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일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개인 휴대전화로 3차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날은 해병대 수사단의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보고서가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됐다가 국방부로 회수된 날이다. 또, 수사단을 이끌던 박정훈 대령은 보직 해임 통보를 받았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에도 대통령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약 3분간 통화했고, 통화 직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해 사건 이첩 보류 및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 발표 취소를 지시했다.
이처럼 이른바 '윗선 개입' 정황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향후 공수처의 수사가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전날 국회에서 채상병특검법이 부결된 만큼 현재로서는 공수처가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열심히 수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VIP 격노설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밝혀 윗선에 대한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尹-이종섭 개인 휴대전화로 3번 통화.. 이후 박 대령 보직해임·이첩 보고서 회수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작성한 보고서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된 것을 알게 된 윤석열 대통령이 문제를 삼았다는 이른바 'VIP 격노'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 보고서를 경찰에 이첩한 직후 국방부가 이를 즉각 회수하는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이다.
이런 가운데 'VIP 격노'와 '윗선 개입' 정황을 뒷받침하는 통화 기록이 공개됐다.
먼저,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사망 사건의 초동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한 지난해 8월 2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날 윤 대통령은 낮 12시 7분과 낮 12시 43분, 낮 12시 57분 등 총 세 차례 이 전 장관에게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첫 통화는 4분 5초, 두 번째 통화는 13분 43초, 마지막 세 번째 통화는 52초 동안 이뤄졌다. 당시 이 전 장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었다.
해당 통화 기록은 박 대령의 항명 혐의를 심리하는 군사법원에서 통신사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첫 번째 통화(12시 7분) 후 이 전 장관 참모는 김계환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을 보내 "경찰로 이첩 여부 확인되었는지요?"라고 물었고(12:28) 김 사령관은 "이첩되었음, 장관과 통화할 때 확인되어 보고드렸습니다"(12:31)라고 답했다.
또, 같은 날 12시 45분쯤 김 사령관은 박정훈 대령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지금부터 보직해임이다, 많이 힘들 거다"라고 말했다는 게 박 대령 측 주장이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은 이후 두 차례 더 통화했고, 그날 저녁 7시 20분 국방부 감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이 오전에 경북경찰청으로 넘긴 940여쪽 분량의 조사 기록을 다시 찾아왔다.
이시원 당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통화가 이뤄진 날도 이날이다. 유 법무관은 이 비서관이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했다'고 공수처에 진술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엿새 뒤 8월 8일 오전 7시 55분에도 같은 휴대전화로 이 전 장관과 통화했다. 하루 뒤인 8월 9일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조사본부에 재검토를 맡기는 결정이 이뤄졌고, 국방부는 같은달 24일 대대장 2명의 범죄 혐의만 적시해 경찰에 최종 이첩했다.
'VIP 격노설' 당일, 대통령실-이종섭 168초 통화… 해병대 수사단, 브리핑 취소
대통령실 경호처장 국무조정실장 국무총리 등과도 수차례 통화
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에서도 이 전 장관과 통화한 기록이 공개됐다.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이 예정돼 있던 지난해 7월 31일 이 전 장관은 대통령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아 168초 동안 통화했다.
이 전 장관은 대통령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이후 김계환 사령관에게 '사건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언론 브리핑, 국회 보고를 취소시켰다.
이날은 윤 대통령이 국가안보실 회의를 주재한 날이며, 박 대령은 다음 날인 8월 1일 김 사령관으로부터 'VIP 격노'를 전해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박 대령이 이 전 장관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한 7월 30일부터 군 관계자들과 긴밀히 소통했다.
이 전 장관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박 전 보좌관은 7월 30일 오후 5시경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통화했다. 이후 박 전 보좌관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오늘 보고드린 내용을 안보실에도 보고가 돼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침엔 국방비서관에겐 인지가 돼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7월 31일에도 박 전 보좌관은 임 전 비서관과 4차례 더 통화했다. 박 전 보좌관은 통화 전후 김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이 전 장관이) 우즈벡(우즈베키스탄)에 있다. 빨라야 8월10일 이후 이첩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며 이첩 보류와 혐의자 삭제를 요청했다.
한편, 이 전 장관은 비슷한 시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들과 여러차례 통화한 기록도 확인되고 있다.
