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1주기'… 20세의 해병대원을 기억하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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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1주기'… 20세의 해병대원을 기억하는 청년들

BBC News 코리아 2024-07-19 10:45:14 신고

채상병 분향소
NEWS1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된 채수근 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지 1년을 맞아 17일 청계천광장에는 시민분향소가 마련됐다

2023년 7월 경북 예천군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던 해병대 제1사단 소속 채수근 일등병(순직 이후 ‘상등병’으로 추서 진급)이 숨진 지 어느덧 1년이 됐다.

이 사고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수사 외압 논란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채 상병 특검법’이 발의됐으나, 두 차례에 걸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을 행사로 인해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지난 8일 업무상과실치사 등을 고발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해 경북경찰청은 최종 '혐의없음'으로 불송치결정을 내렸다.

해병대 1사단 7여단장 등 현장지휘관 6명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송치,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벌인 말단 간부 2명에 대해선 불송치 결정이 났다.

여러 방면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사실상 '진실 밝히기'보다는 '정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도 지난 1년 간 계속해서 채 상병을 기억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있다.

'누구나 그 물살에 휩쓸릴 수 있었다'

경북대학교에 붙은 채상병 진상규명 대자보
오버 더 블랭크
경북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오버 더 블랭크'는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경북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 ‘오버 더 블랭크’는 채 상병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활동을 지난 몇 달간 벌여왔다.

차별과 불평등, 기후 위기 등을 주제로 활동하는 이들은 채 상병 순직사건의 '외압 의혹'을 폭로한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후배들이기도 하다.

지난 3월 경북대학교에 해병대 예비역 재학생이자 오버 더 블랭크 소속 부원인 신승환 씨의 대자보가 붙었다.

신 씨는 대자보에서 “(채 상병과) 비슷한 시기에 복무한 해병으로서, 나아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층으로서 채 상병 사건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공유하고, 정권에 대한 비판과 심판의 필요성에 대해 전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는 채 상병의 죽음이 “우연적 사건이 아닌 필연적이며 인과가 분명한 사건”이라며 “어떻게 지휘 관련 제일 위에 있는 군 통수권자가 모른 척하고 있을 수 있냐”고 비판했다.

신승환 씨는 BBC코리아에 “대자보를 붙일 당시에는 채 상병 순직에 대해 객관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거의 없을 때였다”며 “통신 기록 보존이 1년인데, 이런 식으로 수사가 미뤄지고 유야무야하다간 이 정도의 극단적 사건이 묻혀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어 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기 복무했던 입장으로서 군 인권이 이전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간다면 다시 후퇴의 길을 걸을 것 같았습니다. 제 동생도, 학교 후배들도 군대를 갔다 왔거나 갈 예정일텐데 이런 식으로 군 인권이 후퇴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신 씨는 또 이번 사건으로 주변에 군대 전역을 했거나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또래들이 ‘분노했다’고 말했다.

“원래 군 사망 사건 자체가 일어나더라도 덮고 넘어가고, 장성급에서 잘라내고, 최대한 이슈화가 안되는 선에서 넘어가는 일이 흔하다 보니 ‘군대 가면 어차피 안 챙겨준다’는 생각으로 체념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그런데 (채 상병 순직 사건이) 이 정도로 커지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무서워하고, 분노하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반응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번 달 초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 카드를 또 한 번 든 것에 대해 신 씨는 “끊임 없이 나오는 의혹과 사건에 학생으로서 대처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이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걱정이 앞선다”며 “이번 사건이 장기적으로 마무리가 잘 된다면 구조적 시각에서 군 문제가 해결될 단초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채상병 특검법 수용 촉구하는 대학생 기자회견
오버 더 블랭크
오버 더 블랭크는 청년들이 느낄 절망감이 체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청년들의 정치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했다

오버 더 블랭크 공동대표 이채은 씨도 “채 상병 사망 사고가 발생한 후 뉴스를 지켜보면서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들이 부조리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교내에서는 정치적 무관심이 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학우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전달하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한 학내의 공론화에 우리가 앞장서자, 대학생 청년들이 정치의식을 높일 수 있도록 주도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TF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계속된 참사 소식으로 피로감과 좌절감, 절망감이 들지만 그럼에도 체념하는게 아니라 희망으로 나아가보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서 (진상 규명 활동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채 상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동아리 부원 몇몇은 국가에 대한 불신에 무엇을 믿고 가야되는 건지 모르겠고, 계속 의무만 부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태도에 대해 비관적으로 빠지게 만든다는 이야길 했어요. 반복되는 참사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많아져서 정치적 무관심이나 혐오로 이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지난 7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어차피 기대했던 건 없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YTN의뢰로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전국 성인 유권자 2000명을 대상으로 채상병 특검 필요성에 대해 질문한 결과 69%가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는 답변은 21%였다.

하지만 해당 여론조사가 있고 하루 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에 이어 또 다시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15번째 거부권이었다.

'채 상병의 죽음이 외롭지 않길'

원광대 채상병 진상규명 촉구 서명운동
원광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원광대학교 창의공과대학 학생회는 동문인 채 상병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진상규명 촉구 서명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채 상병은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 2022년 원광대학교 창의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채 상병 순직 소식을 들은 같은 학교 재학생들은 어땠을까.

