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팔로워 144만 명의 스타 작가, 예술계의 인플루언서, 패션 하우스와 럭셔리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는 현대미술의 아이콘.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출생해 마이애미에서 성장한 그는 뉴욕의 예술대학 졸업 후 2004년 마이애미에서 전시 공간 ‘더하우스’를 열었고, 페로탕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페로탕 갤러리와의 협업 20주년을 기념해 페로탕 뉴욕과 파리에서 나란히 회고전을 열었다.
그런 그의 개인전이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10월 13일까지 개최된다. <다니엘 아샴: 서울 3024>는 현대의 사물을 미래에 발굴된 유물로 해석하는 ‘상상의 고고학’ 세계관을 바탕으로 1000년 뒤 아포칼립스 서울의 풍경을 펼쳐낸다. 동시에 건축적 모티프를 활용한 초기작부터 전 세계 호텔 메모지에 그린 스케치, 가상의 건축물을 중심에 둔 영상 설치 작업 등 20여 년의 작품 세계를 망라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250여 점의 작품과 함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신작 2점을 공개했다.
1 ‘Bronze Eroded Bust of Rome Deified’, 2022, Bronze, polished stainless steel, 121.9×81.3×99.1cm. ©Daniel Arsha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2 ‘Blue Calcite Eroded Venus of Arles’, 2019, Blue calcite, quartz, hydrostone, 208×102×74cm. Photo by Claire Dorn.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이스터섬에서 발견한 것
그리스 로마시대 유물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런 광경을 마주했을까. 첫 번째 섹션 ‘조각 박물관’에 들어서면 넓은 전시실에 다니엘 아샴이 재해석한 고대 조각상이 흩어져 있다. ‘아를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하마드리아데스’ 등 유명 조각상은 곳곳이 침식된 모습이다. 부식된 틈 사이 수정, 방해석, 황철석 같은 광물이 박혀 있는데, 이는 전신상의 절단된 팔을 철심처럼 연결하거나, 부서지고 파인 얼굴 틈새에서 반짝인다. 아샴이 수정을 활용한 것은 물속 규산을 흡수해 자라나는 특성 때문이다. 세상이 무너진 뒤 잿더미 아래에서도 광물은 서서히 자랄 것이다. “작품 속 수정은 자라고 있는가, 부식되고 있는가? 이 같은 질문을 통해 관객은 물체를 고유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작가는 밝힌 바 있다.
‘상상의 고고학’의 아이디어는 남태평양 이스터섬에서 태동했다. 루이 비통의 트래블 북 프로젝트에 착수한 아샴은 2010년 이스터섬에서 6주 동안 머물렀다. 그가 일찍이 호기심을 품고 있던 지역이었다. “섬에서 엄청난 쓰레기가 모인 장소를 발견했어요. 폐차나 컴퓨터 같은 물건이 섬의 한곳에 쌓여 있었죠.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모아이 석상과 컴퓨터 사이의 시간적 거리가 현재와 1000년 후 미래의 거리보다 더 가깝다고요.” 고고학에 대한 인식은 유물과의 시간 간극에서 피어난다는 생각을 발전시킨 그는 역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을 지질학적 재료로 삼아 미래에 가져다놓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조각상들은 실제로 프랑스의 몰드를 활용해 완성한 것이다. 파리 기메 미술관 전시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그는 박물관의 몰드를 보관한 주형 창고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아샴은 허가를 받아 주형으로 고미술을 재창조할 수 있었다.
