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자(父子)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아들은 중상을 입고 응급실로 이송됐다. 응급실에 도착한 의사가 아들을 보고 “난 수술 못합니다. 이 소년은 내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고 의아함을 느꼈다면 의사는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는 고정된 편견 하에 일종의 편향적 사고를 행한 것이다. 사실 이 의사는 ‘여성’이자 ‘아이의 어머니’였다. 이처럼 특정한 직업, 인종, 성별 등에 대한 고정된 기대나 선입견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제한하는 사고의 오류를 ‘마인드버그’라고 말한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들 말하지만, 실제 일터에서는 금남금녀의 벽과 임금 차별, 성차별로 가득차 있다. 실제 <투데이신문> 이 현장에서 만난 보육교사, 간호사, CEO, 메이크업 아티스트, 대리운전 기사, 플로리스트, 자동차 정비사, 소방관 등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과 편향적인 관점을 지적했다.
이에 연재 기획 [남녀편견지사]를 통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직업을 택한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더 나아가 성평등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관련 전문가들의 제언을 담아냈다.
【투데이신문 박효령·왕보경 기자】 분홍색은 여자색, 파란색은 남자색이라는 구시대적인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자아이도 로봇을 가지고 놀 수 있고, 남자아이도 인형놀이를 할 수 있다고 교육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교사들은 자라나는 아동들에게 성별에 관계없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뛰놀고 교육받는 공간은 극단적인 성비 불균형으로 가득 차 있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성별은 직업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건 특정 성별을 가진 선생님뿐이다.
“여자 동기들과 달리 수십 번 지원 끝에 취업”
2년 차 남자 보육교사 강진수씨(25)도 예외가 아니다. 강씨는 근무지의 유일한 남성 교사다.
대가족과 함께 자랐던 강씨는 어린 동생들을 돌볼 일이 잦았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익숙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아해 유아교육과에 진학했지만 어린이집 교사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강씨는 대학교 졸업 후 취업을 위해 70여개의 이력서를 넣었다. 주변 여자 동기들과는 달리 서류 심사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자 동기들은 4~5군데 이력서를 넣으면 절반은 서류 합격을 했지만 남성인 강씨는 달랐다.
수십 번의 지원 끝에 단 5곳에서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면접을 보러 갔던 날 강씨는 일반 교사가 아닌 ‘체육 교사’로 일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여성 동기들과 같은 교육 과정을 밟고, 같은 4년제 유아교육과 학위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뭇 다른 취급을 받은 것이다.
면접을 보러 간 대다수 유치원과 보육 기관에서 강씨를 체육 교사로 채용하길 원했다. 강씨는 체육 전담 교사가 아닌 아이들의 전반적인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 다른 동기들과 비슷한 스펙, 똑같은 과정을 거쳐왔는데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체육 교사로만 채용이 진행되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수십 번의 고배를 맛본 뒤 취업할 수 있던 건 ‘블라인드 채용’ 덕분이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강씨는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규모가 큰 어린이집 위주로 이력서를 넣었다. 국공립 어린이집 대다수가 성별 등 다른 요소들과 관계없이 오직 서류와 실기 점수로 평가해 채용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현재 근무 중인 고강어린이집도 마찬가지였다. 교육 계획서 작성 등 실기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강씨는 지난해부터 전임 교사로 근무 중이다.
“男 교사, 꼼꼼하지 않아” 일터에 가득한 편견 섞인 말들
지난해 강씨는 만 3세 반을 담당하는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뛰어난 평가 점수를 받고 취업에 성공한 강씨지만 그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과 편견은 여전히 존재했다.
