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 작가의 ‘눈물의 여왕’이 인기다. 방송 6회 만에 시청률 14.1%를 찍으며 빅히트 조짐을 보이고 있고 한국 갤럽이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영상 프로그램’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지은 작가와 김수현이 9년 만에 다시 만난 작품이다. 이 둘은 과거 ‘별에서 온 그대’와 ‘프로듀사’를 크게 흥행시켰었다. 이번에도 좋은 반응이 나타나며 3연속 성공이 유력해졌다.
시골 출신의 평범한 남자와 재벌3세 여자의 이야기다. 김수현이 맡은 남주인공 백현우는 과수원과 가게 등을 운영하는 시골 이장집 아들이다. 김지원이 연기하는 홍해인은 백화점을 경영하는 재벌3세다. 백현우도 서울 법대를 나온 변호사라서 아주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만, 재벌 입장에선 서민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가 사랑 받는 이유로 흔히 관습의 전복이 거론된다. 기존 한류 로맨틱 드라마의 설정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 시작부터가 결혼한 후다. 결혼은 보통 로맨틱 드라마의 끝이다. 두 사람이 결혼하면서 완전한 사랑이 구현되는 걸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두 주인공은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전형적인 로맨틱 판타지다.
‘눈물의 여왕’에선 이미 결혼한 후 권태기에 빠진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주인공의 소원이 이혼이다. 이렇게 권태기, 이혼 등의 키워드에서부터 시작되는 한류 로맨스 드라마는 없었다.
또, 두 주인공의 위상도 뒤집혔다. 보통은 남주인공이 재벌3세 백마 탄 왕자님으로 등장하고 여주인공은 가난하거나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나온다. 하지만 여기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주인공이 평범남이다.
상대에게 키스하는 건 남자의 몫이었는데 여기선 여자가 먼저 키스한다. 또, 상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키스를 기대하면서 눈을 감는 건 일반적으로 여주인공의 행동이었는데 여기선 남주인공이 그렇게 했다.
사랑을 약속하며 “나 절대 당신 눈에서 눈물 나게 안해”라고 하는 건 보통 남주인공의 대사였는데 여기선 여주인공이 그렇게 말했다. 헬기 타고 상대를 만나러 가는 것도 남주인공이 아닌 여주인공이었다.
기존 드라마에선 여주인공이 시월드에 시달린다. 반면에 여기선 남주인공이 처월드에서 살면서 전전긍긍한다. 여주인공 집안에선 ‘조선시대 왕실에선 제사 준비를 남자만 했다’며 제사 음식 준비를 사위들에게 전담시킨다. 그러니 독박 제사 음식준비를 하며 신세한탄하는 것도 남주인공의 몫이다.
이런 식으로 기존 관습을 전복한 것이 흥행의 이유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관습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장르적 관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니라, 여러 설정 중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설정이 거르고 걸러져서 엑기스만 남은 것이다. 시청자들이 그런 설정을 얼마나 좋아하면 똑 같은 걸 질리지도 않고 때마다 보고 또 보겠는가. 그래서 오랫동안 비슷한 구도의 로맨스 드라마가 사랑 받아온 것이다.
시청자들이 관습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의 반대로 가는 걸 싫어한다는 뜻이다. 만약 ‘눈물의 여왕’이 로맨스 드라마의 관습을 모두 뒤집었다면 지금처럼 시청률이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적당히 뒤집을 건 뒤집으면서도 핵심적인 관습은 보존했다.
바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만을 사랑하고 보살피며 믿음직하게 지켜준다는 설정이다. 로맨스 드라마의 주 시청자는 여성들인데, 그 시청자들이 이런 설정을 선호한다.
이 드라마에서 남주인공인 백현우는 비록 재벌가에 기를 못 펴는 서민이지만, 여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바로바로 나타나서 구해준다. 여주인공이 암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여주인공 모르게 막후에서 활약하기도 한다. 여주인공이 다쳤을 땐 번쩍 들어 안아주기도 하고, 비가 올 땐 자기 어깨가 다 젖어도 여주인공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현재 여주인공은 병으로 인해 그리고 여주인공의 집안은 내외에 도사린 적으로 인해 모두 위기에 빠졌는데, 앞으로 남주인공이 탁월한 능력으로 모두를 지켜줄 걸로 예측된다. 남주인공이 능력남이란 설정도 로맨스물의 일반적 관습이다.
이렇게 뒤집을 건 뒤집으면서도 지킬 건 또 지키는 줄타기를 통해,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구도를 만들어냈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이유다. 박지은 작가가 그렇게 딱 적당한 선까지만 신선하게 만드는 줄타기를 잘 한다. 그런 장기로 한류 신드롬을 만들어온 박 작가가 이번에도 또 다른 국제 신드롬을 일으킬지 기대가 모인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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