‘포켓몬 동굴’과 ‘발굴 현장’ 섹션 역시 이 같은 고고학 작업의 일환이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동굴 안에는 부식된 포켓몬 조각이, 맞은 편 벽에는 포켓몬 카드를 비석처럼 조각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발굴 현장’은 뉴스에서 볼법한 고고학 유물 발굴 현장이 발아래 펼쳐진다. 라디오, 턴테이블, 영사 필름 등의 전자기기와 야구 글러브, 모자, 그리고 잡지까지. 오늘날의 일상적인 사물이 재에 덮여 시간관에 혼란을 일으킨다. 비로소 미래인의 관점으로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섹션을 묻자 아샴은 ‘발굴 현장’이라고 답했다. “고대 유물 시리즈는 전체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요. 이 같은 현장을 전시 공간에 재현함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층위를 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Amethyst Crystallized Seated Pikachu’, 2020, Amethyst, quartz, hydrostone. ©Daniel Arsha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2 ‘Rose Quartz Eroded Mamiya M645 Camera’, 2022, Rose quartz, quartz, hydrostone, 11.7×12.7×18.1cm. ©Daniel Arsha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원 체험적 기억, 태풍 앤드루
1992년 8월, 마이애미를 강타한 허리케인 ‘앤드루’는 당시 주민에게, 그리고 열두 살이던 아샴에게 큰 상흔을 남겼다. 2005년 카트리나 이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록된 앤드루는 당시 6만3000채 이상의 주택을 파괴했다. 그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작가는 태풍이 집을 파괴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건축적 해체의 한 형태였다’고 당시를 묘사한 그는 ‘허리케인이 많은 주거 공간을 파괴했고 그것이 재건되는 과정에서 부식과 침식이 새로운 상징성으로 떠올랐다’며 작업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영상 전시실에서 상영되는 영화 <모래시계> 3부작에 허리케인의 기억이 자세히 드러난다. 다니엘 아샴을 주인공 삼아 자전적 스토리와 허구를 결합한 영화는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는 타임슬립물이다. 작가는 연출과 극본에 참여한 것은 물론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직접 연기했다. 2047년의 다니엘은 모래시계를 이용한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찾아간다. 노년의 다니엘은 현재의 주인공에게 트라우마가 곧 창작의 동력이며 허리케인의 경험이 선물이었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청년 다니엘은 트라우마적 기억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어린 다니엘을 붙잡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것이 트라우마에 대한 작가의 관점일까? 그는 “결말의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답했지만, 영화 속에서 10대의 자신을 붙드는 몸짓에서 간절함마저 느껴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가 실로 관심을 가진 것은 시간을 늘이고 줄이는 일이다. 정확히는 그러한 작업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현재를 직시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늘 영화 작업에 관심이 컸어요. 특히 <모래시계>에서 다루는 시간 여행은 평소 흥미를 느낀 설정이에요. 우리가 삶에서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이 경험을 해석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시간성을 압축하거나 확장하는 시도가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지금 이 순간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1 ‘Rome Deified Found in Bukhansan 3024’, 2024, Acrylic on canvas, 157.5×172.7cm.©Daniel Arsha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2 ‘Athena Helmeted Found in Bukhansan 3024’, 2024, Acrylic on canvas, 157.5×172.7cm. ©Daniel Arsha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3024년의 북한산 풍경
다니엘 아샴은 이번 전시에서 신작 회화 2점을 선보였다.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헬멧을 쓴 아테나’와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신격화된 로마 조각상’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1000년 뒤 북한산이 배경이다. 폐허가 된 풍경 속에서 남은 것은 돌산과 나무, 그리고 파괴된 석상 정도다. “전시 기획 단계부터 미래에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의 산이나 나무 이미지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전통적인 서양 회화와 동양화는 풍경을 묘사하는 기법에 차이가 큰데, 둘을 한데 융합하고자 했습니다.” 공간감과 원근감은 서양화의 구도를 닮았으나, 단색조의 색채가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사실 특유의 색조는 색맹이라는 작가의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주로 흑백의 단색조를 사용하거나 몇 가지 옅은 색상을 섞는다. 초기작은 대개 화이트로 작업했으나, 사람들이 보는 색상이 실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컬러 팔레트를 제한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지금은 팔레트의 12개 색상에 숫자를 붙여두고 작업을 이어간다.
“시간성을 압축하거나 확장하는 시도가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지금 이 순간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럭셔리 브랜드가 사랑하는 작가
아샴의 활동 가운데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안무가 머스 커닝햄과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 거너, 더 위켄드부터 티파니, 디올, 아디다스, 리모와, 위블로, 포르쉐 등의 글로벌 브랜드, NBA 농구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 섹션을 할애해 그의 뉴욕 스튜디오를 재구성했다. 미래 유물처럼 일부가 부식된 형태의 조각과 시그너처 컬러인 ‘아샴 그린’으로 물들인 제품 및 피규어, 스포츠 유니폼, 가구에 이르기까지 반가운 컬래버레이션 작품이 가득하다.