원광대학교 창의공과대학 학생회는 동문을 ‘가슴에 새기고 함께하고자’ 지난 3월 채 상병 순직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해당 서명 운동을 준비한 창의공과대학 학생회 사무국장 박규성 씨는 BBC코리아에 “채수근 상병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공과대학 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적으로 서명 운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우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학생들 한 명, 한 명 서명을 받으며 채수근 상병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서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채 상병의 순직 소식이 처음 들려왔을 때 교내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첫 번째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특히 군대를 갔다 오거나, 가야 하는 나이가 된 남학생들은 군대 소식에 관심이 많으니까요. 학교에선 소중한 한 명의 학우였고, 집에서는 소중한 아들이었을텐데… (채 상병이) 하늘에서도 우리가 다 같이 추모하고 있단 것을 보고,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컸습니다.”

박 씨는 이번 사건으로 군 입대를 앞둔 학우들의 걱정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불미스러운 사고가 났는데도 국가 차원에서는 솔직히 회피하는 식의 대응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그래서 소위 말해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 아닌가, 라는 식의 우려를 하는 학우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이번 사건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길 바라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 씨는 책임과 대책을 강조했다.

“군대를 가야하는 의무를 부여할 거라면 그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확실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와 비슷한 불미스러운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나

대민지원 나선 군장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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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지난해 12월 '국방 재난분야 대민지원 안전 매뉴얼'을 제정했다

채 상병 순직 1주기를 앞두고 또 다시 집중 호우가 내려 군 장병들과 가족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국방부는 재난관리 긴급구조지원기관으로서 재난신속대응부대로 육군 특전사 각 여단과 해병대1사단을, 탐색구조부대로 해군 각 함대 및 특수전전단, 공군 제6탐색구조비행전대 등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해병대 예비역인 신승환 씨에 따르면 채 상병이 속해 있던 해병대 1사단의 경우 상륙돌격장갑차를 투입해 폭우 등 재난 상황에서 인명 구조를 하는 모습으로 언론 등에 많이 비춰지며 대중에 좋은 인상을 남겨왔다.

하지만 채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당시 내성천 일대에는 상륙돌격장갑차가 3대까지 동원됐으나, 유속이 빨라 장갑차가 한 시간 안에 철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갑차조차 버티지 못한 물살이 흐르던 곳에 구명조끼조차 입지 않은 해병대원들이 투입됐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국방부는 채 상병 순직 후 5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 '국방 재난분야 대민지원 안전 매뉴얼'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재난 유형을 풍수해, 지진, 산불 등 33개로 분류하고 수상 조난, 추락 등 16개의 위험요인에 따라 행동요령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대민지원 요청에 대해 부대 및 장병의 능력 초과 시 상급 부대에 건의하고 지방자치단체 등에 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통보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국방부는 16일 '국방 재난관리 훈령'을 개정에 나섰다고 밝혔다. 훈령 제23조에 "재난이 발생한 지역 또는 재난 취약지역에 위치한 부대의 장은 '국방부 재난 분야 대민 지원 안전매뉴얼'의 위험 요인별 행동 요령과 소속군 참모총장(해병대의 경우 해병대사령관)이 마련한 안전매뉴얼을 참고해 대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국방부 차원의 대민지원 안전매뉴얼이 마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산불 진화 지원하는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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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염건웅 교수는 주어진 임무보다 재난 현장에 투입된 장병들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방부는 재난분야 대민지원 시 위험 평가 후 작전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안전, 구호, 장비 휴대 등 안전이 확보된 뒤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군은 소방 당국과 경찰 등 주무기관의 현장통제관의 통제를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 군 지휘체계 내 강압적인 지시를 제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원대학교 경찰소방행정학부 염건웅 교수는 “그동안 군 장병들이 대민지원 업무에 너무 과도하게 투입되는 경향이 있긴 했다”고 말했다.

“'국가의 일’이니 시키면 해라, 라는 식의 생각을 갖고 군인이 (위험 상황에) 투입되다 보니 기본적인 안전 조치가 시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기본적인 안전이 확보 됐는지, 안전 장비를 갖췄는지, 환경적인 조건으로 봤을 때 투입 가능한지 등 요소를 고려해야되는데 제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입됐기 때문에 채 상병 순직 사고는 이런 것들의 결정적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대민지원 안전 매뉴얼을 갖추게 됐으니까 이 매뉴얼에 기본적으로 근거하되, 매뉴얼에 없더라도 현장에서 지휘관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일단 투입된 장병들의 안전을 더 우선시하는게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염 교수는 또 “군의 재난 상황 투입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군인은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게 주 업무”라며 “군 장병이 재난 상황에 투입되는 건 이들의 보조 업무이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 상황은 유동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 교육과 함께 지휘관들은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매뉴얼과 더불어 지휘관 교육도 필요합니다. 안전 장비는 기본적으로 갖춰야겠죠. (대민지원이) 군의 주 업무가 아니라 제대로 (장비가) 지급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안전 장비를 제대로 보급하고, 장비 착용 규정 숙지도 제대로 해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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