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22일 새벽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겪은 '응급실 뺑뺑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체계(KTAS) 기준 3등급에 해당하는 상처는 대형병원이 아니어도 충분히 치료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119 구급대는 메뉴얼대로만 연락을 취했고 그 결과 22곳의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응급 트리아지(Triage) 시스템 부재로 환자 본인이 전국의 병상과 의료진 상황을 파악하는 '컨트롤타워'가 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게다가 그 일화가 방송까지 탔다. 1만여명에 달하는 전공의 이탈과 맞물려 중증과 경증 분류체계 미비로 모든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에 따른 의료 붕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5일 여성경제신문이 깐깐한 팩트탐구 코너를 통해 이번 '응급실 뺑뺑이' 사례를 분석한 결과, 김 전 위원장의 외상(열상)은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체계(KTAS) 기준 3등급에 해당하는 동시에 119구급대 분류상으론 잠재응급 대상으로 파악됐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2일 새벽 낙상 사고로 이마가 깨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응급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반창고를 붙이고 출연해 "119가 와서 응급실에 가려고 22군데를 전화했는데도 안 받아줬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그는 지인 병원을 찾아 이마 8㎝ 남짓을 꿰맸다. 피부가 찢어지면서 생긴 상처를 열상이라고 한다. 열상으로 피가 나면 당황해서 응급실을 찾기 쉽지만 근처 외과계열 병원 응급실에 가면 긴 대기시간 없이 빠르게 치료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현장을 찾은 119 구급대가 대형병원 위주로 전화를 돌리는 바람에 처치가 늦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거점대학 한 응급의학과 B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김 전 위원장은 KTAS 3등급 환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렇다고 환자가 권역별 응급의료센터 찾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이 경험한 '응급실 뺑뺑이'를 의대 증원 문제와 연결시키면서 그동안 정치적 해결을 요구해온 인물들도 가세했다.
먼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페이스북에 해당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공유했다. 이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에 성형외과 의원이 굉장히 많고 대학병원에서도 거의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음에도 진료가 되지 않은 것"이라면서도 "의사를 늘린다 한들 중증·응급 질환을 보는 의사가 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고 주장했다. KTAS 3등급인 김 전 위원장을 중증 환자로 분류하면서 의대 증원을 비판한 것이다.
환자 평가 시 증상을 중심으로 분류하는 도구로써, 국내 의료상황에 맞게 변형한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를 뜻하며 2012년 도입돼 2016년 전국 확대 시행하고 있다. 119구급대에선 응급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할 때 환자 상태를 평가하고 응급, 비응급, 잠재응급 등의 중증도 분류해 왔다. 반면 병원은 중증도분류(KTAS) 분류기준에 따라 응급환자를 1~5등급으로 구분해 불일치한다.
박단·임현택 기다린 듯 정치 공세
전공의 이탈 전부터 고질적 문제
3등급은 119 타고 2등급 걸어서
#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보니 한쪽이 깜깜하게 보이지 않았어요. '망막 박리'가 의심돼 119에 전화를 했더니 안내원이 안과전문병원 전화번호를 여러 개 주더라고요. 급성 심근경색처럼 '분초'를 다투는 건 아니지만 'KTAS 2등급'으로 규정상 119 출동이 필요했는데 스스로 병원을 찾으라 하는건 아니지 않나요. (40대 워킹맘 박현정씨)
119는 구급차 출동과 연계되므로 신고자에겐 심리적 부담이 있고 접수자 입장에서도 구급차 출동과 일반상담의 구별이 어려운 실정이다. 119구급대 기준으로 경증으로 볼 수도 있는 KTAS 3등급 환자인 김 전 위원장의 사례는 응급 분류 체계가 통일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한된 자원인 구급차가 출동한 대표적인 사례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2022년 기준 지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한 525만171명 가운데 절반 수준인 249만9728명(47.6%)이 가장 낮은 KTAS 4~5등급의 환자였다. 또 여기에 더해 제 발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까지 포함한 응급의학회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응급실을 채운 경증 환자 비율은 86%로 나타났다.
전공의 공백 상황 이전의 통계가 이런데도 김 전 위원장은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대란이 자신의 응급실 뺑뺑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2년 박근혜 정부가 응급의료정보센터의 1339를 폐지한 이후 한국에선 체계적인 응급환자 분류 기준 및 이송 체계가 사라진 실정이다.
반면 일본은 '응급환자 뺑뺑이' 방지책을 50여 년째 가동 중이다. 번호도 두개다. 응급환자가 발생해 119(의료는 7119)에 전화하면 운전사 1명, 구급 구명사 1명을 포함한 3인 1조의 구급차가 10분 이내 환자에게 도착한다. 이후 환자 상태를 파악한 초기 단계부터 중앙센터가 환자 상태를 분류해 중증 응급환자를 우선적으로 실어 나르도록 하는 응급 트리아지가 잘 갖춰져 있다.
국내에서도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의 환자 중증도 분류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시범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도 부랴부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최상위 응급실인 권역응급의료센터 이용 시 본인 부담을 올리는 등 대책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의 응급실 뺑뺑이는 전공의 이탈이나 비용 때문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 경증 여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였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다만 "가족이 조금만 아파도 상급종합병원에 보낼 것"이라는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응급 의료 붕괴는 더욱 가속할 것이라고 B 교수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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