왜 많은 브랜드가 그와의 협업을 원할까? 본래 오브제의 형태를 손상하는 작업을 반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티파니, 포켓몬과 협업한 펜던트에는 침식된 포켓몬 조각이 달려 있고, 모엣&샹동 샴페인과 디올 농구공, 리모와 슈트 케이스, 포르쉐 911 역시 종말 이후 미래에 발굴된 듯 부식된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그의 작품 속 고대 조각상은 당대의 대중문화 아이콘이었다. 이러한 인식에서 현재 글로벌 아이콘인 포켓몬 캐릭터 역시 작품에 활용한 것이다. 어쩌면 많은 브랜드가 아샴의 작업에 매료된 이유는 그들의 제품이 현대의 아이콘으로 미래에 기억되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고고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미래의 유산을 마주하는 작업을 통해 상품 수명이 짧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잠시나마 영속성을 꿈꿀 수 있을 테니.
그렇다면 작가가 협업 브랜드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어릴 적부터 열광한 브랜드와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어요. 빈티지 포르쉐나 나이키가 그 예죠. 또한 많은 경우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편이에요. 거너, 어셔 등의 뮤지션은 이전부터 친분이 있어 함께 작업했고요. 사실 대부분의 협업 제안은 거절하고 있어요.” 아샴에게 협업의 주된 목적은 작품을 접하는 관객층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는 아디다스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예로 들었다. “기존 미술 관객이 아닌 어린이나 10대, 갤러리와 미술관이 없는 지역의 주민 등 새로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이렇듯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미술계 바깥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해요.”
1 ‘Still Life with Bust of Deified Rome Blue’, 2023, Acrylic on canvas, 191.8×161.3cm. Photo by Guillaume Ziccarelli.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2 ‘Fractured Idols VI’, 2023, Acrylic on canvas, 285.8×250.2×8.6cm. Photo by Silvia Ro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미래를 향한 아네모이아
Y2K가 트렌드로 떠오르며 불과 2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 감성을 현재로 불러들인 지 얼마나 됐을까. 최근에는 뉴진스 멤버 하니가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 무대를 재현해 1980년대를 소환했다. 당시 시티팝 붐을 겪은 세대는 물론, 이후 세대도 열광하는 것에서 보듯 경험하지 못한 시절에 대한 향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미국 작가 존 케닉은 <슬픔에 이름 붙이기>를 통해 이 현상을 ‘아네모이아(Anemoia)’라 명명했다.
‘상상의 고고학’ 작업 전반에서 다가오는 감정은 이 같은 향수다. 예컨대 그가 지난 1년간 집중한 ‘분절된 아이돌’ 시리즈는 화면을 절반으로 나눠 고대 석고상과 현대 애니메이션 화풍의 인물을 병치했다.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도상이 시대를 넘어 연결되는 작품은 실제로 경험한 적 없는 수 세기 전과 유년 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동시에 유발한다.
‘분절된 아이돌’이 대상과 화풍의 차이로 혼란을 야기했다면, 스테인리스스틸과 동을 혼재한 조각 작품은 소재의 차이로 시간 감각을 뒤흔든다. “각각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재료를 섞어 작업하는 데 흥미를 느껴요. 실제로 스테인리스스틸과 브론즈로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수년에 걸쳐 기술을 연마했어요. 앞으로도 이 작업을 이어 나갈 예정이에요.”
수 세기 전부터 1000년 후 미래까지 동시적으로 향수를 끌어안고, 평소 시간 여행을 곧잘 상상한다는 그에게 어떤 시대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지 물었다. “미래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면 향수를 경험하고 싶은 시간은 미래입니다.” 왜 불가능하겠는가. 다니엘 아샴이 조성한 폐허에 발 들인 우리는 이미 미래에 도착한 셈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이내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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