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 는 삶과 죽음,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섬세하게 설계한 영화 같은 오페라로 1920년에 초연했다. 스릴러의 긴장감을 폼은 스토리를 아름다운 선율로 감싸며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웅장한 연주를 뿜어 내는 3막 오페라이다. 죽음의>
외국인을 포함한 전 출연진들이 공연 5주전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연습이 한창인 국립오페라단에서 주역(마리에타)을 맡은 오미선 씨(소프라노)를 5월 14일 만났다. 점심시간에 약속을 잡은 터라 조심스런 기자에게 그는 배역의 이미지에 맞추려고 다이어트 중이니 신경 쓰지 말라며 소녀처럼 웃었다.
-연습에 체력소모가 많을 텐데 식사조절까지 하시느라 얼굴이 반쪽이 되셨다.
“맡은 배역이 극중 무용수이고 남자를 유혹하는 장면도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더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음색을 표현하는 배역을 공연하셨는데 성악을 한 계기가 무엇이며, 소위 재능파와 노력파 중에 어느 쪽인가?
“예술에는 재능과 노력이 모두 필요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재능보다는 노력 쪽이다. 재능 있는 분들은 중고등학교부터 예술학교에 진학하곤 하는데, 나는 고교 음악선생님이 추천하여 입학한 대학때까지도 성악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않았다. 노래를 곧잘 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피아노 등 연주를 더 많이 했다. 졸업 후 이탈리아 페스카라의 국립음악원에 유학하여 마에스트로(안토니오 갈리에)께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까지, 저음부터 고음까지 길게 연결하여 노래하는 테크닉 등 벨칸토 창법을 제대로 배운 뒤에 인정을 받았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던 중 2003년 국립오페라단 상근단원에 선발되어 귀국한 뒤 많은 오페라 작품의 주연을 맡아 활약했다. 서정미 가득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한편 격정과 기교 넘치는 벨칸토와 콜로라투라 아리아로 이름을 날린 가수다. 2015년에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여자 주역상을 수상했다.
-귀국 후 수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가?
“2007년의
<라 트라비아타>
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정말 유명한 오페라이고 프리마 돈나인 비올레타는 많은 가수가 노래하지만 잘 부르기는 매우 어려운 배역이다. 관객에게 남다른 감동을 주고 싶어 비올레타의 캐릭터를 엄청 연구하고 고민했다. 체중을 조절하느라 고생도 많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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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직전에 꼭 지키거나 행하는 루틴이 있는가?
“루틴을 절대 만들지 않으려 한다. 공연을 앞두고는 최대한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오히려 더 느긋하게 지내려 한다. 음악은 내 삶 속에 있어야 하는데 음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되지 않는가? 공연하는 날은 오히려 배낭 메고 전철 타고 가볍게 간다. 오히려 가족들이 더 눈치를 본다(웃음)”
-평소 오페라에 대한 소신이 있다면?
“오페라는 나를 변화시키는 리트머스 같은 존재이다. 매 작품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다가서지만 치밀하게 연구하고 몰입하면서 점차 나의 캐릭터를 살려가는 전저후고(前低後高)형이다. 학생들에게도 늘 세밀한 것까지 치밀하게 준비하고, 자신감을 갖되 자만을 경계하라고 강조한다.”
-이번에 공연하는
<죽음의 도시>
는 국내 초연인데, 맡은 배역의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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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도 (다소 딱딱한 느낌의) 독일어 작품이지만 벨칸토 창법을 살리며 이태리 오페라처럼 노래하라고 하신다. 음악이 듣기에는 정말 좋은데 박자도 수시로 바뀌어 노래하기에는 힘든 작품이다. 하지만 음악에 빠질수록 이 오페라가 명작임을 느낀다.
원작에서는 파울의 전부인이 병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나는 오페라에서 부인에게 집착한 파울이 그녀를 죽이고 마네킹처럼 박제화했다고 해석한다. 그런 파울의 재산을 탐내고 가난한 유랑극단의 무용수인 마리에타가 그를 유혹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밑바닥에서 지금의 수준까지 오른 그녀는 자아가 대단히 강한 캐릭터다. 음악이 완벽해야 걸맞는 연기가 가능하므로, 그런 캐릭터를 살리려 더욱 음악에 젖는 중이다. 공연 직전에는 내가 완벽하게 마리에타로 변해 있을 것 같다.
-낭만주의 오페라에 있기 마련인 격정의 선율, 매드신 류의 장면은 어느 부분인가?
“오페라 전반이 매드신이라 할 수 있다. 연습 중에 격정이 몰려와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흘린 적도 있다. 작곡가는 드라마틱한 장면 중간에 유랑극단의 극중극 등 재미있는 꼭지와 서정의 선율을 기가 막히게 넣었다. 관객들도 아름다운 음악을 즐기면서 무대 위 가수가 노래하고 연기하는 감정선을 같이 느끼면 좋겠다.”
-그러면 이 드라마틱 오페라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두 주인공이 하나가 되는 2막 피날레와 3막 마지막 부분을 주목하면 좋겠다. 특히 3막 클라이막스에 죽은 부인에게 집착하는 파울에게 마리에타가 자신의 관능미를 뽐내면서 그를 도발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는 올해 대학의 안식년으로 강의 부담 없이 이 작품을 만나 감사하다고 했다. 가수로서 관객을 감동시킬 의무가 있다는 그는 매 작품이 마지막 오페라 공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수많은 메모로 꽉찬 악보를 넘기며 연습에 연습을 더한다. 그와 함께
<죽음의 도시>
를 미리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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