강씨는 남성 교사는 ‘섬세하지 않다’거나 ‘꼼꼼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남성 교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불신하고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학부모 중에서도 ‘아직까지는 여성이 주 양육을 맡는 가정이 많기 때문에 남성 교사는 못 미덥다’든가 ‘엄마 같은 케어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성 교사가 여성 교사에 비해 유달리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아동과의 신체적 접촉이다. 성범죄 등을 우려한 학부모가 남성 교사와의 접촉을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 여성 교사는 남아·여아 전부 화장실 지도를 하지만, 남성 교사들은 여아 화장실 지도를 담당하지 않는다. 강씨의 경우도 여아 화장실 지도 시에는 주변 여성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생활 지도 과정이나 놀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행해지는 접촉에도 남성 교사는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강씨는 “주변 남성 교사가 유아교육과 재학 시절 나갔던 실습에서 아이를 안아주자 클레임이 들어온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를 인식해 강씨도 아이들과의 스킨십이나 접촉에 있어서는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부담스럽고 불편한’ 존재, 남성 보육교사
〈투데이신문〉은 남성 보육교사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파악해 보기 위해 유·아동 보육 및 교육기관 관계자와 학부모, 예비 학부모 42명을 대상으로 취재를 진행했다.
남성 보육교사·유치원 교사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취재원 중 33.3%(14명)가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직장 내 성 다양성이 필요하다’거나 ‘여성 선생님보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나 활동에 장점이 있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반면, 나머지 66.7%(28명)은 남성 보육교사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기하다’, ‘남성이 아이를 돌보는 것 자체가 상상되지 않는다’ 등 생소하다는 반응과 함께 ‘(남성 보육교사는) 여성스러울 것 같다’던가 ‘남성이라서 전문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식의 편견 섞인 반응을 보이거나, ‘부담되고 불편하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성범죄에 관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던가 ‘남성이 주는 신체적 우위 때문에 아이를 맡기기에 불안하다’ 등 남성 보육교사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남성 교사에게 귀하의 자녀를 맡길 의향이 있는냐는 질문에는 학부모 및 예비 학부모 32명 가운데 절반만이 자녀를 맡길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반면 나머지 절반은 남성 교사에 대해 확인 절차를 거친 후 맡길 의향이 있다는 의사를 표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맡기고 싶지 않다는 대답을 했다.
보육업계 및 유아 교육 종사자 33명을 대상으로 남성 교사와 함께 근무할 경우 어떨 것 같은지 묻자 72.7%(24명)가 ‘상관없다’, ‘긍정적인 상생의 효과가 있었다’ 등의 답변을 했다.
실제로 남성 교사와의 근무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한 보육교사는 “내가 만난 한 남성교사는 나의 편견대로 꼼꼼하지 않고 남성이라는 특수성에 기대 업무 처리에 있어서 꼼수를 부리는 등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어 “다른 남성 교사는 솔선수범한 모습을 보이고 수업에 있어서도 열정적이었다”며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의 성향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국에 단 0.5% ‘남성 보육교사’
이 같은 편견 하에 남성 보육교사의 수가 여성 대비 현저히 적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난 2022년 기준 국내 보육교사 가운데 남성 교사는 0.5%의 비중을 차지했다. 전체 보육교사 23만1304명 중 여성 보육교사는 23만167명, 남성 보육교사는 단 1137명이었다. 남성 유치원 교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전국 전체 유치원 교원 5만5637명 가운데 여성 교원은 5만4695명, 남성 교원은 942명으로 1000명도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성 불균형은 심각하다. 지난 2021년 OECD 국가를 대상으로 한 유치원 및 어린이집 여성 교사 비율 조사에 따르면, OECD 평균 95.9%라는 결과가 나왔다. 각 국가별로 핀란드 97%, 독일 94.4%, 이탈리아 98.6%, 영국 92%, 미국 92.8%, 대한민국 99%로 대다수 국가에서도 여초 현상이 뚜렷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더 나아가 한국은 남성 교사의 비율이 1%밖에 되지 않는 심각한 쏠림 현상을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의 이유는 보육 현장이 ‘여성 중심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취재 결과, 학부모들 중 남성 교사가 영아 반을 담당하거나, 여자 유치원생을 지도하는 경우 탐탁치 않아했으며,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나 학부모의 우려를 경험했던 남성 교사들도 있었다.
