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조성일 기자] 지난 5월 19일 저녁 텔레비전 스포츠 뉴스 화면에 재벌 총수의 모습이 연이어 잡혔다.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그 주인공들. 이날 프로야구 경기에서 두산이 롯데를 이겼는데, 뉴스의 방점은 두산 이승엽 감독의 ‘100승’을 기록할 것인지에 찍혔었다. 박 회장은 경기가 끝난 후 그라운드로 내려와 이승엽 감독에게 직접 축하 꽃다발을 건넸다.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을 탐구하겠다며 굳이 이렇게 ‘야구’ 얘기부터 꺼내는 건 박 회장이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광’이기 때문이다. 그의 야구 사랑은 그룹의 경영철학과도 그 맥이 닿아있을 뿐만 아니라 박정원 회장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상수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4세 오너 경영인 시대를 연 박정원 회장, 그는 누구인가.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은 최첨단 산업
오너 경영을 얘기할 때 두산그룹의 ‘형제 경영’ 전통은 나름 신선한 의미가 있었다. 물론 경영권을 둘러싼 크고 작은 다툼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그 전통을 지키면서 기업을 일궈가는 건 ‘두산의 힘’이 아닌가 싶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이런 형제 경영의 전통을 잇는 반석 위에 서 있다. 경영권이 돌고 돌아 박승직 두산 창업주의 장손인 박용곤 회장의 장남이자 두산 일가 4세대 중 맏이인 박정원 회장에게 돌아가자, 호사가들은 ‘형제 경영’은 끝났다고 예단하기도 한다.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박 회장이 3년 임기 사내이사에 재선임됐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2016년 삼촌 박용만 회장에게서 경영권을 넘겨받은 때부터 환산하면 2027년까지 11년간 장기 집권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나온 것도 아니기에 세간의 지나친 관심 정도로 해두고 넘어가자.
다만 박정원 회장에게 힘이 실리는 건 위기의 두산을 구해냈다는 실적 때문이다. 박정원 회장의 두산그룹은 2019년 경영 위기가 닥쳐 채권단 관리체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지만, 3년 만인 2022년에 벗어나는 저력을 발휘했다.
두산의 이 같은 성과에 대해 산업은행은 ‘모범사례’라고까지 극찬했다. 그러면서 산업은행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 종결을 통해 두산이 ‘유동성 위기 극복’과 ‘미래형 사업구조로 새 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박정원 회장의 이 같은 힘은 각별하게 공을 들인 사업다각화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박 회장은 글로벌 발전사업 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몰린 고전적 발전원 대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흐름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태양광이나 풍력, 소형모듈원전(SMR) 등으로 사업을 열었다. 아울러 시스템반도체 테스트 사업, 전기차 배터리 사업, 의약품 보관용기 사업 등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최첨단 산업을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채택했다.
그래서인지 박정원 회장은 KBS 탐사보도팀이 기업 지배구조를 전공한 대학교수 12명,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추천한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20명 등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그룹 후계자들의 경영 능력에 대한 전문가 조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두산을 박정원 표로 거듭나게 하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딴 박정원 회장은 어쩌면 직장생활에 대한 선택권 없이 으레 두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오너 가문 후손의 운명이리라. 하지만 운명은 숙명과 달리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 땅만큼이나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박정원 회장은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 낸 CEO라 할 수 있다.
첫 직장 두산산업을 시작으로 박정원 회장은 오비맥주, 두산상사, 두산건설 등 그룹사를 두루 거치면서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고, 2016년 그룹 회장이 되면서 두산을 ‘박정원 표 두산’으로 거듭나게 했다.
박정원 회장은 결정적 순간에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1999년 그가 두산 부사장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상사BG를 맡자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사업 위주로 과감하게 정리했다. 그 결과 다음 해인 2000년에 매출액이 30%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두 산 지주 부문 회장으로 있을 때 2014년엔 연료전지, 2015년엔 면세점 사업 진출을 결정할 때 핵심 역할을 했다.
