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잼 (글스압)미국 대학원생이 본 학벌과 스펙.txt
세줄요약 바닥에 있음. 늘 그렇듯이 두서없는 의식의 흐름 장문
일단 이리 말하는 본인이 인문학 대학원에서 노예질하는 학력’만’ 높은 룸펜 + 근 몇십년간 쌓인 사회적 모순이 코로나랑 한꺼번에 폭발중인 미국에서 장기거주하며 말세적, 염세주의적 사상이 강해져서 하는 말일수도 있는데, 나이도 삼십대에 드가고, 사회생활도 거진 십년 가깝게 해보니깐 참 갈수록 인간의 행복에 현대 사회에서 얘기하는 스펙, 학벌 같은건 전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뭐 굳이 좌파적, 체제비판적 관점 이런 영역까지 드갈 필요도 없이 그냥 그보다 더 단순한 인간적인 차원에서 너무도 허망할뿐만 아니라, 애초에 스펙 자체가 일종의 다단계 사기라는걸 알아가고있다.
특히 한창 저 스펙, 학력쌓기 경쟁 와중에 있는 청년층 시점에선 이게 보고 인식하기 힘든 모양인데, 사회윤리적으로 문제 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걍 틀린 사실인 특정 스펙, 학력에 도달하면 마치 그 스펙 자체가 앞으로 번영과 행복,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는 양 생각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있는거 같아. 특히 한국 교육 문화 상으론 이게 뭐 어디 애새끼 시험 몇점 받으면 엄마가 건프라 새거 사줄게 하는 마인드가 사회 전역으로 넘쳐 어린애 시절부터 학벌=업적=계급으로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어디 서울대 드가면 바로 인생 고생 끝 행복 시작인양 기대하는 정서가 너무도 팽배해있음.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사회 모든면이 계층, 분업화 되어 있어서 특정 스펙, 학력은 특정한 리그에 입성하기 위한 최소 자격일 뿐이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함.
그러니 무슨 하버드 경영대 나온 애들이 우리 지잡주립대 경영대 나온 애들보다 객관적으로 노동만족도, 워라밸, 자아실현감 같은 점에서 나을게 하나라도 더 있냐?
소득 자체야 더 높겠지. 근데 적어도 내가 사회생활해본 경험에 따르면 이 돈이란것도 오묘해요. 낭만적 감성 싹 다 치우고 그 자체로만 보면, 돈이 아예 없는 주제에 사람이 행복하다는건 일반적인 경우에선 불가능한 헛소리 맞음. 이건 맞는데…. 이놈의 조물주란 새끼가 아주 베베꼬여서 또 반대 방향으로 돈이 생겨도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렇다고 해서 어디 돈이 없는 행복을 만들어주거나, 심지어 있는 불행을 사라지게 해줄수도 없음.
예를 함 들어보자. 여기 둘다 똑같은 강도로 똑같은 시간 일하는 대기업 임원이랑 노가다판 육체노동자가 있고, 둘 사이 연봉이 한 200배 차이가 난다 치자. 그럼 이 대기업 임원이 그 돈으로 노가판 육체노동자보다 밥을 두, 세배로 더 많이, 두, 세배 더 비싸고 좋은거 두, 세배로 더 자주 먹고 다닐수 있다. 그런데 200배 더 많이 먹고 더 소비하고 이건 걍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지?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개인마다 자신이 ‘편하다’고 느낄만한 최소한 물질적 조건 확보 + 만족감을 주는 소비 생활의 재화로서인데, 저 ‘물질적 최소’와 개인적 소비는 아무리 차이가 커도 고만고만할수 밖에 없다. 그럼 뭐 븅-신같은 돈지랄 취미라도 개발하면서 실제로 소비도 200배 차이나게 만들면 되겠네 이런거 안통한다. 왜냐하면 그만한 재력을 아예 불로소득으로 다 끌어댕기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도 걍 극소수 연예인 가십에서나 나오는 경우를 빼면, 그 200배 이상의 소득차이가 나오게 만드는 추가 노동을 하면 저렇게 추가 소득 자체를 더 소비할 시간, 에너지는 그만큼 사라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버는 만큼 더 바빠지는데 더 생긴 소득을 쓸 시간과 여유가 어딨냔 말이지.
