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부산 남구 일대 주택재개발조합장이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였다. 조합장 A씨의 본업은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드러났다. 재개발조합과 계약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조합사무실이 아닌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실을 찾아 7억원 이상을 건넨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A씨가 조합장이라는 권위를 이용해 사익을 편취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부산 속 소외지역으로 불리던 남구 일대는 최첨단 주거단지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미니신도시급의 아파트 단지 건설사업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총사업비는 4조원대로 초대형 재개발 사업지로 불린다. 다만, 일각에선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형국이다.
초대형 재개발
사업 내용 보니…
앞서 남구 일대에 주택재개발사업 조합은 비리 백화점이라는 지적에 시달려왔다. 조합장 A씨는 업무상횡령,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나서기도 했다.
2022년 공동비상대책위원회 집행부 측은 “조합장이 업체와 결탁하고 사업비를 빼돌린 정황이 곳곳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합장은 지난 2020년에 업무상 배임, 횡령 등으로 비대위로부터 받은 고소, 고발로 인해 기소된 상태”라며 “1심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횡령 및 도시정비법 위반 등 총 7건에 대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지난해 6월, 1심 선고공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 판사는 지난해 5월24일 8793만원의 업무상횡령,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와 동 재개발사업의 정비업체 이사이자 전문조합관리인인 B씨에 대한 1심 선고공판서 “피고인 2명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무죄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19년경 공동비대위원회 집행부가 A씨의 대해 업무상횡령 8700여만원, 정보공개 관련 법령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2020년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혐의가 인정된다며 A씨 등을 기소해 수년간의 재판이 이어졌지만,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A씨의 비위 행각은 끝난 듯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월 A씨는 정비용역업체 H사 측에게 10억8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앞서 H사는 재개발 사업시행인가 업무 등을 대신하기 위해 조합과 정비용역계약을 2017년 3월27일 체결했다.
H사 측 변호인이 지난달 A씨에게 발송한 내용증명에 따르면, 조합 측은 H사에게 총 용역비 약 847억원 중 10% 이상에 해당하는 10억8000만원을 현금으로 차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H사 직원들은 A씨의 본 직장인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실을 찾아 7억7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용역업체, 새마을금고서 7억7000만원 전달
1억1000만원·2억원 조합 핵심 인사에 건네
또 지난해 2월과 5월경 H사 측은 각각 1억1000만원과 2억원을 조합 사무장 C씨의 아내인 D씨에게 빌려줬다고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H사 측은 A씨가 요구한 차용금 10억8000만원을 현금화하기 위해 사용된 수수료 등 3억2400만원을 포함해 총 14억400만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이후 지난 1월경 조합 측은 불특정사유로 H사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H사 측은 <일요시사>와 통화서 “A씨에게 빌려준 10억8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A씨가 총 14억400만원을 반환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조합 측의 수상한 행동은 의혹을 증폭시켰다. 지난 2월23일 A씨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내가 돈을 받았다는 H사 측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10억을 본 적도 없다”며 “2월26일 부산으로 오면 취재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현장을 찾은 취재진은 A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조합과 무관한 D씨가 대신 받았다.
A씨의 전화를 D씨가 대신 받은 이유를 묻자, D씨는 “왜 자꾸 전화하느냐? 사무실로 와도 인터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순한 의도로 취재하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A씨는 전화와 문자 메세지에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H사 측에 따르면, “D씨가 사실상 조합의 비선 실세”라고 표현했다. 조합원 명부에 없는 D씨는 해당 재개발사업 구역에 무허가건물을 사들인 후, 도시계획 변경절차를 거쳐 해당 건물이 소재한 지역이 사업 구역에 편입되도록 한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면서 H사 측은 “사무장인 남편 C씨와 조합장 A씨의 비선 실세 역할을 하면서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H사 측은 “D씨가 C씨와 함께 재개발사업 용역업체 등을 사전에 만나 금전 차용을 수단으로 협력업체와 결탁했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이 조합사무실을 찾아가자, D씨의 남편 C씨가 등장했다. C씨는 취재진에게 “H사가 빌려준 돈은 조합과 무관한 A씨와의 개인 채무 관계일 뿐”이라며 “왜 조합 사무실을 찾아왔냐”고 되물었다. C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A씨가 조합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H사로부터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는 뜻이다.
업무상횡령
차용금 논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2시경, A씨가 이사장으로 근무하는 지역 새마을금고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조합 사무실과 본업을 팽개친 A씨의 행방은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인 A씨가 취재에 응하지 않는 수상한 태도에 대해 새마을금고도 난색을 표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홍보팀은 <일요시사>와 통화서 “10억이라는 큰 돈을 조합장이라는 지위로 받았다면 당연히 이유를 밝혀야 한다”며 “본사 차원서 A씨에게 취재에 응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답했다. 현재까지 A씨도, 새마을금고도 묵묵부답이다.
A씨가 H사로부터 받은 10억8000만원이라는 돈의 성격이 빌린 돈이라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용역업체인 H사로써 거부할 수 없는 지시를 한 것이다. 앞서 취재진과 만난 C씨가 “A씨의 개인 채무”라고 해명했지만, A씨는 “10억8000만원을 본적이 없다”며 각자 다르게 주장하고 있다.
