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서울대병원이 오늘(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다. 내일은 전국 50곳 이상의 대학 병원이 휴진을 실시한다.
의사들의 집단 행동에 정부는 강경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병원장들에게는 교수들의 집단 휴직으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라고 요청했고, 의협이 3대 대정부 요구안을 수용하면 휴진을 철회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거부하며 휴진 중단을 촉구했다.
대학 병원들의 휴진이 현실화되면서 환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또, 전공의 이탈에 이어 의대 교수들까지 휴진에 들어가면서 병원의 경영난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의정갈등의 불똥은 간호사들에게까지 튀고 있다.
서울대병원 교수 절반 이상 휴진.. 정부 "병원에 구상권 검토 요청"
서울대 의대 산하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서울대병원강남센터 등 4개 병원 교수들은 이날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다.
서울의대 비대위에 따르면 이날부터 22일까지 외래 휴진 또는 축소, 정규 수술·시술·검사 일정 연기에 나선 교수는 전체 967명 중 529명(54.7%)으로 조사됐다. 이중 수술장을 둔 3개 병원의 합계 수술장 예상 가동률도 33.5%로 낮아질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서울의대는 중증·희귀환자 등의 진료를 집단 휴진 기간에도 이어갈 계획이다.
강희경 서울의대 비대위원장은 전날(16일) 서울대병원 교수와 서울대병원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번 전면 휴진은 정책결정자들을 향한 외침이지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목적은 아니다"며 "교수들의 판단에 따라 환자의 진료 일정을 조절한 경우 휴진에 참여한 것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 이어 세브란스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용인세브란스병원 소속 교수들도 오는 27일부터 응급·중증환자 진료를 제외한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삼성서울병원도 무기한 휴진을 논의키로 했다. 삼성서울병원 등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무기한 휴진에 대해 논의한 후 전체 교수(삼성서울병원·강북삼성병원·삼성창원병원)들을 대상으로 무기한 휴진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전체 교수 총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의대 교수들도 추가 휴진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도 18일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총궐기대회를 개최하며 집단휴진에 돌입한다. 이날 집단휴진에는 개원의, 40개 의과대학이 포함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이 참여하며 전국 약 50개 이상의 대학 병원이 문을 닫는다.
정부는 진료 공백 최소화를 위해 이날부터 전국 단위의 중증응급질환별 순환당직제를 실시하는 한편, 대학병원장들에게 교수 집단 휴직으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라고 요청했다.
의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전날 회의 후 "골든타임(최적기) 내 치료해야 하는 환자 진료를 위해 17일부터 '중증 응급질환별 전국 단위 순환 당직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급성대동맥증후군과 소아 급성복부질환, 산과 응급질환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수도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 등 4개 광역별로 매일 최소 1개 이상의 당직 기관을 편성하고, 야간과 휴일 응급상황에 24시간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으로) 피해를 본 환자는 '(국번 없이) 129'에 피해사례를 신고할 수 있고, 신고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긴밀히 협력해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각 병원장에게 일부 교수들의 집단 진료 거부에 대한 불허를 요청했고, 진료 거부 장기화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도록 했다"며 "병원에서 집단 진료거부 상황을 방치하면 건강보험 선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강조했다.
의협 "3대 대정부 요구안 수용 시 18일 휴진 보류" 정부 "조건없이 중단하라" 거절
의협은 지난 16일 ▲ 의대 증원 재논의 ▲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 ▲ 전공의·의대생 관련 모든 행정명령 처분 취소 및 사법처리 위협 중단 등 3가지 대정부 요구안을 공개하며,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 집단 휴진 보류 여부를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정부는 세 가지 요구에 대해 16일 23시까지 답해주시기를 요청한다"며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18일 전면 휴진 보류 여부를 17일 전 회원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18일 전국적으로 집단 휴진을 진행하고 이후 무기한 휴진을 포함한 전면 투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거절하며 조건 없는 휴진 중단을 요구했다.