결국 그래서 남는 잉여자본은 저축을 하던지, 갈수록 빈번해지듯이 돈 좀 더 벌겠다고 주식같은 도박판에 꼴아박았다 한방에 다 날려 먹던지, 아니면 그냥 소비랑 무관하게 돈이 쌓이는거 자체를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스탯 올라가는것 처럼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성취감의 대상으로 삼을수 밖에 없다. 주관적인 경험상으론 실제로 대부분 진짜 본인들이 평생 물쓰듯이 써도 다 못쓸만큼 돈이 이미 많은게 계속 일벌래처럼 쉴줄 모르는 현실 부자들 마인드가 대충 이런거 같더라. 어쨋든 요점은 소비 자체를 추가 자본만큼 늘려서 이걸로 더 큰 본인 행복감을 얻는다, 이건 불가능하다는거임.
그나마 이것도 전부다 내가 위에 언급한 예제로 돌아가자면, 이건 저 하버드 경영대 출신이랑 우리 지잡주립대 경영대 출신이 나와서 취직하는 자리가 다른 조건은 전부 똑같으면서 소득만 하버드쪽이 실제로 하버드 학위갚이 우리 지잡주립대 학위갚보다 비싼만큼을 더 번다는, 실제 사회 나와선 말도 안되게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정한 예시이다.
현실 사회는 절대 이렇게 수리상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99% 대부분의 경우 저 하버드 졸업장은 우리 지잡주립대 졸업장의 세배쯤 가치가 더 있는데, 저 하버드 경영대 출신 친구가 버는 돈은 우리 지잡주립대 출신보다 1.5-2배 밖에 더 못 벌고, 반대로 노동 강도는 그만큼 엘리트라 꺼덕대는 인간들이 더 집중되어 있으니 5-8배 더 강한 경우가 태반이다.
스펙, 학력질 자체가 결국 특히 호기심은 왕성하면서도 자아 형성은 아직 덜 끝나서 불안해하는 젊은 애들한테 마치 그 자체로서 뭔가 ‘업적’인양 너를 기분 좋게 만들어줄거라 사기쳐놓고, 막상 그 스펙이 요구하는 직업군에 들어가면 성취감이니 뭐니 그딴거 아무런 의미도 없어질만큼 사람 쥐어짠 이후 난 왜이리 열심히 했는데도 불행하냐, 비참하냐 반문하면 그보다 더 말도안되게 비현실적으로 높은 스펙, 학력을 들이밀여 사실 진짜 행복의 기준점은 죠~~오기였네용! 거기까지 못갔으니 넌 행복해질수 없음! 이 지랄하고 치우는 다단계사기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지만, 이 모든게 사회적으론 성공했어도 마누라/남편놈이라고 결혼한 여편내/남정내가 알고보니 글러먹은 인성파탄자였니, 밖에선 어이쿠 회장님 소리 들어도 퇴근하면 집에선 애들이 다녀오셨어요 인사도 안하니, 가난한데 결혼한 배우자랑 속궁합이 아주 지려서 뭐 허름한 모텔 미지근한 물이라도 매일이 끼릭끼릭 들썩들썩 덜컹덜컹 즐겁다니, 이런 경제적 요소하곤 무관한 다른 인간의 행복의 조건과는 완전 별개의 소리다.
진부한 말이지만, 이런 비물질적 행복의 요소들은 너무나도 예측불능하게 다양하여 어설프게나마 논증 가능한 조건 자체도 제시할수 없으니 우리가 그에 관해 말을 자주 안해서 그렇지,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뭐 지가 평생 쓸수도 없는 돈 쌓이는거 자체가 즐거운 일론 머스크, 제프 비조스 같은 변태 또라이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인간에게 있어서 물질은 행복을 향한 조건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낭만적이거나 감성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비물질적인 면이 인간의 행복에 있어 중요하고 더 크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란 대체적으로 불행하고 서글프다. 사실 남녀노소 빈부승패 여부와 상관 없이 한낮 죄인 인간인 우리는 대체로 불행하다.
대학교 경제학 전공한다고 부자되는건 아니지만, 그나마 이렇게 스펙을 수단으로 하는 돈은 어느정도나마 사회적으로 이리이리하면 모을수 있다, 최소한 잃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축적된 가이드라인이나마 있는 반면에 그 돈을 수단으로 하는 궁극의 목적인 행복을 구성하는데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사랑, 타인과 관계, 자아성취감, 정서적 안정, 문화적 풍요 기타등등은 이렇게 최소한의 결과나마 어느정도 보장하는 메뉴얼도 없다.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개인적으로 불행하여 여전히 스스로 비참하다 느끼는 사람들은 많은 반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행한데 다른 개인적인 면으로 인해 행복한 사람들은 훨씬 더 적다. 신은 개새끼고, 이래서 인간의 삶은 사실 물질 그 자체에 환장한 냉소주의자들이 생각하는것 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이런 면을 고려하면 당장 스펙의 목적인 돈 그 자체도 그 돈의 목적인 행복을 성취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냐, 회의감을 품을법도 한대 당장 그 돈을 벌어준다는 최소한의 약속도 가면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로 인해 가면 갈수록 거짓말이 되어가는 스펙을 중요시한다는건 냉정하게 봐서 바보 미친짓이다.
