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장재현 감독이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뽑아내고 약을 발라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국뽕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데뷔 35년 만에 처음 도전한 오컬트물 '파묘'로 돌아온 배우 최민식이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최민식을 만나 영화 '파묘' 에피소드 외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 영화다. '사바하' '검은 사제들'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민식을 비롯해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이 열연했다.
최민식은 극 중 40년 경력 풍수사 '상덕'으로 분했다. 그는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무섭다, 안 무섭다가 아니라 친근하게 느껴졌다. 무속, 풍수 등을 어릴 때부터 많이 접해서다"라고 밝혔다.
이어 최민식은 "제가 10살 때 폐결핵으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 세상에 있을 사주가 아니다'라는 얘기도 들었다. 당시 어머니께서 열심히 절에 다니며 기도하셨다. 의사들도 포기했는데 희한하게 병이 났더라. 저는 신비한 경험을 몸소 체험했다. 결국 어머니 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라며 "기도를 하고, 때론 굿을 하고, 이사할 때 방향을 보고 풍수 인테리어도 하지 않나. 이런 것들이 미신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여겨진다. 어려서부터 보고 경험해서인지 영화에서 묘사된 풍수나 굿이 하나의 공연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최민식은 장재현 감독 때문에 '파묘'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을 알겠지만 '파묘'에는 '일본'과 관련한 전개가 이어진다. 이에 대해 최민식은 "장 감독이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땅의 트라우마' 이런 표현은 처음 들어봤다. 멋있더라. 저는 국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며 웃었다.
이어 최민식은 "장 감독은 전작 '사바하' '검은 사제들' 등을 통해 신과 인간과의 관계, 종교, 자연 등을 이야기했다. 인간하고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닌가. 그렇지만 불편할 수 있는 소재다"라며 "장 감독은 종교 외 영역으로 확장하고 건드렸다. 자칫 위험해질 수 있었는데 열려 있더라. 무엇보다 만듦새가 정말 대단했다.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어 냈다. 그건 '실력'이다"라고 극찬했다.
계속해서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친구다"라며 "장 감독은 사실 기독교 집사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 그 방대한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준비했는데, 그 과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중간에 지칠법한데 대충 넘어가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흙' 색깔까지 체크하더라. 영화 중후반부 등장하는 '불'도 CG가 아니다. '과학기술은 액서서리냐?'고 제가 얘기했다. 큰 공 모양에 LPG 가스를 집어넣어서 불을 붙이고 크레인으로 집어 올려 찍었다. 디테일이 남다르다. 덕분에 뭐 따뜻하게 촬영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최민식은 풍수사 상덕 캐릭터를 말 그대로 제 옷을 입은 듯 연기했다. 과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몰입도를 높였다. 그는 "40년 동안 땅 파며 먹고산 사람이다. 그거 하나 제대로 표현해야겠다 싶었다. 일단 산 자체를 일반 등산객처럼 바라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흙냄새를 맡고 맛도 보고, 그렇게 깊게 바라보는 태도에 포인트를 줬다"라며 "사실 우리 영화는 김고은이 다 했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난 한 게 없다"면서 웃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김고은이 강한 임팩트로 영화적 묘미를 살렸다면, 최민식은 존재 자체로 무게감을 주며 극에 생동감을 더했다.
