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에서 지배구조는 늘 중요하다. 신흥국 증시의 성과가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도 지배구조에 있는 경우가 많다. 경제와 기업이익의 성장 속도는 신흥국이 선진국에 비해 빠른 경우가 많지만 신흥국 증시의 성과가 부진한 이유는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이 주주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구조가 왜곡되는 데서 기인한다.
기업이 아무리 많은 이익을 벌어들이더라도 그 돈이 주주들을 위해 쓰이지 않으면 주가가 오르지 못한다. 기업이 사업에 자원배분을 하고, 영업활동을 하고, 벌어들인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배구조다.
'오너'로 불리는 명확한 소유주의 존재는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가 갖는 독특한 특성이다. 오너가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는 오너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지배주주가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미국의 경우 전문 경영인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ETF(상장지수펀드)로 대표되는 패시브 투자가 활성화된 후에는 더 그렇다. 기업은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장이 아니라 1주 1표의 논리가 작동하는 장이다. 주식 수에 비례해 발언권의 크기가 결정된다.
미국 주요 기업들의 최대 주주를 검색해보면 ETF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제일 큰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최대 주주가 뱅가드(Vanguard)로 지분율이 8.9%다. 2대 주주와 3대 주주는 블랙록(Black Rock)과 스테이트 스트릿(State Street)으로 지분율이 각각 7.3%, 4%다. 애플의 경우도 1대 주주가 뱅가드, 2대 주주가 블랙록, 3대 주주가 워런 버핏이 경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 4대 주주가 스테이트 스트릿이다.
뱅가드와 블랙록, 스테이트 스트릿은 모두 ETF 회사다. ETF는 특정 종목을 콕 집어 매수하기보다 종목군을 꾸러미로 만들어 한꺼번에 매수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미국 주식을 추종하는 S&P500지수를 추종하는 ETF에서 매수하거나 미국의 기술주들로 이뤄진 미국 기술주 ETF에서 매수하는 경우가 많다. ETF는 특정 종목 선택이 아닌 공통점을 가진 종목들을 한꺼번에 사고팔기 때문에 개별 종목에 대한 관심은 약하다.
미국은 지배권 행사에 관심 없는 ETF들이 주요 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전문 경영인들의 파워가 막강하다. 이들은 대주주들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권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 권력화된 전문 경영인들의 전횡이 자주 나타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영진이 스스로 급여를 크게 올리거나 당기순이익보다 더 큰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현금배당이 이뤄지기도 한다. 기업의 주인이 없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의 의사결정보다는 단기적 이해에 치중한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지배구조 이슈는 경영진과 다수 소액주주들의 대립구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역시 오너의 존재감이 약하다. 특히 대기업들이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일본도 재벌로 불린 대기업 집단이 존재했고 오너의 존재도 명확했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 재벌은 미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해체됐다. 미국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부의 물적 토대로 재벌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이후 일본에서는 특정인이 다수 지분을 보유해 대주주가 되기보다 기업들이 상대방의 지분을 상호 보유하는 형태의 독특한 지배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들 기업집단을 '계열'이라고 부르는데, 계열의 오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최대 주주는 도요타자동직기, 도요타고세이, 도요타방직, 다이하쓰모터 등의 도요타 계열사들인데, 이들의 지분율을 모두 합산하면 24.8%에 달한다.
한국은 기업의 오너십이 미국과 일본보다 명확한 편이다.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는 대주주들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오너 경영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쁘다는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미국에 비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기업의 여러 의사결정이 지배주주 편향적으로 이뤄진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자산인 자사주를 활용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기업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한 사례나 알짜 사업부를 물적 분할하면서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전력이 매우 많다.
한국 증시의 밸류업을 위해서는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기업에 대해 직접적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제시하는 것보다 상법 개정이나 집중투표제 확대 등 제도 개선으로 주주권이 잘 행사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과도한 단기주의 등 주주권 과잉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주주자본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 증시에서 주주권 과잉을 미리 걱정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