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정부가 최근 10년 묵은 쌀 1만5000톤을 경매에 부쳤다.
분명 일상적인 사건은 아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는 태국 정부가 과거 논란이 됐던 쌀 수매 정책으로 농민들로부터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해 최소 10년간 보관해 온 쌀이다.
지난 2011년 잉락 칫나왓 전 총리가 도입한 해당 정책에 따라 정부는 정치적 기반으로 여겨지는 농민들로부터 쌀 약 5400만 톤을 사들였다.
이를 위해 정부가 쏟아부은 금액은 9000억바트(약 33조원) 이상으로, 예상보다 높았던 이 금액은 대부분 차입에 의존했다.
하지만 해당 쌀 수매 정책은 국가에 재정적 손실을 입혔다. 태국 정부는 사들인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쌀을 팔지 못했고, 결국 엄청난 양의 쌀 재고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그러던 지난달, 품탐 웨차야차이 태국 상업부 장관은 해당 쌀을 판매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V8 인터트레이딩’이라는 태국 기업이 2억8600만바트(약 108억원)에 입찰 받았다.
그렇다면 10년 묵은 쌀의 품질은 어떻고, 결국 어디에 쓰이게 될까.
쌀 수매 정책 이후 상황은?
태국 재무부에 따르면 태국은 세계 최대 쌀 수출국 중 하나임에도 태국 정부는 당시 매입한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쌀을 팔지 못해 150억달러(약 20조85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잉락 칫나왓 총리의 경우, 지난 2014년 몇 달간 이어진 시위 끝에 군사 쿠데타로 결국 실각했다. 2017년엔 쌀 수매 정책으로 인한 재정적 손실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됐고, 궐석 재판에서 업무 태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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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묵은 쌀을 먹어도 안전할까?
지난달 품탐 장관은 해당 쌀의 안전성과 품질을 증명해 보이고자 언론 앞에서 직접 이 쌀로 지은 밥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품탐 장관은 카메라 앞에서 쌀가마니에 구멍을 내고 품질을 확인해 보라며 “이 쌀알은 여전히 좋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색은 조금 더 노랄 수 있다. 이게 바로 10년 된 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태국 상업부는 공중보건부가 운영하는 실험실에 해당 쌀의 품질 검사를 맡긴 후 그 결과를 대중에 공개하기도 했다.
연구소 측은 검사 결과 아플라톡신, 데옥시니발레놀, 브롬화이온, 산화에틸렌과 같은 독성 화학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쌀과 비교했을 때 그 영양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태국 현지 방송사인 ‘채널 3’에서도 독립적인 실험실을 통해 실험을 진행했는데, 마찬가지로 먹어도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BBC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따로 검증하거나, 독립적인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다.
쌀도 상할 수 있나?
UN의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밀폐된 상태로 건조하고 서늘하게 보관하는 등 특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오랫동안 쌀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 쌀 연맹’은 백미의 경우 제대로 보관만 한다면 “거의 무기한으로” 보관할 수 있다고 말한다.
10년 묵은 쌀의 영양가는 어떨까? 살충제 영향은?
BBC는 FAO에 10년간의 살충제 사용이 위험하진 않을지 문의했으나, FAO 측은 모든 가이드라인을 따랐다면 건강상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10년간의 세월로 인해 영양가가 떨어지진 않을지에 대한 질문엔 비타민과 같은 일부 미량 영양소는 사라질 수 있으나, 처음부터 쌀은 이러한 미량 영양소의 주요 공급원이 아니라는 답을 받았다.
FAO는 “쌀 섭취의 "쌀 섭취의 주요 영양학적 이점 중 하나는 높은 탄수화물 함량이다. 신체는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변환한다”고 설명했다.
“보관 과정에서 탄수화물의 양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여전히 주요 에너지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맛도 달라질까?
FAO는 일반적으로 보관 기간이 길어지면 밥맛이 떨어지긴 하지만, 저장 조건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경매로 붙여진 이 재스민 쌀을 맛본 소라윳 수타사나친다 TV 앵커는 백미에 가까운 맛이라며, 일반적인 재스민 쌀처럼 끈적거리거나 부드럽거나 향이 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태국 선거관리위원회 출신인 솜차이 스리수티야콘 또한 맛봤는데, 냄새가 별로 좋지 않았고, 잘 부서졌으며, 두께감이 부족하다고 평했다.
이 오래된 쌀은 어디로 가게 되나?
‘태국 쌀 수출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태국 쌀의 최대 시장은 인도네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태국에서 대형 정미소를 운영하는 파이롯 왕디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대부분 오래된 쌀을 소비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아공 외에도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태국 쌀을 사들인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에서 태국 쌀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게 품탐 장관의 설명이다.
태국 정부의 경매 발표 이후, 아프리카의 SNS 사용자들은 “언제나 그렇듯 아프리카는 완벽한 쓰레기통”, “아프리카는 전 세계 쓰레기들이 향하는 곳”이라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케냐 정부는 자국 기준을 충족하고 (실험실에서 엄격한 검사를 거친) 쌀의 수입만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낙찰받은 ‘V8 인터트레이딩’사는 30일 이내에 계약을 체결하고 구매를 완료해야 한다.
다만 ‘V8 인터트레이딩’사는 해당 쌀을 어느 국가에 판매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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