상술했듯이 필자는 인문학 대학원 박사학과정 재학중이고, 이력서만 보면 상류층 사립고등학교, 아이비리그 학부, 유럽 유수대학 석사, 아이비리그 박사, 20대 중반에 이미 책 한권 출판하는, 이런 으리으리한 엘리트들 하루가 멀다고 학회에서 만나 악수하고 똥꼬 빨아주는게 본업이다. 따라서 내 직업에서만 특히 자주 보이는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스펙, 학력은 휘황찬란하면서 막상 본인들 정신건강, 행복감은 만날때마다 다음번까지 자살 안하고 살아 있을까 걱정들게 만드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봤고, 실제로 그러다 자살한 사람들도 알고있다.
학계 특유의 성취감? ‘니 연구를 할수 있다, 니 열정을 살릴수 있다’, 이런거 쌩구라고, 인문학계도 전반적으로 철저히 ‘시장’ 요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신자유주의적 산업화된지 오래다. 대부분 대학원생, 신입 강사, 짬찌 교수들을 괴롭히는 극한의 업무량과 스트레스는 무슨 다른 업종 사람들이 우리 보면서 품는 환상 처럼 내 연구하면서 생기는 예술가적 창작의 고통 나바리 이딴 낭만적인거 아니다.
내 연구 못하고 학부생 기저귀나 딲아주고, 선임 교수 노인용 귀저기도 딲아주고, 난 사실 별 관심도 없는데 프로젝트 건수 잡으려고 억지로 관심있는 척해야 하는 주제나 연구하고, 다른 업종에서도 지극히 흔하게 볼수 있는 전형적인 노동 과정에서 자아 실현 욕구가 유리되면서 생겨나는 마르크스적 소외 현상이다.
그리고 업계 현역으로 자신있게 말하자면, 우리 인문학계에서 특히 이런 비공식적 권위주의적 부조리, 삭막한 직장 문화는 최상위 아이비로 가면 갈수록 더 심하다. 기본적으로 사립학교들이 주립대학들보다 훨씬 더 대학원생, 비정규 강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노동권 보장이 훨씬 더 취약하고, 책임 지는 범위도 좁으며, 내부적 엘리트 의식도 강하다. 따라서 그보다 급이 좀 더 떨어지는 곳에선 생길 일도 없는 줄긋기 문화, 권력형 수탈 같은게 생기기 더 쉽다.
단적으로 필자같은 좆지잡주립대가 아니라, 최상위 아이비 재학중이면서 학회나 교환 프로그램중 종종 만나고 친구먹는 동업자들이 술자리에서 종종 호소하는 소리가 “우리 학교에서도 니들처럼 옆자리 동료를 ‘경쟁자’가 아니라 ‘친구’로 볼수 있는 분위기였음 좋겠다” 이것이다. 전국단위 메이저 컨퍼런스 등에서 유심히 보면 필자 같은 주립대 대학원생들은 교통이나 숙식의 편의를 위해 보통 같이 다니는 반면, 상위 아이비 학생들은 오히려 본교에서 같이 온 동료들을 설설 피하는게 결코 낮선 모습이 아니다.
애초에 파이 자체가 좁아서 서로 인간이 아니라 짐승새끼처럼 굴군다고 딱히 떡고물이 더 커지는게 아니라는걸 아는 우리 좆지잡주립대 풀과 달리, 저 천상계 티어는 그만큼 걸린게 많은지는 모르겠는데 (위에서 예시로 든 상경대 같이 진짜 돈을 다루는 분야라면 몰라, 인문학계로 한정해서 보면 딱히 그리 많은거 같지도 않다) 하여튼 저렇게 20대 청년들 모아서 서로 같이 고생하는 주제에 의심하고 견제부터 하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가르친다.
필자 자신의 일터 푸념이 아니라 이걸 다시 사회 전반적으로 해석하면 무슨 소리일까? 즉, 현실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 무한경쟁 체제 아래선 고위 스펙, 학벌을 쌓으면 쌓을수록 그에 수반하는 일상적인 스트레스와 정신노동도 훨씬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익히 잘 아는 경쟁 그 자체가 목적이 되버리고,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내 위에 누군가는 항상 존재하는 고도 현대 자본주의일수록, 특히 스펙이 가장 중요한 화이트칼러 전문직일수록 특정 커트라인만 넘으면 높은 스펙이 가져다 주는 추가 소득, 보상보다 그에 수반한 스트레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더 커지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발생한다.