만약 A씨가 H사에게 용역계약유지 등의 명목으로 뇌물을 요구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시정비법상 재건축사업 조합장은 공무원과 같은 지위가 적용돼 용역업체 등으로부터 불법으로 금품을 수수한 경우, 형사 처벌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84조에 따르면 “형법상 뇌물수수 적용에 있어서 추진위원회의 위원장, 조합의 임원 및 정비사업 관리업자의 대표자, 직원 및 위탁관리자는 이를 공무원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규일 법무법인 한길 변호사는 “도시정비법 134조에 따라 조합 임원이 관련 업체로부터 받은 금품을 즉시 돌려주지 않았다면, 이를 조합에 돌려주더라도 처벌 가능하며, 조합 임원의 자격도 박탈당할 정도의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전했다.
무소불위
권위 이용?
이처럼 부산 남구 일대 재개발 현장은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2016년 8월30일 국토교통부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뉴스테이) 연계형 정비사업으로 선정한 이곳은 구역 면적이 12만4000평, 9092세대로 초대형 정비사업지다. 이에 따라 2016년 이후 1만7000여가구 규모의 뉴스테이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었다.
다만, 일각에선 급조된 정책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뉴스테이 사업방식이 조합원에게는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반분양추진위(이하 비대위) 관계자는 “뉴스테이 사업은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조합원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최근 아파트값 상승으로 부산에 4개 중 3곳이 이미 뉴스테이 사업을 철회하고 일반분양으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뉴스테이 사업은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서 발생하는 일반분양 주택을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일괄매수하는 방식이다. 주로 청년·신혼부부, 무주택자, 기존 주민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적은 돈을 투자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토지 소유권 확보와 건축 규모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서 조합원 모집에 나서는 등 편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사업 지연 등의 피해를 조합원들이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조합장 A씨의 비위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2020년 비대위 측이 A씨를 상대로 낸 고소장에는 용역업체와 공모해 약 240억 상당의 업무상 배임과 약 12억원을 횡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협력업체 계약 과정서 용역비를 지나치게 높게 체결한 것이 문제였다.
“빌려준 것, 조합과 무관” 해명
단순 차입금?···사익 편취 의혹
부산 남구 뉴스테이 사업관리 용역의 경우, 인근 우암2구역이 7억5000만원인데 비해 9배에 달하는 65억원에 계약됐다. 용역비는 사업 면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터무니없이 높다는 게 비대위 측 입장이다.
A씨가 철거업체 대표와 사전 결탁해 업체를 선정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비대위 측의 자료에 따르면 철거업체 G사와 이주관리 용역업체 F사 대표는 동일 인물이며, 사업 초기에 철거 용역업체로 선정됐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는 ▲정비구역변경지정용역(C업체) ▲세입자조사(D, E업체) ▲국공유지 무상양여업체(Y업체) 등 거액의 계약 체결한 협력업체들 주소지가 모두 부산이 아닌 서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비대위 측은 “지명경쟁입찰자끼리 경쟁하도록 해 조합원에게 더 비싼 용역비를 안겼다”며 “비리 근절을 위한 일반경쟁입찰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모든 용역업체를 지명경쟁입찰로 선정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2016년 11월 정비사업 조합 운영의 공정성, 투명성을 높이는 내용으로 도정법을 개정했다. 이에 정부는 재건축 재개발 용역비 1억원 초과 시 일반경쟁입찰로 선정하도록 발표했다. 하지만 조합은 이를 무시하고 2017년 1월 이사회 회의서 ‘건축심의 및 사업시행인가 준비를 위한 협력업체 선정 및 계약 체결 위임의 건’ 안건을 통해 협력업체의 선정 방법을 ‘지명경쟁 입찰방식’으로 결정했다.
비대위는 “이 밖에 국공유지 무상양도 용역계약(45억), 변호사 업무용역계약(45억), 철거 용역계약(230억) 등 대부분 계약이 과다하게 책정된 것 같다”며 “경찰조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 조합원의 소중한 재산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A씨는 논란에 대해 “소송이 진행 중이고 변호사와 상의해야 한다”며 “비대위 측 주장과 달리 이미 이주가 시작됐고, 정부가 정한 방침에 부합해서 진행하는 정상적인 개발사업”이라고 해명했다.
2020년 10월 결성된 비대위는 2021년 5월29일 임시총회를 열어 뉴스테이 사업을 주도해 온 조합장 등 임원 11명을 상대로 해임안을 붙여, 회의에 참석한 조합원 1154명 중 1073명(92.9%)이 집행부 해체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반발한 집행부는 2021년 8월19일 부산지법에 임시총회서 임원 11명 해임 결의에 대한 총회효력정지가처분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임시총회의 결의를 집행해서는 안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취재 나서자
연락 끊었다
그러자 비대위 측은 2021년 10월16일 조합원 임시총회를 다시 개최해 A씨의 해임 안건을 재차 의결했다. 또 이에 반발한 집행부는 그해 10월23일 옛 부산외대캠퍼스서 2021년도 임시총회를 열어 A씨를 재선임하며 방어하기도 했다. 방탄 조합장과 비대위 간의 수년간 이어진 진흙탕 싸움으로 내홍을 겪는 남구 일대 재개발사업의 향방에 주목하게 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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