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하원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태국 사회가 결혼 평등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물론 실제로 법안이 발효되기 위해선 상원과 왕실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올해 말까지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동성혼을 허용하는 국가가 될지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 내에서도 성소수자 연인들이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안식처라는 태국의 명성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태국 하원의 결혼 평등 위원회 의원장인 다누폰 푼나깐타 하원의원은 법안 초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는 평등의 시작이다. 모든 문제에 대한 보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평등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면서 “이 법은 사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게 아닌, 권리를 되돌려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석한 의원 415명 중 400명이 찬성하며 하원을 통과한 이번 법안은 결혼을 남성과 여성 간이 아닌 두 개인 간의 파트너십으로 정의하고 있다. 아울러 성소수자 부부도 결혼 시 절세 혜택, 재산을 상속할 권리, 필요한 경우 파트너의 치료에 동의할 권리 등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해당 법에 따르면 동성 커플도 결혼 후 자녀를 입양할 수 있다. 그러나 하원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용어 대신 ‘부모’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결혼 평등 위원회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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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태국은 이미 성 정체성 및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존재하는 등 가장 성소수자 친화적인 아시아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동성 결혼 합법화에 이만큼 다가가기 위해선 수년간 시민 캠페인이 벌어졌다.
과거에도 광범위한 대중의 찬성을 바탕으로 동성 결혼 합법화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태국 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6.6%가 이 법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한편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드러낸 경찰관인 피싯 시리히룬차이(35)는 “그렇다, 의회 토론을 지켜봤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면서 “정말 합법화가 될 것 같아 벌써 기쁘고 흥분된다. 내 꿈이 이뤄지는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시리히룬차이는 이 법이 발효되는 날 지난 5년여간 사귀어온 연인과 결혼할 계획이라고 했다.
진보적인 색채의 야당으로, 지난 10년간 결혼 평등 시민운동을 벌여온 ‘무브 포워드(전진)’당 소속 의원이자 동성애자인 툰야와즈 카몰웡왓 의원은 “오늘 평등이 실현됐다고 느낀다. 태국 의회가 성소수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해주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태국에선 이미 지난해 총선 기간 몇몇 정당이 동성 결혼을 인정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은 바 있다. 세타 타위신 총리 또한 지난 9월 취임 이후 동성 결혼을 지지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하원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법안 4건을 통과시켰다. 그중 1건은 타위신 총리 내각이, 른 3건은 야당이 발의한 법안이다. 27일 하원에서 통과한 법안은 이러한 법안이 하나로 통합된 건이다.
한편 태국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활발한 국가임에도 태국 정부는 지금껏 성 정체성 변경을 허용하자는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태국은 동성 간 친밀함을 범죄로도 규정하는 국가가 있을 정도인 동남아시아에선 여전히 눈에 띄는 국가다. 아시아 전체를 살펴봐도 그렇다.
아시아에선 우선 대만 의회가 지난 2019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으며, 이후 지난해 11월 네팔에선 대법원이 동성 결혼 지지자들의 편을 들어준 지 5개월 만에 첫 동성 부부가 정식으로 탄생했다.
이보다 1달 전, 인도 대법원은 동성애 합법화는 법원의 권한 밖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인도 정부는 동성 커플에게 더 많은 법적 권리를 부여할지 결정할 합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들은 일본에서도 결혼 평등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일본에선 몇몇 지방 법원이 동성결혼 불인정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중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고 있으나, 여당 내 연로하고 보수적인 세력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선 지난 2022년 동성 간 성관계를 금지하던 식민지 시절 법이 폐기됐으나, 남성과 여성 간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헌법이 개정됐다.
추가 보도: 탄야랏 독손, BBC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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