광주대 아동학과 진재섭 교수는 “돌봄 노동이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과 함께 남성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남성의 유아 보육·교육 현장 참여를 저해하는 원인”이라며 “사회 전반적으로 영유아 보육과 교육이 남성이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어찌보면 ‘역차별’에 가까운 시각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적은 급여’와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인 낮은 인식’도 남성의 업계 진입을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다.
지금까지 돌봄 노동은 여성에게 전가된 몫이 상당했다. 특히 돌보는 행위 자체를 경제적 가치를 매길 수 있는 노동이 아닌 일종의 봉사정신, 희생 등의 가치로만 평가해왔다. 저평가된 돌봄 노동의 가치는 보육교사의 급여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대적으로 가정을 꾸려나갈 때 남성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인식하는 국내 사회에서 낮은 사회적 지위·열악한 근무 조건·낮은 급여 등으로 인해 남성이 보육 현장 진입을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 박창현 연구위원은 “돌봄 영역이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고정돼 있어 남성 진출이 적다”며 “남성의 진출을 늘리기 위해 인식 개선과 함께 보육업계 전반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성 보육교사, 건강한 발달에 긍정적 영향
남성 보육교사에 대한 이유 없는 불신과 오해가 존재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들은 분명 필요한 존재다. 남성 교사만이 지닌 장점도 분명하다. 바로, 여성 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인한 체력이다. 바깥 놀이나 체육 수업처럼 체력을 요구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보다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성인 남성으로서 남아들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영유아기는 부모와 교사 등 주변 성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다. 교사가 아동이 성 역할을 습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성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교사 성비가 조화로운 보육 환경에서 영유아가 더욱 건강한 발달을 이룰 수 있다.
성 역할 고정 관념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대다수 어린이집·유치원 교사가 여성이다 보니 아동들은 모든 교사가 여성이라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기 쉽다. 아동에게 남성과 여성의 직업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로 전하는 것보다, 성별에 관계 없이 원하는 직업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 교육적 측면에서도 훨씬 와닿을 수 있다.
광주대 아동학과 진재섭 교수는 “아동들이 다앙한 성역할이나 성규범을 익힐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며 “체력적인 측면에서 강점이 있는 남성 교사들이 증가하면 동료 여성 교사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정책연구소 박창현 연구위원은 “교육 현장에 남성들이 늘면 아동들에게도 긍정적이다”라며 “아동들이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남성의 보육 참여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긍정적인 관점을 습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 남성 보육교사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지난 2001년 ‘성평등을 위한 정부 액션 플랜’과 기금을 마련하고 정부 차원에서 보육 현장에 남성 취업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남성 교사 비중을 2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노르웨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영유아 보육 및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남성 교사의 비중은 지난 1990년대 2%에서 2015년 7%까지 증가했다.
독일에서도 영유아 보육·교육 현장에서의 남성 참여에 관심을 두고 2008년부터 연방 정부에서 전국 단위의 현황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보육 및 교육 현장에서의 남성 참여를 독려하는 교육과 방안을 제시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지난 2012년 4.2%였던 남성의 비중이 2012년 7.9%까지 약 3배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성에 따라 구분되는 전통적인 직업관, 양육의 주체를 여성으로 한정 짓는 고정관념 등이 사회 기저에 내재돼 있다. 사회적 인식은 물론이고 이에 대한 정책도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 차원에서 남성 보육교사 확대를 위한 정책이나 시도도 전무하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0.5%의 남성 교사들은 현장에서 편견에 맞서 싸우며 여성 교사 못지 않게, 혹은 편견을 깨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남성이라 꼼꼼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더 세심하게 아이들을 보살피고, 여성 동료교사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소통하고 협력하며 교육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동들을 섬세하게 보살피고 교육하면서도 남성으로서의 장점을 살려 에너지 넘치고 활동적인 환경을 조성해 나가며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직업은 성별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선호에 따라 택하는 것이다. 본인의 적성을 살려 보육교사로 근무 중인 강씨처럼 우리 사회는 개개인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남초 직장에 계시는 여성분들, 여초 직장에 계시는 남성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성 보육교사에 대한 시선을 바꾸고 마음을 조금만 열어 주시면 좋겠습니다”(보육교사 강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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