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글로벌 스탠더드' 속에 자랐지만 '낙하산' 불평등 맞은 MZ세대를 위한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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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글로벌 스탠더드' 속에 자랐지만 '낙하산' 불평등 맞은 MZ세대를 위한 분투기

비즈니스플러스 2024-09-01 07:25: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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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 사진=디스테이션
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 사진=디스테이션

"부정을 저지른 노래, 시장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게 너무 진부해. 상심의 엘레지, 그리움을 몰아내는 송가. 시장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것이 너무 평범해. 우리는 진정한 말레이인이다."

2008년에 나온 인도네시아 인디밴드 에펙 루마 까짜(Efek Rumah Kaca)의 '사랑은 오직'(Cinta Melulu)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 곡은 진부한 멜로디와 가사에 얽매인 인도네시아 주류 음악계를 비판하면서 인도네시아 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2008년 인도네시아어 최고의 노래'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소개하려고 하면서 갑자기 인도네시아 음악을 꺼내든 것이 의아하겠지만, 이 영화와 이 음악은 서로 맞닿아있다.

'한국이 싫어서'의 여주인공 계나는 홍대를 나와 한국 기업에 취업했지만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행을 택한다. 그리고 호주에서 부유한 인도네시아 남자친구를 새로 사귄다.

이 인도네시아 남자친구는 계나와 대화하다가 한국 유학생들에 대해 이렇게 비꼰다.

"한국 애들은 제일 위에 호주인과 서양인이 있고, 그 다음에 일본인과 자신들이 있다고 여기지. 그 아래는 중국인, 그리고 더 아래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데 사실 호주인과 서양인 아래 계급은 그냥 동양인이야. 여기 사람들은 구별도 못해. 걔들 눈에는 그냥 영어 잘하는 아시안과 영어 못하는 아시안이 있을 뿐이야."

계급과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한국 문화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이 영화는 호주 원주민 마오리족 여성과 계나의 우정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 관행에 목소리 내어 비판할 수 있는 용기도 강조한다.

옷가게에서 일하는 계나가 힐을 신지 않고 스니커즈를 신었다며 혼을 내는 백인 여성 매니저에게 마오리족 여성이 반박하며 계나 편을 들어준 것이다. 이 마오리족 여성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에는 목소리 높여 대항해야 한다"고 계나를 응원한다.

그런데 대체 계나는 왜 서른살을 앞두고 한국을 떠나 호주로 향했을까? 

계나는 스스로 "내가 한국에서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멸종돼야 할 동물처럼 치열하게 목숨걸고 무얼 하지도 못하면서 물려받은 것도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만 하다.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톰슨가젤의 처지가 딱 들어맞는다고 계나는 말한다.

이 지점에서는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2018)가 떠오르기도 한다. '소공녀'는 오른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나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도 하루에 위스키 한 잔을 마셔야 하는 고급 취향을 버릴 수 없는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의 한국 생활 분투기를 다룬 영화다.

'한국이 싫어서'와 '소공녀'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MZ세대의 인지부조화다.

10대 시절 민주시민 교육을 받고 자라나 20대 해외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로 전세계인들과 어울리며 국제 감각을 키우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체화했지만 30대에 회사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는 한국식 불합리한 관행과 맞닥뜨리고 40대를 넘어서면 10대, 20대를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한 고시인재들에게 눌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조직 속 톱니바퀴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계나의 "한국이 싫다"는 대사가 나올 때마다 영화관에서 내 앞에 앉은 노부부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는데, '한강의 기적'을 이룬 근면성실의 상징과 같은 세대이므로 젊은 세대의 자조가 한심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러나 통계를 통해 보면, 한국은 분명 기성세대가 더 살기 좋은 나라다. 탄탄대로만 달린 기성세대들은 MZ세대가 느끼는 좌절과 고통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5월 60대 취업률은 59.7%로 2021년 이후 3년 연속 20대 취업률보다 높게 나타났다.

20대 자식은 집에서 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은퇴한 아버지가 다시 고령 일자리에 재취업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설령 취업을 잘 했다손치더라도 각종 비합리적인 관행과 낙하산이 넘쳐나는 회사 조직문화 속에서 자아와 열정을 가지고 회사에 애정을 붙이긴 어렵다.

계나는 애국가 가사부터 마음이 짓눌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한다.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로 시작하는데 애국가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개개인의 국민보다 나라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쉽게 가질 수 있는 편견은 오해다. 계나가 분명 루저나 한량, 프리터, 백수일 것이라는 편견인데, 그는 누구보다도 성공을 원하는 인물이다. 

다만 계나가 생각하는 성공은 매일매일 순간순간이 행복한 삶으로부터 나오는 바탕 위에 쌓이는 것이지, 고통과 자기통제로 좁은 경쟁문을 뚫어야 하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성공 방정식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갓 들어온 MZ세대와 함께 일하기 두려운 기성세대나, MZ세대가 성공을 위해 왜 한국이 아닌 외국을 선택하는지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인도네시아의 '사랑은 오직'이란 노래가사처럼 시장이라는 미명 하에 진부함과 평범함만을 강요하는 한국의 초격차 경쟁사회에서 진정 새로운 행복과 성공을 발견하고자 절규하는 세대적 고민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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