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를 재교육하다'…전직 바그너 용병들을 돕는 러시아 여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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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를 재교육하다'…전직 바그너 용병들을 돕는 러시아 여성의 이야기

BBC News 코리아 2024-05-24 11:01: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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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안티피나
BBC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2000마일(약 3200km) 떨어진 크라스노야르스크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베리아 횡단 고속도로에 50대 남성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앞에 흰색 차량 한 대가 멈춰 섰다.

이 남성이 입고 있는 위장복엔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된 패치가 눈에 띄었다.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테러 조직으로 지정된 러시아 민간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의 배지다.

이 남성의 소지품이라고는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그의 앞에 멈춰 선 차량의 운전석엔 올가 안티피나(48)가 앉아 있었다. 시베리아 지역의 작은 마을인 소스노보보르스크에 사는 안티피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에서 돌아온 전직 바그너 용병들이 평화로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자 나섰다.

안티피나도 차에 태우며 발레리 몰로코프(54)를 처음 만났다. 그러나 몰로코프의 과거에 대해선 알고 있다.

몰로코프는 과거 살인죄로 수감 생활을 하다 바그너 그룹과 계약을 맺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용병으로 나가 싸우게 됐다.

이러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안티피나는 몰로코프를 돕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교도소 내 용병 모집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침공 4개월 후부터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용병을 대거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5만 명에 달하는 재소자들이 6개월 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으며, 살아서 돌아올 시 막대한 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믿고 전쟁터로 나갔다.

이 중 수천 명이 사망했지만,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도 많다.

이렇듯 생환한 전직 바그너 용병에 대한 러시아 여론은 엇갈린다. 이들을 여전히 두려워하거나, 전쟁에 나가 싸웠다는 이유로 사면해 주는 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전직 바그너 용병 중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불법 처형을 자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들도 있다.

발레리 몰로코프
BBC

게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 중엔 다시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된 전과자들의 재범과 관련해 법정에서 다루고 있는 소송만 해도 200건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몰로코프는 2022년 7월에 6개월 전 누나를 살해한 혐의로 징역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새해 첫날을 앞두고 술에 취해 있었는데 누나와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몰로코프는 누나의 얼굴을 가격했고, 몇 시간 뒤 다시 머리를 때렸으며, 누나가 바닥에 쓰러진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를 목격한 여동생이 신고하려 했으나, 몰로코프는 같이 보드카나 마시자며 구급차를 부르지 못하게 막았다. 그렇게 결국 몇 시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했다.

누나는 1주일 뒤 두부 외상으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쓰러진 몰로코프의 누나와 여동생을 붙잡는 몰로코프의 모습
BBC

이렇듯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몰로코프는 수감된 지 몇 달 만인 지난 2023년, 바그너 용병으로 모집돼 최전선으로 파견됐다.

그렇게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바흐무트에서 전투를 벌이다 부상을 입고 지난해 8월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당시 몰로코프에겐 지낼 곳도 없었고 재건할 삶도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안티피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유일하게 쓸모 있는 일'

사실 몰로코프는 안티피나가 살면서 만난 최초의 바그너 용병도, 전과자도 아니다.

안티피나의 전 남편도 전과자였다. 아울러 그 또한 바그너와 계약을 맺고 참전했다 사망했다.

안티피나는 그가 교도소에 있을 때 처음 만나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출소 뒤 13년간 함께 지내며 세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안티피나의 남편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을 뿐만 아니라 자주 아내와 아이들을 폭행했다.

그러던 2015년, 불법 약물을 판매하다 붙잡혀 다시 유죄판결을 받고 투옥됐다.

2023년 3월, 남편은 수감 중 바그너 용병이 됐다. 안티피나는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안티피나는 남편의 전사 이후 바그너 그룹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아 그 돈으로 큰아들을 위한 아파트를 마련했다면서, 남편의 죽음이야말로 “남편이 평생 가족을 위해 한 유일하게 쓸모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티피나는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전선에서 돌아온 다른 전직 바그너 용병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올가 안티피나
BBC

안티피나는 몰로코프에게 우선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는 한편, 바그너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조언해 줬다.

안티피나는 BBC 러시아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몰로코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저것도 갖고 싶고, 이것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난 ‘안된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안티피나는 몰로코프에게 “당신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살 곳이다. 그러니 집을 사야 한다. 그리고 차도 필요한가? 좋다, 차도 사자”고 말했다.

안티피나는 자신이 그를 돕는 데는 금전적 이유가 전혀 없으며, 그의 과거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 내 복음주의 종파인 ‘오순절 교회’에 속한 안티피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종말론’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성경에 따르면 마지막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가 형제와 대적할 것이라는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렇습니다.”

이후 몰로코프 또한 매주 일요일마다 오순절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안티피나의 도움에 너무나도 감사한 나머지 청혼하기까지 했다. 안티피나는 그 청혼을 거절했다.

몰로코프는 보안 업체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 1달 넘게 다녔지만, 계속 다닐 순 없었다.

한편 안티피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묻자 몰로코프는 아마도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으리라고 답했다.

몰로코프는 “솔직히 말해서 (전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있는 건 아니”라면서 “그러나 이끌리는 건 사실이다. 거기선 내 적이 누군지 분명했다. 이곳에선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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