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동부 샤먼에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샤오 주오(36)는 “매년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불안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샤오와 남편은 월급이 반으로 깎였다. 5년 전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까지 돌보고 있는 샤오와 가족들에겐 큰 타격이었다.
현재 중국 청년들 사이에선 ‘다 즈’를 만드는 게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인터넷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파트너를 말한다. 그러나 샤오는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운동하는 파트너 대신, 자신처럼 돈을 모으고 싶은 사람을 찾아나섰다.
사실 돈을 모으고 싶은 건 샤오 뿐만이 아니다.
데이터 분석 기업 ‘뉴스랭크’에 따르면 키워드 ‘#저축 파트너’는 중국판 인스타그램인 ‘샤오홍슈’에 지난해 2월 처음 등장한 이래 조회수 170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중국의 SNS ‘웨이보’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 글의 조회수가 수백만 회에 이른다.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우나, SNS 상황을 살펴보면 적어도 수천 명은 온라인에서 저축 파트너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20~40세 여성으로, 자녀를 둔 어머니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점점 더 부담스러워져 가는 자녀 교육비를 마련하고자 돈을 모으기도 하고, 주식이나 부동산 등 수익성이 좋은 투자 대안이 거의 없기에 현금 저축을 선호한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현재 경기 전망이 좋지 않기에 앞으로의 실직 혹은 급여 삭감 가능성에 대비하고 싶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공공 정책을 가르치는 루 시 교수는 중국의 가계 저축률은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최근 들어 저축률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는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한 신뢰가 낮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중국 가계의 은행 내 저금액은 지난해 약 138조위안(약 2경 5650조원)으로, 1년 전보다 거의 14% 늘어났다.
몇 년간 이어진 가혹한 ‘제로 코로나’ 정책 이후, 크게 회복하지 못한 중국 경제는 현재 부동산 위기, 디플레이션 압력, 외국인 투자 감소, 지방 정부의 부채 증가 등의 문제에 직면한 상태다.
중국에선 보통 여성이 가계 지출을 관리한다. 루 교수는 더 많은 여성들이 저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청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실업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봤다.
실제로 최근 중국 정부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실업률은 3개월 연속 증가했다.
한편 개인들의 저축 욕구가 강해지면 중국 경제는 다시 균형을 잡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지난 수십년간 중국의 눈부신 성장률은 인프라 투자, 저비용 제조업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 또한 성숙 단계에 들어서면서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국내 소비가 증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루 교수는 높은 저축률은 중국을 유동성 함정으로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990년대 일본의 상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국민들이 소비하거나 투자하는 대신 현금을 쌓아두길 선호하기에, 화폐 공급량을 아무리 늘려도 경기를 부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을 뜻한다.
불안감과 우정
그래도 샤오는 자신이 지난해 중국 경제 성장률에 40%나 기여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인 청정 에너지 분야에 종사해 행운이라고 했다.
그러나 학교나 병원 등의 공공 서비스 분야 근로자를 포함한 주변 여러 친지 및 친구들이 하나둘 직업을 잃으면서 자신도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지난 2월, 샤오는 여러 저축 그룹에 가입했다. 회원들은 매일 자신의 예산과 소비를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충동구매를 하지 못하도록 서로 막아주기도 한다.
한 회원은 5000위안이나 하는 명품 가방을 사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렸으나, 그룹 내 다른 여성 회원들과 대화한 이후 1000위안이 채 안되는 중고 가방을 샀다고 한다.
아울러 이 그룹을 통해 샤오는 돈을 아낄 수 있는 몇몇 팁도 배웠다.
예를 들어 한 모바일 앱을 소개받아 셀 365개에 1~183위안까지 일일 절약 목표치를 표시할 수 있는 하트 모양의 엑셀 시트를 작성했다. 이렇게 절약하다보면 1년이면 거의 3만4000위안을 아낄 수 있다.
샤오는 많은 이들이 자신처럼 돈을 모으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놀랐다면서 함께 절약하는 파트너들을 만나 동지애를 느낀다고 했다.
“혼자선 절약 습관을 지속해나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샤오는 현재 첫 아이를 임신한 교사인 여성과 특히 가까운 사이가 됐다. 샤오는 1달 절약 목표치를 달성하자 이 파트너를 위해 분홍색 장미 한다발을 주문해 2000km 떨어진 간쑤성까지 배송시키기도 했다.
샤오는 절약 파트너들과 함께 한 이후부터 충동 소비가 줄었다. 예전엔 장을 볼 때면 마음에 드는 물건은 카트에 담았다. 그러나 이젠 장보기 목록을 만들고 이를 충실히 지킨다.
1달 후 샤오의 지출은 40%나 줄었다. 그리고 1년 후엔 이전보다 10배나 많은 10만 위안을 절약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다른 여성들도 ‘다 즈’와 함께한 이후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 회원은 이제 밖에서 사먹지 않고 직접 요리를 하며, 불필요한 소비가 줄었다고 했다. 또 다른 회원은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는데 몰두하면서 저축을 늘릴 수 있었으며,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새로운 취미를 찾게 됐다고 했다.
'현금이 최고'
몇몇 중국 여성들은 더 전통적인 저축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바로 집에 현금을 보관하는 것이다.
데이터 수집 기업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중국은 전체 인구의 거의 70%가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는, 이미 현금 없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국가이기에 이는 이례적인 방식이다.
중부 허난성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여성 첸(32)는 “점점 두꺼워지는 지폐 뭉치를 보면 안심이 되고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첸은 매달 은행에서 수입의 대부분을 인출해 현금으로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 그렇게 5만위안에 도달할 때마다 정기 예금을 든다.
심지어 첸은 이제 장을 볼 때도 현금을 사용한다. 불편하긴 하지만, 소비를 줄이고 “만족감을 늦추기”위해서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첸의 미용실을 찾는 고객수는 급감했다. 그리고 여러 단골 고객들도 지출을 줄였다.
첸도 남편도 외동이라 이들은 부모님 4분도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두 아들의 어머니인 첸은 아들들을 위해 각각 100만위안 이상을 모으고 싶다고 했다.
중국에선 일반적으로 결혼 시 남성에게 집이 있길 바란다. 그렇기에 부모들이 아들을 위해 부동산을 구입하는 모습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첸의 계산에 따르면 이들 가족에겐 최소 500만위안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심지어 첸은 현재 임신 중으로, 이 정도로도 모자를 수 있다.
“과거엔 저축 계획이 없어도 돈이 조금 남았습니다. 이젠 저축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손에 현금을 쥐고 있으면 불안감이 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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