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국민을 닮아야 한다는 공식이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성립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4.10 총선의 주요 공약으로 거대 양당 모두 청년·저출생 정책을 내놨으나, 지역구 공천 결과에서 정작 2030 후보를 찾아 보기 힘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10 총선 후보등록이 마감된 지난 22일 오후 6시 기준 2030세대 여야 후보자는 총 37명으로 전체 후보자 대비 5.4%에 그쳤다.
이는 6.1%를 기록했던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보다 줄어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공천 후보 252명 중 4.4%가, 더불어민주당은 244명 중 3.7%가 40대 미만 후보자였다.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선 안정권인 1번에서 20번 사이에 배치된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2030 청년은 3명, 국민의힘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는 2명이다.
이로써 22대 국회에 입성하는 청년 정치인 수는 21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총선 때는 지역구에서 6명, 비례대표 7명이 당선됐다.
여성 후보의 상황도 비슷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 등록 현황에 따르면 총 699명의 후보 가운데 여성은 14%인 84명으로 지난 총선 때의 비중(19.1%)보다 더 낮아졌다.
60대 이상 유권자 역대 최다
중앙선관위가 22일 최종 집계한 제22대 총선 후보 등록 현황에 따르면 이번 후보 평균 연령은 56.8세다.
21대 총선 후보 평균 연령보다 2세 많고, '역대 최고령' 국회로 기록됐던 20대 국회의 평균 연령 55.5세와 비교해도 더 많다.
역대 총선 가운데 이번이 유권자 연령대가 가장 높은 선거이기 때문에 청년들의 목소리가 힘을 잃어간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관위가 집계한 선거인명부를 연령별로 보면 50대가 전체의 19.7%로 가장 많았다.
선거 유권자인 만 18세 이상 인구 가운데 18세부터 39세까지를 합친 인구의 비율(30.6%)이 60대 이상 인구의 비율(31.9%)보다 적은 것은 이번 총선이 처음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연령별 투표율이다. 21대 총선 당시 60대 투표율은 80%를 기록한 반면, 20대는 58.7%, 30대는 57.1%이라는 낮은 수치를 보였다.
결국 투표율 차이가 '노년층 표심'에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단 것이다.
청년정치크루 이동수 대표는 이번 총선 공천 결과에 대해 "지난 4년간 청년 정치인들의 막말, 가상화폐 등의 논란도 있었고, 이들이 실질적인 청년층의 공감을 불러오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은 리스크를 감당할 바엔 기성정치인으로 구성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정치외교학 이재묵 교수는 이로 인한 '과소 대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인구에서 2030과 여성의 비율, 그리고 국회에 입성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젠더나 연령대에 따라 따져보면 분명 여성과 2030은 과소 대표되는 문제가 발견됩니다. 그럼 결국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 어젠다 세팅이 힘들겠죠. 이것이 불평등한 대의, 불평등한 민주주의 문제로 이어지는 겁니다.”
청년 정치인들의 국회 진입율은 청년 관련 법안의 가결률과도 이어진다.
이 대표는 "5060 위주로 국회가 구성되다보니 2030 사이에서 어떤 이슈가 대두되고 있는지 모른다. 대표적으로 개인 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재점화된 망 사용료 문제도 정치권에선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말로만 4차 산업혁명, 플랫폼 산업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작 이를 사용하는 세대들은 다 배제된 채 5060이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연금문제나 청년 임대주택 등 같은 현안이더라도 세대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데 국회의 고령화는 특정 연령대의 입장만 중점적으로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 청년 의원 수 세계 '최하위'
국제의회연맹이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의 40세 미만 의원의 비율은 평균 18.8%다.
한국은 3.7%에 불과하며, 조사대상 155개국 중 142위로 최하위권이다.
아르메니아가 52%로 1위를 차지했고, 에티오피아, 우크라이나, 볼리비아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대다수 유럽 국가들의 청년 의원 비율은 20%를 훌쩍 넘는다.