이런 그의 승부사 기질은 좋은 성과와 함께 미래 성장동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두산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2022년 신년사에서 한 말이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제 한층 단단해지고 달라진 모습으로 전열을 갖췄다. 더 큰 도약을 향해 자신감을 갖고 새롭게 시작하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하지만 ‘변화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더욱 공격적으로 나가자.”
박정원 회장은 예측이 어려운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앞을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백 수십 년의 두산 역사에서 온갖 변화에 맞서 도전을 반복하며 일군 것이 바로 지금의 글로벌 두산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 같은 강조는 설득력을 얻는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도전과 혁신
박정원 회장은 올해 경영 화두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도전과 혁신’을 꼽았다. 박 회장은 특히 올해의 경영 여건은 △고물가와 고금리 △미국-중국 패권 경쟁 △지정학적 위기 등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는 점에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미래”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투자는 미래를 위한 도전’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해서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또 경쟁사보다 먼저 실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박정원 회장이 최근 체코 원전 사업 수주를 위해 직접 체코로 날아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은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와 기질을 잘 보여준다.
지금 30조 원 규모의 체코 원전 사업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맞대결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수주전에서 이기기 위해 박정원 회장은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두산 파트너십 데이’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얀 피셔 전 체코 총리, 페트르 트레쉬냑 산업부 차관, 토마스 에흘레르 산업부 부실장 등 체코 정부와 기업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박 회장은 “두산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성공적으로 주기기를 공급한 경험을 바탕으로, 15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해외원전 수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에너지 및 기계산업 분야에서 체코와의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 온 만큼, 앞으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강한 수주 의지를 내보였다.
박 회장은 체코 현지의 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해 생산 현장을 점검하기도 했다. 스코다파워는 1869년 설립된,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는 증기터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회사로 2009년 두산 계열사로 편입됐다.
야구 승부 정신을 경영철학으로 승화
이제,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에 대한 탐구를 마치면서 수미쌍괄식으로 마무리하겠다. 앞에서 박 회장이 ‘야구광’이란 얘기를 하면서 그의 경영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했는데, 그 논리를 설명해 보자.
두산 야구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보다 ‘인재 육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량이 좋은 유명 선수를 스카웃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잠재력 있는 신인 선수를 자체적으로 발굴, 육성하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두산이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힘은 바로 이 ‘화수분 야구’라는 게 야구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두산 야구의 이런 시스템은 박정원 회장이 갖고 있는 ‘인재 육성, 인재 중시’ 철학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팀플레이’를 강조한다. 야구 역시 혼자 잘한다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상식이다. 9명의 선수가 똘똘 뭉쳐 조직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결과도 좋다.
박정원 회장은 대학 시절 야구 동아리에서 2루수였다고 한다. 그는 특히 투수의 강속구와 타자의 빠른 타구가 보여주는 스피드를 좋아하는데, 이점이 결국 그를 야구광으로 이끌었다.
기업의 성과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 특정 개인이 아닌 팀플레이에 의한 경우가 많고 이런 팀플레이로 이룬 성과가 훨씬 크고 지속적이라는 게 박 회장의 지론이다.
박 회장은 기업 경영과 야구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가 야구광이 된 것이 CEO가 되기 위한 준비였을까, 아님 야구광이어서 경영 수완이 뛰어난 CEO가 된 걸까.
그는 두산 베어스 구단주로서 선수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걸로 유명하다. 시간이 허락하면 직관한다. 직관은 선수들 사기에 결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해 이길 확률이 높다고 한다. 최근 선수단에게 최고급 태블릿PC를 선물했다.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 시대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선수단의 전력 분석과 데이터 체크의 필요성이 더 커졌기 때문에 지급했다는 후문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이처럼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하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소탈하면서도 과묵한 CEO이지만 실행할 땐 번개처럼 해낸다. 박정원 회장은 이끄는 우리나라 기업 중 그 역사가 가장 긴 그룹 두산을 어떤 모습으로 우뚝 서게 할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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