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축구의 잠자는 거인, 북한의 부상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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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축구의 잠자는 거인, 북한의 부상과 몰락

BBC News 코리아 2024-08-18 11:24: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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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축구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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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 경기에서 슛이 서른 번 나오면, 미국팀이 그 중 25개 정도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네요!”

이날 경기에 충격을 받은 것은 ESPN 해설자만이 아니었다.

헤더 오라일리는 2007 여자월드컵 미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미국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2대2 무승부로 이끌었다. 당시 세계 랭킹 1위이자 월드컵에서 두 차례 우승을 거머쥔 강팀 미국이 북한과 만나 고전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오라일리가 놀란 것은 점수가 아니었다. 경기가 얼마나 대등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충격을 준 것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상대 선수들이 보인 태도였다.

오라일리는 “북한 선수들의 표정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들은 ‘아, 우리가 거인을 쓰러뜨리기 직전이었는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무조건 옳다는 사상과 외부 세계에 대한 깊은 불신이 기틀을 이루고 있다.

생활 수준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참 뒤처진 북한이지만, 여자 축구계에서는 북한이 세계 최강 수준이다.

2007년 미국과 겨루던 당시 북한의 세계 랭킹은 5위였다. 최근 10년간 아시아에서 세 번의 우승도 차지했다.

청소년 대회 기록은 더 화려하다. 2016년 북한은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스페인, 미국, 프랑스를 꺾고 우승했다. 같은 해 17세 이하 대표팀도 연령별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오라일리는 당시 북한 대표팀과의 경기를 회상하며 “정말 힘든 경기였다”고 말했다. “엄청나게 민첩해서, 공을 뺐기 어려웠어요.”

북한을 상대하는 팀들은 대부분 또 다른 난관을 만난다.

오라일리는 “북한은 많은 게 베일에 싸여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영상은 당시의 기준으로도 매우 제한적이었어요. 그래서 북한과 경기를 할 때마다 항상 미스터리를 상대하는 것 같았죠.”

이후 북한은 도핑 논란에 휘말리며 4년간 국제 축구 무대에서 퇴출됐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 등 공백기를 거친 북한 여자 축구는 최근 세계 무대에 복귀했다.

미국과 북한이 2대2 무승부를 기록한 2007년 여자월드컵 경기에서 오라일리가 공을 다투고 있다
Getty Images
미국과 북한이 2대2 무승부를 기록한 2007년 여자월드컵 경기에서 오라일리(가운데)가 공을 다투고 있다

당시 오라일리를 비롯한 미국 대표팀은 북한 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듯하다. 하지만 브리기트 바이히의 상황은 달랐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화감독인 바이히는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을 5년간 따라다닌 뒤 2009년 다큐멘터리 ‘하나, 둘, 셋’을 제작했다. 북한 외부 인사가 북한 축구팀 내부와 선수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는 북한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여자 축구에 대한 북한의 막대한 지원은 권력 최상층에 있는 한 남성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바이히는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김정은의 아버지) 동지’가 여자 축구를 개인적으로 지지한다는 말을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선수들은 모든 것을 그 권력자와 결부시켜 말합니다. 그가 지시하거나 지지,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매우 위계적이거나 전체주의적인 독재에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는 북한의 실상인 것 같아요.”

바이히는 북한이 여자 축구를 키우게 된 발단이 ‘1986년 멕시코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1986년 FIFA 총회에서는 4피트 11인치 남짓한 작은 체구의 노르웨이 출신의 엘렌 빌레가 여성 최초로 FIFA 연단에 올랐다. 그는 FIFA 연례 보고서에 여자 축구는 반 페이지에 불과할 정도로 여자 축구가 외면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쏟아냈다.

빌레는 여성 월드컵을 요구했고, FIFA는 동의했다. 이때 그 자리에 있던 북한 대표단은 이와 관련된 계획을 가지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바이히는 “누군가 김정일에게 이 기회를 활용하면 좋겠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경제, 과학, 인권 등 모든 면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이런 국가는 특정 스포츠에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톱-다운 방식으로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김정일이 여자 축구에 관심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자 축구를 세계 무대에서 북한의 힘을 과시할 수단으로 생각했을 것 같아요.”

2007 여자 월드컵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골을 넣고 기뻐하는 북한 선수들
Getty Images
2007 여자 월드컵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골을 넣고 기뻐하는 북한 선수들

북한의 계획은 단순했지만, 광범위하고 효율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정식으로 축구 훈련을 시키고, 전국 곳곳에 스카우터를 파견해 인재를 찾았다. 우수한 선수들을 국가의 비용으로 학교와 군대 팀에서 풀타임으로 훈련시켰다.

북한 선수들이 받는 물질적 보상은 거액의 계약이나 해외 진출이 아니다. 이들에겐 보수보다는 거주지 이전이 동기부여가 된다.

