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지방 선거가 치러진 가운데 야당이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 등 주요 도시에서 승리를 거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70)이 지난해 3선에 성공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나온 이번 선거 결과는 주요 도시를 다시 장악하길 꿈꿨던 현 정권엔 큰 타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특히 자신이 성장한 도시이자 한때 시장이었던 이스탄불의 선거 캠페인을 이끌었다.
그러나 세속주의 성향의 야당인 공화인민당(CHP) 소속으로 2019년 처음 이곳의 시장이 된 에크렘 이마모을루 현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게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구 1600만 명에 달하는 메가 시티인 이스탄불의 새로운 시대를 약속했으나, 이마모을루 현 시장이 득표율 50% 이상을 넘기며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에서 내세운 시장 후보를 10%p 이상 앞섰다.
21년 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한 지 처음으로 집권당이 전국적으로 이토록 패한 건 처음이다.
한편 수도 앙카라에서는 야당 소속의 만수르 야바스 현 시장이 득표율 59%로 일찌감치 경쟁 후보들을 따돌리면서 개표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앙카라의 모든 주요 도로를 점거한 야바스 시장의 지지자들은 깃발을 흔들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환호했다.
이즈미르, 부르사, 아다나, 안탈리아 등 튀르키예 내 다른 주요 대도시에서도 공화인민당의 승리가 예측됐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기대했던 바와는 달랐다고 인정하면서도, 앙카라에 모인 지지자들을 향해 “이는 우리의 끝이 아닌 전환점이 될 것”이라 호소했다.
언제나 자신은 “국민의 뜻”에 따라 집권한다고 말해왔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이젠 유권자를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선거 운동이 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이번 대통령 임기가 2028년에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권당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해 또 한 번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참패하게 되면서 이러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선거는 오즈구르 오젤 공화인민당 대표에겐 큰 승리이다. 오젤 대표는 이번 역사적인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은 튀르키예의 얼굴을 바꿨다며 높이 평가했다.
“유권자들은 튀르키예 내 새로운 정치 환경 조성을 향한 문을 열고자 합니다.”
한편 선거 이후 이스탄불 내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인 사라차네에 자리한 시청 앞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튀르키예의 국기와 함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더불어 이마모을루 시장이 함께 그려진 현수막을 흔들며 승리를 축하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시민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신뢰와 믿음이 보답받은 것”이라고 답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야바스 시장과 더불어 오는 2028년 대선에 출마할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마모을루 시장의 지지자들은 시청 앞에서 북과 클라리넷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환호했다.
이는 이마모을루 시장이 5년 전 집권당을 꺾고 처음 이스탄불 시장직을 얻어냈을 때 사용한 슬로건이다. 사라차네에서 포착된 일부 현수막엔 이마모을루 시장이 이번 선거에서 내세운 슬로건인 ‘전속력으로 전진하라’가 적혀 있었다.
이마모을루 현 시장의 지지자 예스민 알바이락(25)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지방선거일 뿐이지만, 주요 도시에서 야당이 승리를 거뒀다는 건 여당에 맞서 보여준 엄청난 세력 과시”라고 설명했다.
메흐메트 반카치(27)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대선에서 공화인민당 소속 후보로 이마모을루나 야바스 시장이 출마했다면 분명히 승리했을 것”이라면서 튀르키예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스탄불은 약 8500만 명에 달하는 튀르키예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거주하는 대도시로, 이 도시를 장악하면 무역, 관광, 금융 등 튀르키예 경제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는 셈이다.
그리고 5년 전, 이마모을루 현 시장은 다른 야당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수년간 이 도시를 장악했던 집권당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함께 단결해 공동 후보를 내세웠으나, 지난해 대선 패배하며 야당들의 단합이 무너진 까닭에 이번엔 집권당이 다시 이스탄불을 차지하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31일 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의 무라트 쿠룸 후보가 쟁쟁한 상대로 부상하는 등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정의개발당은 67%에 달하는 물가상승률, 50%의 높은 금리 등으로 흔들리는 경제 위기에 결국 발목이 잡혔다.
현재 튀르키예 서부, 남부, 북부는 공화인민당의 세력이 강하며, 남동부 대부분 지역은 친쿠르드 성향의 ‘인민민주당(HDP)’이 장악한 상태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은 중부 지역을 계속 장악하고 있으며, 지난해 2월 2차례 강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스와 가지안테프 등에서도 계속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은 앙카라 소재 정의개발당 당사 건물 발코니에서 다음 대선까지 남은 4년간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의 실수를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지지자들은 “굳건히 있어 달라. 조국은 당신과 함께한다”며 화답했다.
이번 지방 선거의 전체 유권자 규모는 약 6100명으로, 처음 투표에 참여한 청년들이 100만 명 이상이었다. 투표율은 전체 81개 주에서 77% 이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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