아니냐며 '국회의원 찬스'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인 최고위원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 국회(정기회) 제3차 본회의에서 추경호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하는 동안 휴대폰 메시지를 들여다보았고 이것이 언론에 그대로 포착됐다.
언론에 포착된 사진을 보면 인 최고위원은 누군가로부터 "부탁한 환자 지금 수술 중. 조금 늦었으면 죽을 뻔. 너무 위험해서 수술해도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야"라는 문자를 받았고 곧바로 "감사감사"라는 답장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해당 문자 메시지 앞에는 체크 표시가 되어 있어 두 문자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언론에게 포착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요한 최고위원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환자를 부탁했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것이 평소대로라면 의사 출신 인요한 최고위원이 동료 또는 지인 의사에게 환자를 잘 부탁한다는, 또는 수술을 조금 빨리 당겨달라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인정(人情)쯤으로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다.
문제는 지금이 의료대란 과정이라는 점이다. 응급 환자들이 응급실을 제대로 찾지 못해 이른바 '뺑뺑이'를 돌고 골든타임을 넘기는 바람에 가벼운 질병도 크게 키우는 상황 속에서 환자의 수술을 앞당겨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보이는 문자는 청탁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인요한 최고위원은 국회의원으로 국민의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까지 맡고 있다.
이에 대해 인 최고위원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그 의사를 믿을 만 하냐고 해서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했고 이어 '환자가 수술을 받게 됐는데 부탁할 수 있냐'고 해서 '전화 한 통 넣겠다'고 말한 것이 전부"라며 "수술 집도의가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그 집도의와 내가 잘 아는 사이니까 '수술 잘 부탁한다'라고 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 특히 야권에서는 인 최고위원이 대학병원 의사에게 수술을 청탁한 것만으로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김영란법 위반 얘기가 나온다는 질문에 대해 인 최고위원은 "법적인 해석은 잘 모른다"며 답을 피했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지침 위반된다면 법 위반일수도" 의견
인요한 문자 논란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와 관련해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에게 김영란법 위반 여부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이 병원에 수술을 청탁하는 것이 김영란법 위반이냐"고 묻자 유 위원장은 "지침에 위반된다면 당연히 위반일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지금 의료대란으로 모든 국민이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상황인데 혹여 국민이 '국회의원 빽이 있으면 수술시켜주는구나. 역시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구나'라고 생각할까봐 간담이 서늘하다"며 "명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면 권익위가 조사하는 것은물론이고 수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술 관련 청탁이 김영란법 위반인지 아닌지에 대해 오늘 오후 중에 서면에 답변해달라. 한 시간 안에 답변을 내놓지 못하면 무능한 것이니 위원장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재촉했다.
국민귄익위원회는 이에 이날 오후 늦게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를 통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 수 없어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에 대한 답변을 드릴 수 없음을 양해하달라"며 ""사회상규 등 청탁금지법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거나 판례상 단순한 선처나 편의의 부탁인 경우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인요한 문자, 권력층은 의료붕괴와 상관없다는 인식 보여줘"
이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서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인요한 최고위원의 문자 메시지가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피해 사례가 생겨나고 있는데도 정부, 여당이 왜 남탓과 방관으로 일관해 왔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며 ""인요한 문자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빽' 있는 권력층은 의료붕괴와 상관없다는 뜻 아니냐. 권력자들에게는 의료체계가 붕괴되든 말든, 응급실 기능이 망가지든 말든 상관이 없겠다는 인식을 짧은 문자 메시지 하나에서 다 읽어낼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인요한 문자로 인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말하는 의료개혁의 실체가 실상은 의료개악임이 재확인됐다. 대체 무슨 말로 성난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노 원내대변인은 "인 최고위원은 '수술 잘 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뿐 수술을 빨리 받게 해달라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조금 늦었으면'이란 문구가 담겨 있는 것을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비록 그 해명이 사실이더라도 정부와 여당이 그동안 보여준 언행 때문에 국민 대부분은 쉽게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의료붕괴 사태가 현재 진행형이고 악화일로에 있는데도 '비상 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국민을 속였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보건복지부는 '왜 의료붕괴라는 표현을 써서 불안을 가중시키냐'고 오히려 국민을 타박한다. 정신 못차리는 정부를 견인해야 하는 여당은 더 한심하다. 추경호 원대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정부의 의료개혁은 반드시 이뤄 내겠다'는 말로 오히려 힘을 실었다. 정부를 향해 고작한다는 말이 '빈틈없이 대응하라', '만전을 기해달라' 정도였다"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한꺼번에 비판했다.
노 대변인은 "현실이 이러하니 인요한 문자는 터질 것이 터진 셈이다. 국민의힘은 먹히지도 않을 변명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정신 차리고 의료붕괴 현실을 직시하라고 질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한규 의원도 이날 자신의 SNS을 통해 "여당 최고위원은 다 방법이 있었다.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는 정부와 여당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나 보다"라며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하느냐. 이게 나라냐"고 일갈했다.
조국혁신당 "뇌물이 감사 선물이듯 수술 청탁도 단순 부탁이냐"
이규원 조국혁신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 최고위원이자 국회의원인 인요한 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의 문자가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정부의 의료개혁은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시각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런 내용의 인 의원의 문자메시지가 카메라에 잡혔다"며 "정말 기괴한 풍경"이라고 비꼬았다.
이 대변인은 "윤석열 정권의 막무가내식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추진으로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극한 대립으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응급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다. 누구의 책임이냐. 국가는, 정부는 어디에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 대변인은 "인요한 문자를 보니 정권의 실세와 선이 닿는 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 보다. 전화 한 통이면 없던 응급실 자리도 생기고 수술 일정도 바로 잡히나 보다. 그러니 없는 사람들이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도 남일 보듯 하나 보다"라며 "인 의원은 '수술 잘 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지만 만약 의사에게 수술 순서를 바꿔 달라고 청탁했다면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뇌물이 '감사의 선물'로 둔갑하듯 '수술 청탁'도 그냥 '부탁'이었다면 넘어가느냐"며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에 대해 검찰이 뇌물이 아닌 감사의 선물로 결론내린 것과 관련해 비꼬기도 했다.
이 대변인은 "어쩌면, 인 의원의 청탁으로 인해 다른 위중한 환자는 순서에서 밀려 필요한 처치를 못 받았을지도 모른다"며 '청탁 의혹'을 제기하면서 "인요한 의원은 휴대전화를 분실하거나 교체하지 말고 잘 보관하길 바란다. 검찰은 의료대란 와중에 수술 청탁으로 보이는 문자를 주고받은 당사자들을 소환해 수사해야 란다.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면 기소해 처벌받게 하고 아니라면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길 바란다"고 검찰의 빠른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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