대다수 북한 사람들의 삶은 한없이 암울하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식량과 의료 장비, 난방 용품 등이 부족해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2023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이 다양한 국가 관련 범죄 혐의로 가게 될 수 있는 수용소에서는 강제 노동과 성폭력이 흔히 발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 중에는 강제로 낙태를 해야 했던 여성 수감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평양의 풍경은 다르다. 생활 수준과 여가의 기회가 지방보다는 나은 편이다.

고층 아파트 단지와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 볼링장, 백화점, 동물원, 박람회장 등 퇴색한 소비에트 시대의 콘크리트 대작주의(내용과 깊이 보다는 형식과 규모를 크게 하는 데 집중하는 창작 경향)가 반영된 도시 풍경이 평양의 모습이다.

바이히는 “시골이 아닌 평양에 사는 것 자체가 특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권력자로부터 평양에 있는 아파트를 선물받았고, 부모님을 평양으로 모셔올 수도 있었습니다. 대표팀에 뽑힌다는 것은 한 여성과 가족 전체의 커리어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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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왕조’는 1948년 이래 북한을 통치해 왔다.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은은 2011년부터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영국의 여자 축구 경기에 다섯 자릿수 관중이 든 경우는 흔치 않았던 2000년대에도, 북한은 여자 축구 경기로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김일성 경기장을 꽉 채웠다.

관중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든 아니든, 군인 군중이나 공장 직원 전체가 국가적 행사에 동원됐든 아니든, 선수들은 분명 북한 내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바이히는 “그들은 스타였다”고 말했다. “팬들은 그들을 알고 있었고,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했습니다.”

“여자 축구팀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있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나 금지된 연애 등 허구적인 난관들이 스토리 전개에 등장했습니다.”

대표팀에 뽑힌다는 것은 선수들이 북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은 국가의 허가 없이는 해외로 나갈 수 없다.

반면 국제 시합이나 해외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다른 동포들은 알지 못하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

“제가 동행했던 선수들은 ‘미국인은 우리보다 키도 훨씬 크고, 힘도 훨씬 세다. 충분한 식량과 우리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력은 너무나 강해서 아무도 그런 것들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바이히는 “그들은 모두 축구를 좋아했지만 그들의 가장 큰 동기는 지도자와 국가였다”며 “‘국가의 영광이 가장 중요하고 개인은 큰 의미가 없다’는 사고방식을 주입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7 여자 월드컵에서 북한은 미국과 무승부를 거둔 뒤, 스웨덴과 나이지리아를 제치고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8강에서 독일에게 패하며 탈락했고, 독일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오라일리는 “2007년 월드컵 당시 북한 선수들과 같은 호텔에 묵었다”며 “북한 선수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들과 대화나 카드 놀이 등을 통해 일종의 문화적 돌파구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소통을 별로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금세 마음을 접었죠. 제 일방적인 생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미소와 눈맞춤이 오가는 일은 많지 않았어요. 그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모두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오라일리는 “하지만 훈련은 어떤지,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언제부터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등 선수들의 이야기가 항상 궁금했었다”고 말했다.

북한 여자 대표팀의 2011년 월드컵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목을 받았다. 2007년의 이변으로 주목을 받은 지 한 대회 만에, 엄청난 도핑 스캔들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 선수 중 5명이 희귀한 스테로이드 약물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은 더욱 특이했다.

사향노루의 분비기관으로 만든 한약 때문에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라 해명했던 것.

북한 관계자들은 북한 내 훈련장에 번개가 치면서 벼락을 맞은 선수들을 치료하기 위해 먹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선수들은 애국심과 여자 경기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땀으로 가득한 훈련 이상의 무언가를 통해 힘을 냈던 것일까?

북한 여자 축구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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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북한 여자 월드컵 대표팀 5명이 희귀한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을 보여 다음 대회인 2015년 대회에는 참가 금지를 당했다

북한을 의심한 FIFA는 2015 월드컵에 북한의 출전을 금지했다. 2019년 대회 때는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리고 북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코로나 제한 조치를 펴며 국제 무대에서 철수하면서 2023년 대회에도 불참했다.

하지만 지난 가을, 북한 여자 축구는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다만 2월에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일본에 1차전과 2차전 합계 2대1로 패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놓쳤다.

북한 팀이 앞으로 어떻게 활약할지는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풍부한 유소년 선수층의 재능이 성인 팀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전 세계 여자 축구의 발전과 북한의 일시적 고립으로 인해, 북한은 뒤쳐지게 될까? 팬데믹 국경 폐쇄로 식량난이 가중되던 상황에서 북한 권력층은 주민들의 필수적인 요구를 얼마나 채워주었을까?

북한은 국가 차원의 방대한 계획은 물론 아주 세밀한 내용까지 모든 게 미스터리다. 북한에 관한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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