이러니깐 무슨 사회적 효과가 어떻고 인생의 본연의 목적이고 나발이고 이런 차원의 소리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인 성공지향적인 관점에서도 전통적인 산업화시대의 승강제 자본주의 시절 통했던 마냥 스펙 자체를 무슨 뭔가를 향한 보증수표로 보고 그 자체에 환장하는건 자살적으로 미친짓이다. 현대 자본주의 자체의 흐름 때문에 갈수록 하버드 법대를 나온 판사라 해도 그 위치에서 나오는 보상이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수반했던 스트레스와 고통을 매꿔주지 못하고, 결국 총체적인 행복도는 대충 고등학교 나오자마자 카센터 차정비 배워서 바로 취직한 동네 정비공과 비슷하거나 그보다도 더 낮은 경우가 일반적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상술한 경제적 여건을 넘어선 신이 만든 인생 불행량의 보존 법칙에 따라, 저렇게 총 행복량은 이미 대충 놀면서 살았던 비엘리트보다도 못한데, 엘리트 자리를 얻으려고 용쓰는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 정신적 상처로 인해 저 판사의 예를 들자면 어디 뭐 좀 안좋은 자리에서 사회적으로 문제될 발언 좀 했다니, 쌓이고 쌓인게 갑자기 회까닥 돌아서 부하나 다른 사람을 욱하고 싸다구 함 때렸다니, 평소엔 본인도 인지 못하는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쌓인 인격적 결함, 정서적 불안 때문에 진짜 한순간에 사람 인생 한방에 조지는 사고를 칠 확률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능한 범위에서 인생 자체를 통계적으로 보자면 엘리트 되겠다고 스펙 쌓는거에 환장하면서 자신에게 초래하는 데미지가 그 엘리트가 실제로 될 가능성, 설령 됬다 해도 이걸 안정적으로 유지할 가능성보다 훨씬 높을 확률이 크다 이기야.
이러니 뭐 두서없이 하루 오후 망상으로 시작한 글을 정리하기 위해, 타인에게 하는 조언의 형태로 마무리하자면 이리 말하고 싶다. 스펙, 학벌이 진짜로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는거 맞다. 이게 전혀 긍정적인게 아니라, 스펙과 학벌 마저도 현대 자본주의란 예측불가 광란 걸린 히드라 괴물의 포효 앞에선 사람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상이 이미 되었다는 소리다.
여기서 우리 삶에서 적용할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자면 물론 스펙 학벌 중요하지 않으니 대충 살아도 된다는 이런 말은 아니다. 아니, 사실 한국인들의 평소 노동강도, 스트레스 정도를 생각해보면 좀 더 대충 놀면서 살아도 되긴 되는데… 그것 말고도, 주관적인 성찰과 비판적 현실 분석을 통해 스스로 뭐 어떤 분야가 세상이 아무리 급박하게 변해도 항상 수요가 있겠다, 관련 기술자나 업계 사람이 필요하겠다 생각하면서 여기에 노력을 해야지, 전반적으로 사회가 대충 군중심리 따라서 이게 좋다 저게 좋다하는 스펙 따라가다간 2008년의 대침체, 작금의 코로나 사태, 이런저런 자연재해, 세계적 정세 급변화 같은 시스템 자체가 예측 못한, 일상화된 ‘돌발’ 사태에 의해 노력은 더럽게 했는데 한방에 훅가기 딱 좋다, 이 말이다.
그리고 갤럼들은 이렇게 고생은 더럽게 시키는데 보상은 쥐좆도 안주고, 여기서 나온 스트레스를 수평폭력과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에 대한 멸시로 풀라고 종용하는 현대 자본주의 광란이 정치사회적으론 어떤 끔찍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너무도 잘 알수 있을 것이다.
3줄요약
1. 원래 스펙은 특정 엘리트군에 편입되서 세상 편지풍파에서 보호받기 위해 쌓는건데, 그 편지풍파의 정도가 엘리트들이 친 방벽보다 훨씬 강해졌다.
2.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경우엔 스펙 쌓으면서 생기는 데미지가 그 스펙이 수반하는 보상보다 큰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3. 한국인들은 그래서 스펙 때려 치우고 좀 더 놀아야 한다. 놀기 싫은 사람들은 스펙이 아니라 기술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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