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진행된 2024 러시아 대선에서 다른 세 후보와 경쟁한 끝에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이 승리했다.
이미 푸틴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 차로 5선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됐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선거 위원회가 푸틴이 득표율 87%를 기록했다고 발표하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민주주의야말로 여러 서구권 국가에 비해 더 투명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선에서 푸틴을 위협할만한 후보들은 출마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한편 지난 2월 사망한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지지자들은 17일 정오에 맞춰 투표소에 나오자는 상징적인 시위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이 벌인 ‘푸틴에 저항하는 정오’ 시위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수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몇몇 도시와 여러 해외 대사관 앞에 길게 줄을 섰지만, 처음부터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치진 못할 일이었다.
러시아 인권단체 ‘OVD-인포’에 따르면 러시아인 최소 80명이 체포됐다고 한다. 지난 15일 일부 투표소에서 산발적으로 공격이 발생했으나, 그뿐이었다.
한편 여러 서방 국가들은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선거였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독일은 검열, 억압, 폭력에 의존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자의 지도로 열린 “거짓 선거”라며 지적했다.
아울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불법적으로 선거가 치러졌다”는 점을 비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독재자가 또다시 선거를 조작했다”며 날을 세웠다.
나발니의 최측근이자 리투아니아에서 망명 중이던 지난주 망치로 습격당한 레오니드 볼코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푸틴을 위해 설계된 투표율은 당연하게도 현실과 조금도 맞닿아 있지 않다”고 한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에 3일간 투표를 실시했으며,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에선 주민들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더 준다는 명목으로 더 오랫동안 선거를 진행했다.
자포리자 내 러시아 점령지인 베르디얀스크에선 현지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 가운데, 점령지 주민들은 러시아에 협력하는 이들이 무장 군인을 대동한 채 투표함을 들고 가정집에 찾아온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이 통제하는 국영 TV 채널에선 이번 대선 결과는 승리와도 같다며 높이 평가했다.
한 특파원은 고조된 목소리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인물에 대한 놀라운 수준의 지지와 단결”이라며 “이는 서방 국가들에 보내는 신호”라고 묘사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푸틴 대통령은 이에 비해선 더 차분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온라인 투표를 통해 유권자 800만 명이 참여했다면서, 러시아의 선거 시스템이 미국에 비해 훨씬 더 발전됐다고 치켜세웠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온라인으로 표를 행사하는 모습을 공개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온라인 투표는) 투명하고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며 “미국의 우편 투표와는 다르다 … (미국에선) 10달러에 한 표를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립적인 감시 단체 ‘골로스’는 이번 선거 참관을 금지당했으나, 선거 기간 여러 부조리가 이뤄졌으며, 공기업 직원들이 온라인 혹은 투표소에서 투표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투표용지를 훼손한 이들을 비난하며 이들에 대해선 조처할 것이라 말하면서도 유권자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한 반대파 운동가들을 칭찬하는 모습을 보였다.
푸틴 대통령이 가장 활발히 자신을 비난했던 정적인 나발니의 이름을 거론한 건 그가 북극권의 한 교도소에서 사망한 지 1달이 지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나발니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발언에서 푸틴 대통령은 과거 자신이 서방에 수감된 재소자들과 나발니의 교환을 검토했다면서, 단 나발니가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언급했다.
“저는 (이러한 조건으로) 교환에 찬성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죠. 어찌하겠습니까? 그게 인생이죠.”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는 항의의 일환으로 독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6시간 동안 줄을 섰다. 나발나야는 자신은 투표용지에 고인이 된 남편의 이름을 적었다고 밝히며, “모든 게 허사가 된 건 아니라는 희망”을 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영국 런던에서 이러한 반푸틴 운동에 참여한 한 유권자는 7시간 넘게 줄을 서 투표했다고 밝혔다.
시민운동가이자 변호사로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류보프 소볼은 이러한 항의성 투표가 크렘린궁의 투표 결과에 반영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연대, 상징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러시아 대선에선 결코 공정한 경쟁이 펼쳐질 수 없었다. 크렘린궁은 러시아의 정치 시스템, 언론, 선거 시스템을 모두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또 다른 대선 후보인 러시아 공산당 소속 니콜라이 하리토노프의 득표율은 4%에 불과했으며, 다른 후보들은 그보다도 더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세 후보 모두 진지한 적수가 될 수 없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하리토노프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모든 분야에서 국가를 통합하고자 노력한다”며 푸틴 대통령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러시아 국민 수백만 명이 푸틴의 5선을 위해 표를 던진 부분적인 이유로는 딱히 신뢰할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크렘린궁이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정적들을 이미 다 제거했기 때문이다. 푸틴에 반대하던 이들은 투옥됐거나, 망명길에 올랐거나,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반전을 외치는 정치인인 보리스 나데즈딘이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몇 주간 제기됐으나, 지난달 러시아 선거 관리 위원회는 나데즈딘의 입후보를 금지했다. 나데즈딘의 메시지에 동감하며 수만 명이 그의 입후보 추천서에 서명하고자 줄을 섰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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