젊은이들의 정치 편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해외의 경우, 체계적인 정치인 육성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주요 정당들은 별도의 청년조직을 두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기독민주당의 청년조직인 ‘영 유니언(Young Union)’은 무려 약 12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14~16세부터 가입할 수 있는 독일 청년조직은 정치 교육 및 정당 활동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정치인 역할을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
스웨덴도 청년조직이 활발히 운영된다. 실제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교육부 장관을 지낸 구스타프 프리돌린은 11세 때 녹색당 청년조직 ‘영 그린스(Young Greens)’에 입당해 이후 의원, 장관까지 지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역시 보수당의 25세 이하 청년조직 ‘젊은 보수당(Young Conservative)’에서부터 정치 커리어를 쌓아왔다.
북유럽 국가들의 정당 지도자들은 대부분 청년 당원 출신으로 정치 학교나 정당별 여름 캠프, 청년 기구 등에 활발히 참여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성 평등, 환경문제 등 새로운 현안들이 등장하면서 이에 걸맞은 ‘과감한’ 젊은 정치인을 포용하는 문화도 도움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룩셈부르크의 그자비에 베텔 전 총리는 현직이던 2015년, 국가수반 중 최초로 동성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가톨릭 전통이 강한 룩셈부르크에서 동성결혼 합법화가 실현되며 베텔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한국은 ‘청년 정치인 육성’ 프로그램이 미비하다는 인식이 높다.
거대 양당에서 간혹 청년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여나 이는 보통 ‘선배 정치인’이 나서 소속 정당이나 정책을 홍보하는데 그친다.
즉, 한국의 청년조직은 실무적인 능력을 쌓는데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이동수 대표는 "청년들의 무조건적인 출마를 독려하기보다 유능하고 사명감 있는 청년들이 정치권에 유입될 수 있도록 경험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제도적 토양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며 "또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일자리로서의 매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돈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선 1000만원,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 선거에도 200만원 이상의 기탁금이 필요하다.
물론 득표율에 따라 일부 보전받을 수 있는 금액이 있지만, 기반이 취약한 청년 후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청년들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보장될 수 있도록 청년 후보들의 공천 기탁금을 줄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가하면 한국에서는 지난 2021년 법 개정으로 국회의원 선거 출마 연령이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다.
실제 OECD 회원국 포함 총 189개국을 기준으로 가장 많은 62개국이 만 18세를 국회의원 출마 하한 연령으로 정하고 있으며, OECD 회원국만 놓고 보면 한국을 제외한 37개국 중 20개국에서 만 18세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여성의 정치 참여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긴 하나, 여전히 한국은 하위권이다.
국제의회연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은 16.7%로 190개 조사국 가운데 115위에 머물렀다. 전세계 평균 여성 의원 비율은 26.5%다.
유권자들의 입장은?
2030 유권자들은 국회의 '올드보이' 현상과 4.10 총선 공천 결과에 대해 “깊이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30대 회사원 김현상 씨는 “청년 의원 비중이 늘어나면 청년에게 우호적인 입법도 상대적으로 늘어날텐데, 지금 상황대로라면 중장년층에 치우친 입법이 이뤄질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청년층의 투표율이 저조하다보니 중장년층에게 어필이 되는 후보 위주로 공천이 이루어진 듯 하다. 청년으로서 더 열심히 투표권을 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 중인 20대 나지수 씨는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했다.
그는 “청년, 여성 후보가 점점 사라질수록 결국은 그들을 위한 정책이나 복지가 줄어들 것이고, 이는 분명 나에게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 씨는 여성과 청년들이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고 있다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한편 여전히 많은 기성세대 유권자들에게 ‘청년 정치’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40대 이윤주 씨는 “3선 이상의 국회의원들은 비리나 구태에 물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한 번씩 물갈이 개혁 공천도 필요하다”며 청년 정치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 50대 채두영 씨는 “청년 정치인들은 ‘말만 잘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사회, 정치를 비롯한 경험 자체가 부족해 민생을 이해하기엔 어려워 내 지역구에 청년 후보가 나온다해도 표를 던지진 않을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50대 정현우 씨 역시 “내가 젊었던 시절을 생각해봐도 2,30대에 뭘 알고 국민의 대표가 되어 정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정치를 하기엔 인생 경험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청년 후보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재묵 교수는 청년들의 활발한 정치 진입을 위해 “장유유서와 같은 유교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분야에서만 청년들의 유입이 활발하지 않을 뿐이지 최근 스타트업 등 산업계의 사례만 봐도 성공한 2, 30대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며 “이렇게 보면 세대 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 분야의 속도가 오히려 더딘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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