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부담 주기 싫다. 어디 좀 알아보거라." 맞벌이 600만 가구 시대가 도래했다. 부모를 끝까지 모셔야 한다는 건 옛말이 됐다. '요양시설 보내는 건 고려장'이라는 말도 지금 시대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이왕 보내드리는 것 편하고 좋은 곳이 낫지 않나. 요양원이 뭔지 요양병원은 또 뭐가 다른지. 실버타운은 대체 무엇이 다르길래 이렇게 '핫'한지 여성경제신문이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했다. 요양시설 돋보기 '줌(zoom) 요양시설' 지금 시작한다. -편집자 주- |
요양원에 입소하거나 집에서 요양급여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아야 한다. 등급은 1~5등급과 인지지원등급이 있다. 심사결과 점수가 높을수록 1등급, 낮을수록 5등급 혹은 인지지원등급을 받게 된다. 보호자들은 어떻게든 어르신들에게 1점이라도 더 받게 해서 등급을 높이고 싶어한다.
이러한 보호자의 바램과는 달리 장기요양등급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치매인 어머니가 갑자기 멀쩡해지면서 답변을 너무 잘해 보호자가 곤혹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반대로 등급을 잘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어머니, 심사원들이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계속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세요” 등으로 멀쩡한 부모님을 교육시키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더해 심사원들이 치매 초기인 어르신들에게 등급을 주지 않기 위해 마치 형사가 범죄자에게 자백받듯이 유도질문을 하여 떨어트렸다는 하소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등급을 받는 것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심사원들의 유도심문 운운은 확인되지 않은 괴담일 뿐이다.
요양등급은 어르신 거동이 불편하여 어느정도의 요양혜택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척도를 수치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에 요양등급심사신청을 하면 간호원이나 사회복지사 출신으로 전문성을 갖춘 심사원들이 어르신이 계신 곳을 방문해 요양인정심사를 하게 된다. 심사는 단순히 어르신 거동이 많이 불편하다든지, 보호자가 어르신의 일상생활 어려움을 말로 호소해서 그 이야기를 주관적으로 듣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어르신을 돌보아 드리는 사람의 유무나 어르신의 경제적 어려움 등도 고려되지 않는다.
심사원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 별지 제5호 서식의 장기요양인정조사표에 따라 심사하게 된다. 장기요양인정조사표를 보면 모두 5개 영역에 52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5개 영역은 ①신체기능, ②인지기능, ③행동변화, ④간호처치, ⑤재활이며 각 영역별로 세부항목인 일종의 질문지가 있다.
치매에 관련된 인지기능 영역에 포함된 항목은 7개로 ①단기기억장애, ②날짜불일치, ③장소불일치, ④나이·생년월일불일치, ⑤지시불일치, ⑥상황판단력감퇴, ⑦의사소통·전달장애가 있다. 치매 어르신이 오늘이 며칠이고,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갑자기 바른 정신이 돌아와서 똑똑하게 맞는 답을 한다고 해도 다른 영역에서 점수가 높으면 전체적인 등급판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한 심사원들도 오랜 경험을 통해 치매 어르신임에도 불구하고 심사 중 갑자기 똑똑해 지셨거나, 인지장애가 없는데 치매인 척하는 어르신이 계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노련한 심사원들이 가지고 있는 심사의 공정성과 날카로운 매의 눈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여기에 더해 최종 등급은 심사평가 결과와 병원의 진단서 및 의사소견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정하며, 심사평가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50% 정도 된다.
나는 현재 만 90세인 어머니를 5년 전부터 모시고 살고 있다. 초창기 모시고 살 때에는 어머니가 육체적, 인지적으로 건강하고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후 몇 년이 지나면서 어머니가 건망증도 좀 심해지고 반복적인 질문이 많아져 혹시나 해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초기 인지장애였다. 그러나 생활하는데 별반 큰 불편이 없어 그럭저럭 지내다가 작년에 장기요양인정등급 심사를 신청하였다.
심사받는 날 어머니는 조금 긴장하셨다. 누군가 낯선 사람이 어머니를 심사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하니 스스로 세수도 말끔히 하시고 잘 하지 않던 머리도 감으셨다. 그리고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 앞에 마주앉은 학생처럼 매 질문마다 눈을 초롱거리며 최선을 다해 답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얼마나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으셨으면, 곱게 단장하고 저렇게 최선을 다해 답을 하는 것일까?” 아무리 치매가 있는 분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바보’처럼 보이기 싫은 것이다. 이때 나는 치매 어르신도 우리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더 강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사원의 질문 중에 “어머니, 100에서 7을 빼면 93이라고 답을 잘 하셨어요. 그러면 93에서 7을 한번 빼고 또 한번 다시 빼면 얼마예요?” 아니,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하다니. 나도 속으로 얼마지? 하면서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고 있는데 ’칠십 구” 어머니의 자신감 있는 큰 목소리에 모두 놀랐다. 심사원은 맑게 웃으며 “아유, 어머니 너무 잘하셨어요. 어쩜 그렇게 똑똑하세요” 심사원의 칭찬에 어머니도 따라서 해맑게 웃었다. 그리곤 어머니는 5등급 치매등급을 받으셨다.
장기요양인정심사를 받을 때에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다. 어차피 등급이 나올 정도의 상황이면 특별한 예외 상황이 아닌 한 대부분 그대로 나오는 것 같다. 그보다도 충분히 요양등급이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찮거나 의구심으로 심사를 미루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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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 이한세 박사
스파이어 리서치 대표
숙명여대 특수대학원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초고령미래연구원 경제‧일자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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