29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은 지난해 8월 4~7일 이 전 장관과 7차례 통화와 1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외에 △방문규 당시 대통령실 국무조정실장(지난해 8월 3일 4차례 통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지난해 8월 8일 1차례 통화) △임종득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지난해 8월 4일 1차례 통화) 등과도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8월 2일부터 8월 6일까지 이 전 장관과 3차례 통화했고, 경찰청을 휘하에 두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 전 장관과 지난해 8월 4일부터 8월 7일 사이 5차례 통화와 3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다만, 이 기간 모든 통화가 '채상병 사건'과 관계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비슷한 시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있었던 만큼 관련 논의를 위한 통화일 수도 있다,
공수처 "법과 원칙 따라 수사.. VIP 격노설 규명 위한 수사 아니다"
이처럼 사건의 주요 국면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긴밀히 소통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공수처의 수사가 윗선을 향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28일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열심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오 처장은 이날 취임 인사차 국회를 찾아 김진표 국회의장을 접견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공수처가 수사 중인 '채상병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방향을 정해놓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같이 답했다.
채상병 수사 보고서의 이첩 보류 지시, 자료 회수, 국방부 재검토 과정에서 부당한 직권남용이 있었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이 전 장관과 윤 대통령의 통화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도 규명돼야 한다.
하지만 공수처 관계자는 "VIP 격노설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8일 공수처 관계자는 취재진과 만나 해당 의혹 수사 상황을 두고 "범죄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사실관계를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또한 이종섭 전 장관 등 해당 의혹의 윗선으로 조사를 확대할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박 전 수사단장과 김 사령관에 대한 재소환 조사는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정훈 대령 변호인단 소속의 김규현 변호사는 "이 정도 범죄 의심이라면 대통령에 대한 입건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28일 오후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대통령실 개입 정황만 나왔다면, 이제는 대통령 본인이 직접 개입한 정황까지 나온 상황"이라고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공수처도 이 자료를 진즉에 통신사로부터 확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료를 갖고 있었다면 왜 대통령실이나 이런 데 대한 압수수색을 한 번도 안 한 것일까"라며 "외압에 시달렸을 수 있거나 공수처가 소수인력으로 바쁘게 수사해 여력이 없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특검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민주 "박근혜 태블릿 같은 탄핵 스모킹건…탄핵열차 기적소리"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기록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태블릿 PC와 같은 '탄핵 스모킹건'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탄핵 열차 기적 소리가 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세 차례 통화 기록이 나왔으니 통화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만 밝히면 수사외압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을 피의자로 전환하고 즉각 수사해야 한다"며 "(채 상병 특검법 부결은) 의심 받기 충분한 짓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은 노골적 수사 방해이자 사법농단, 국정농단, 권력사유화임이 분명해지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수사 방해, 사법농단, 국정농단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과거) 이 전 장관에게 윤 대통령과 통화했냐고 물으니 '통화한 적 없다'고 얘기했다"며" 이건 철저한 위증이고 증거인멸"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 전 장관에게 수사 외압 (지시)한 것은 위법이고 불법 아니냐.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시켰으니 직권남용"이라며 "공정하지 못했으니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도 "확실한 수사의 단초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호 의원은 같은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그 이전에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사이 통화가 수시로 있었는지 보면 거의 없었을 것"이라며 "대통령실에는 참모들이 있다. 대통령이 필요한 사항은 각 수석비서관을 통해 부처와 연락을 하지, 대통령이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서 지시하고 의견 교환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왜 이런 사안에 이런 정도로 관여한 의심을 사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통화를 전후해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 해임 통보를 받은 것에 대해선 "일개 사단장 한 사람의 거취에 대해 이런 정도로 관심을 왜 가졌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말 여기에 또 다른 배후가 있는 게 아닌지,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 3의 힘이 있었는지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의심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국힘, 尹-이종섭 통화에 "공수처 사실 규명하고 있단 것"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공수처의 수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장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본청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폐기되긴 했지만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기록이 나온 건 당에 부담'이란 지적에 "그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신속하게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있단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상임위, 여러 국정감사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 대해 공수처가 잘 확인하고 있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면 수사 결과를 지켜볼 것이지, 공수처에 고발하자마자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 대뜸 특검법부터 발의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며 "자꾸 특검을 운운하는 게 아니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이 22대 국회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1호 법안으로 재발의할 것이라 예고했고 국민의힘 당선인 중 일부도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하는 것에 대해 "아직 발의되지도 않았다"며 "변화나 여러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22대 국회 시작도 전에 특검법 발의와 표단속에 대해서 논하는 건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민주당이 22대 국회 시작도 전에 특검법이 부결되자마자 다시 특검법 발의를 운운하고 표 계산하고 이탈표 운운하는 것 자체가 기승전 정쟁용 법안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