캐릭터를 잘 살리는 노하우를 물었더니 최민식은 "그럴듯하게 사기 치는 거다. 허구의 삶을 현실에 있을법하게 그리는 게 제가 해야할 일 아닌가"라며 "사실 제일 외로운 순간이기도 하다. 카메라 앞에 선 그 순간부터 해당 인물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때부터는 그 누구도 제 작업에 개입이 안 된다. 절벽에 떠밀려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동안 감독과 대화하고 연구하고, 마인드 컨트롤 하고 여러 상상을 해서 만든 무형의 인물에게 밀착이 돼야 하고, 그 상태에서 뒤돌아보지 말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최민식은 "사람들이 저를 포함한 '파묘' 배우들을 '묘벤져스'라고 부르더라"라며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최민식은 "실제 풍수사와 장의사가 한팀으로 다니기도 한단다. 극 중 장의사 영근(유해진)과는 오랜 시간 같이 일한 사이다. 딱 봐도 '기분이 별로 안 좋구나' '말 시키지 말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또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MZ 무당이다. 이장할 때 '당신 몇%, 나 몇 %' 바로 나올 수 있게, 예전부터 협업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보여야 하는 게 관건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민식은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을 처음 만나 인사하고 리딩하던 날이 생각난다"라며 "유해진은 워낙 작품에서 많이 봐 왔고, '봉오동 전투'에서 잠깐 만나지 않았나. 김고은과 이도현은 완전 처음이었다. 둘 다 넉살 좋고 술 좋아하고, 예전부터 많이 작업한 친구들처럼 느껴졌다. '아! 프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묘벤져스'를 표현하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믿음이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고은은 '파묘'의 손흥민, 이도현은 김민재다"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최민식은 "자신의 이미지에 갇힌 배우들이 있다. '나 예쁜데 어떻게 그런 걸 해?' 라며 아마추어처럼 행동한다. 김고은은 그런 몹쓸 짓에 갇히지 않았으며 용감하고 도전적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최민식은 "여배우가 무속인 역할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아무리 배우라고 하지만 그런 것에 스스럼없이 자신을 열고, 내려놓고, 배우고 몰입하는 모습을 볼 때 너무 대견했다.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최민식은 "그런 도전 정신으로 대담하게 연기하는 김고은의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라며 "김고은 같은 친구하고 같이 작업하면 좋다. 괜히 드리는 말씀이 아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최민식은 '파묘'에서 자신은 최전방 공격수가 아님을 다시 강조했다. "저는 벤치에서 게토레이를 입에 넣어 주는 사람이었다. 아니 뭐 상덕이랑 영근(유해진)이 아무리 까불어봤자, 김고은이 칼 들고 휘저으니까 끝났지 않았냐. 진짜 대단했다"라며 크게 웃었다.
이어 최민식은 자신이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것에 대해 "우리는 경쟁하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이번 영화에서는 분명히 김고은이 돋보여야 했다. 그러려면 저도 튀면 안 됐다. 누군가 돋보이고, 다른 사람은 눌러 주는 것은 연출가의 몫이기도 하다. 배우들끼리는 전체를 흐트러트리지 않는 한도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대살 굿' 장면이 '파묘'의 하이라이트다.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나. 그 장면에서 김고은이 마음껏 즐겨야 했다. 그만큼 고생해야 했다"고 했다.
최민식은 "전 체력 때문에 손흥민처럼 드리블은 안 된다. 지금 '올드보이' 같은 작품 찍으라고 하면 죽는다. 지단처럼 볼 배급은 할 수 있다"며 미소 지었다.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데뷔한 최민식은, 그 전 연극까지 포함하면 40년 가까이 연기해 왔다. 지난 시간에 대해 "굳이 되돌아보고 싶지는 않다. 얼마 전에 신구-박근형 선생님이 주인공을 맡으신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왔다. 그분들도 그렇게 하시는데 저는 핏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민식은 "경력 35년이다 뭐다, 기자님들이 말씀해주셔서 알지, 누가 세고 앉아있나. 제가 그걸 세고 있으면 안 된다. 뒤를 돌아 보는 건, 뒤로 주저 앉는 것과 똑같다. 저는 앞으로도 할 게 많다. 욕심도 많다. 의욕이 점점 생긴다"라며 "'왕년에 이랬지' 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배우는 물론 창작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니다. 많은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예술가로서 존경받는 분들은 안 그런다. 저는 신구 선생님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최민식은 "아직 제가 만져보지 못한 세상이 많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은 빙산의 일각도 안 된다. 일단 멜로도 못 해 봤다"라고 말했다.
"'파이란' 해보지 않으셨냐"라는 말에 최민식은 "(상대) 얼굴도 못 봤는데 그게 무슨 멜로냐. 얼굴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게 멜로지"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최민식은 "달달한 바닐라 라떼를 시켜 놓고 달달한 이야기한다고 그게 사랑일까. 사랑의 감정이란 과연 뭘까. 사랑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선남선녀들의 사랑만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사랑의 형태가 궁금하다"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최민식은 인터뷰할 때마다 '멜로'에 대한 갈증을 이야기해 왔다. 이날도 "멜로 욕심이 이렇게 많은데 도대체 왜 안 들어오는 거냐"라며 의아해해 웃음을 안겼다.
'파묘'는 지난 22일 개봉했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km@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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