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출신의 건축가 도르테 만드루프의 어린 시절 꿈은 조각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에서 도예를 배운 그는 코펜하겐 왕립예술학교 입학을 꿈꿨다. 하지만 왕립예술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소수였고, 그중 예술가로 성공하는 사람은 더더욱 적었다. 보다 현실적인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1년은 의학을 공부했고, 심지어 로스쿨에도 등록했다. 건축은 짧은 듯 긴 헤매임 끝에 만난 반가운 일이었다.
스웨덴 말뫼에 있는 이케아 사옥(IKEA Hubhult).
“1991년 오르후스 건축 학교로 편입했을 때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느꼈다. 비로소 집에 온 듯한 기분이었달까. 실질적인 고민과 예술적 탐구, 과학과 예술의 교차점 위에서 작업하는 게 잘 맞았던 것 같다. 다양한 관심사가 사회문화적 조건을 의미 있게 다루는 방식과 만나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졸업 후 1999년 코펜하겐에 스튜디오를 설립한 그는 학교와 커뮤니티 센터, 자연보호구역에 있는 방문자 센터 등 다양한 공공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도르테 건축의 주된 화두는 지속 가능성이다. 그가 설계한 ‘바덴해 센터(Wadden Sea Centre)’는 덴마크 유틀란트(Jutland) 남부에 있는 방문자 센터이자 박물관으로, 덴마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거대한 습지대가 있어 1500만 마리의 철새 서식지이기도 하다.
정수 탑을 아파트로 변모시킨 ‘예어스보르 워터 타워(Jægersborg Water Tower)
이곳에 도르테는 땅에서 솟아오른 듯한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 초가집을 연상케 하는 지붕은 인근에서 채취한 2만5000여 개의 갈대로 만든 것. 건조 외에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았으며, 염분과 바람 덕에 곰팡이가 피지 않아 별도의 유지 관리도 필요하지 않다. 여기에 지열과 태양광 패널로 에너지를 조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듯 건물의 시작부터 유지까지 환경과 지역을 고려하는 도르테에게 지속 가능성이란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전략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감정이나 관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것이다.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맥락에 맞는 재료와 공법을 분석하고,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게 실천한다.” 그에게 좋은 건축이란 장소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올리는 것, 나아가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다.
“바덴해 센터는 건축에 관심 없거나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건축은 기능뿐 아니라 신체 감각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일상적이고 감각적인 소통이 건축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린란드에 조성 중인 일루리사트 아이스피오르드 센터(Ilulissat Icefjord Centre)
건물을 예술과 철학, 디자인, 기술의 교집합으로 보는 도르테는 자신을
“어떤 사조에도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이자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여성 건축가를 향한 시선에도 적용된다. 몇 해 전 그가 쓴 ‘나는 여성 건축가가 아니다. 그저 건축가일 뿐이다(I am not a female architect. I am an architect)’라는 칼럼이 그것.
“여성 건축가들이 건축 분야에 기여한 부분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남성 건축가와 여성 건축가를 계속해서 구별하는 시도 역시 불평등과 편견의 징후 아닐까?” 현재 도르테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프로젝트는 ‘누나부트 이누이트 헤리티지 센터(Nunavut Inuit Heritage Centre)’를 짓는 일이다. 건물은 캐나다 최북단에 자리할 예정이며, 북극의 자연과 사라져가는 이누이트족의 문화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프로젝트다. 또 벨기에에서는 산업단지를 주거지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한 달 후엔 덴마크 헤닝에 있는 공예대학교가 착공에 들어가 내년에 문을 열 예정이다.
“건축은 점점 복잡한 분야가 되고 있고, 여러 지식을 통합하고 원활한 협업을 이끌어내는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젊은 시절 내가 얻은 교훈 중 하나는 ‘나의 역할을 믿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벗어나 내게 영감을 주는 것을 좇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도르테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은 건축을 넘어 자신의 삶과 미지의 땅으로 넓게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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