보건복지부는 16일 오후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의협이 불법적인 전면 휴진을 전제로 정부에게 정책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의대 정원과 전공의 처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미 여러차례 설명했고,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의협이 18일 집단휴진을 조건 없이 중단하고, 의료계가 정부와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현안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며 "정부는 의료제도의 발전에 대해 의료계와 논의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오전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복귀하는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지만, 헌법과 법률에 따른 조치를 아예 없던 일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의료계가 무리한 요구를 거두고 의료개혁에 동참하여 의료개혁의 주체이자 브레인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의협 측은 "정부는 스스로 일으킨 의료사태에 대한 해결 의지가 전혀 없음을 다시 확인했다"며 "계획대로 휴진과 궐기대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환자단체 "환자 불안을 정부 압박 도구로 써".. 언론들도 일제히 비판
의대 교수들의 휴진이 현실화 되면서 환자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는 서울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 돌입과 관련해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고 규탄하며 철회를 촉구했다.
환단연은 17일 입장문을 내고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 비대위)가 목적 달성을 위해 무기한 전체 휴진이라는 선택을 꼭 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가 환자의 불안과 피해라면 그 어떤 이유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공의 9천여명이 4개월 이상 의료현장을 이탈한 상황에서 의대 교수마저 무기한 전체 휴진에 돌입하면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 불안과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며 환자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들도 의사 단체의 집단행동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16일 사설에서 의사 단체를 향해 "사실상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정부와 사태 해결을 위한 충분한 대화 노력도 없이 극단적 수단부터 꺼내 드니 여론이 싸늘한 것"이라며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한 의료계의 우려와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힘 있는 전문가 집단의 의사 표시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중증·희소 질환자와 응급 환자들 진료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중증 환자들에게도 진료를 연기한다는 안내 문자가 발송됐다고 한다. 무기한 휴진이 시작되면 수술실 가동률이 34%로 떨어져 제때 수술받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의 이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병원의 경영난이 가중돼 간호사와 병원 노동자들이 임금체불과 구조조정의 위기에 놓여 있다"며 "의사들이 설사 요구사항을 관철시킨들 환자와 동료 직원들의 신뢰를 잃고 무엇을 할 수 있겠나"라고 질타했다.
중앙일보도 15일 사설을 통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한 정부도 잘못이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환자를 외면한 채 거리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의사들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환자의 건강을 볼모로 한 의사들의 극한투쟁은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실리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의료계가 주장하는 대로 정부의 정책 추진이 일방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그게 의사들이 환자의 곁을 떠나는 이유가 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며 "설령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의사들이 환자들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할 권리는 없다"고 덧붙였다.
의정갈등으로 병원 경영난 가중.. 간호사 채용도 올스톱
의정갈등이 장기화 되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까지 휴진에 들어갈 경우 이들 병원의 경영난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선 사태가 길어질 경우 망하는 병원이 나올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최근 경북대학교병원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양동헌 경북대병원장은 지난달 27일 내부 전산망을 통해 임직원들에 "경북대병원은 지역 필수의료 제공을 제외한 병원의 모든 활동을 재검토하고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긴축재정 등 비상경영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꼭 필요하지 않은 사업은 예산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필수 신규 투자라도 집행 시기를 조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예산을 통제해 병원의 필수 기능 유지를 위해 자원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충남대학교병원도 적자 누적으로 지난달 21일 비상진료 1단계를 2단계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무급휴가 권장 사항을 '권고'로 변경하고 추가적인 비용은 절감·축소하기로 했다. 충남대병원의 경우 매월 100억~150억원의 손해가 발생하고 있고 세종충남대병원 개원으로 4224억원 상당의 차입금이 있는 상황이다. 조강희 충남대병원장은 공지를 통해 현재 마이너스 통장에 400억원이 남아있고 현 상황이 계속될 경우 2개월 이내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의 주요 대형병원인 '빅5'는 하루 10억~30억원가량의 적자로 이미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한 지 오래다.
서울대병원은 500억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1000억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길게 버텨도 8월 이후에는 직원들의 월급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도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가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정부는 오는 7월까지 경영난을 겪는 병원에 건강보험 급여를 미리 지급하기로 했으나 휴진이 장기화 될 경우 실제로 문을 닫는 병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영난으로 직원들을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신규 간호사 채용도 올스톱됐다. 대학병원 중 올해 상반기 간호사를 채용하는 곳은 중앙대병원 1곳뿐이다. 하반기에도 원광대병원만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의 사정은 더 암담하다.
이들 병원은 거의 매년 세자릿수 규모의 신규 간호사 채용을 해왔지만, 올해 안에 내년도 신입 간호사 채용 공고를 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빅5 병원 중 한 곳의 관계자는 "2025년도 신규 간호사 채용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며 "정부는 7월과 10월 동시 채용하겠다고 했지만,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건 아니지 않나. 병원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언제 채용 공고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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