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맞팔 500명인데 연락처는 0개···MBTI는 밝혀도 전화번호는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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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세] 맞팔 500명인데 연락처는 0개···MBTI는 밝혀도 전화번호는 'NO'

여성경제신문 2024-02-03 12: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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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차승현 씨(24)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친구 목록을 확인하고 있다. /김예린
대학생 차승현 씨(24)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친구 목록을 확인하고 있다. /김예린

대학생 윤서현 씨(23)는 얼마 전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과제를 하고 밥도 먹으며 친하게 지낸 친구에게 전화할 일이 생겼는데 번호를 몰라 애를 먹은 것이다. 이에 윤씨는 “요즘은 전화보다는 카톡이나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연락하니까 전화번호가 없다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지아 씨(23)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교회에서 친해진 동생과 처음으로 교회 밖에서 약속을 잡았다. 김씨는 변경된 약속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연락처 앱에 들어가 친구의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하지만 번호는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김씨는 동생의 번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학교 신입생 유원상 씨(21)는 입학하기 2개월 전 대학교 친구를 사귀게 됐다. 2022년 12월 말 만들어진 단체 채팅방에 다들 자신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유씨도 자신의 아이디를 올려두었다. 들어오는 팔로우 '신청'과 '수락',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유씨는 그렇게 채팅방 인원들과 ‘인스타 친구’가 됐다. 3월이 되고 개강 파티 자리에서도 '인스타 아이디 교환'은 계속됐다.

처음 만난 사람과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문자와 전화로 소통하는 시대가 끝났다. 청년들은 SNS상에서 쉽고 빠르게 친구를 맺는다.

디지털 세계에서 맺는 친구 관계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SNS 활동하는 20대, 10명의 인스타그램 친구 목록을 분석했다. 인스타그램 친구 목록을 나열하고 연락 빈도를 측정하게 했다. 물어보는 항목은 다음과 같았다. 세달 이내 연락한 경우, 올 한해 연락을 한 적이 있는 경우, 전화번호가 있는 경우, 총 3가지로 분류해 친구 목록을 범주화했다.

10명의 설문을 받아 평균치를 구했다. 그 결과 전체 친구 목록 중 32%만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다. 당장 100명의 일상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만, 당장 전화를 할 수 있는 친구는 30명을 간신히 넘겼다. 인스타그램으로 모든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서 젊은 층은 전화번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설문에 참여한 일본인 유학생 리에코 씨(25)는 "(전화번호를)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죠. 전화번호 없이 큐알코드로 친구를 맺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처음 만나 '맞팔'만 하고 그 뒤로는 소통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았다. 설문 결과 최근 1년간 개인적으로 연락을 나누지 않은 친구들의 비중은 54%를 기록했다. 인스타그램 상에서는 서로 팔로우하지만 얼굴을 보고는 인사조차 안 하는 관계를 정말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젊은 세대 사이 ‘친구’의 의미가 모호해졌다.

전화번호를 묻지 않는 것이 당연해지다보니 전화번호를 물어볼 일이 생긴 청년들은 그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유씨는 전년 9월 동기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았지만 친구는 약속된 시각을 한참 넘겨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해볼 수는 없었다. 전화번호가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난 뒤에도 유씨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못 했다. 유씨는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이 '인스타 친구' 이상의 친밀함을 갖고 싶다는 의미로 비칠 것 같아서 걱정된다"락고 밝혔다. 유씨의 인스타그램 친구 185명 중 전화번호를 나눈 친구는 46명에 불과했다.

유씨는 초면에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보는 것에 관해 "MBTI가 뭐냐는 질문처음 어색함을 풀기 위해 묻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새로 알게 된 사람에게 가볍게 다가갈 순 있지만 깊은 관계까지 되긴 어려운 것이다.

한편 SNS를 하지 않는 20대는 이 시대의 희귀종이 되었다. 2022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SNS 이용 행태 조사 결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대 조사 대상자의 93.3%가 SNS를 활용했다.

대학생 서한비 씨(23)는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 만나면 인스타 아이디를 먼저 묻는 시대에서 '계정이 없다'고 답하면 '혹시 알려주기 싫어서 없는 척하는 것 아니냐'는 장난 섞인 말을 듣기도 한다.

이런 서씨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 서씨는 "선배들이 이전에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봤다. 나는 계정이 없으니 대신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라고 말했다. 팔로워는 없지만 전화번호를 나누는 친구가 늘었다. 현재 친구 관계에 만족하는 그녀는 앞으로도 SNS를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생인 김유리 씨(23)는 인스타그램을 탈퇴한 지 3년이 지났다. 김씨는 인스타그램 탈퇴 후 "인간관계도 정리되고 가벼웠던 관계들도 정리가 되니까 주로 연락하던 친구들, 나와 더 잘 맞았던 친구들로만 연락해서 좋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인스타그램으로 맺는 친구 관계의 특징으로 상대방을 '안 만날 때만 편한 관계'라고 말했다. 친구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반응을 주고받을 때면 편안하지만 동시에 관계의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당장 인스타그램 앱을 열면 지인 수백 명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도 빠르게 연락을 건넬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만나지 않는 친구, 전화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친구 관계에 회의를 느껴 SNS를 떠났고 급기야 2G폰을 사용하며 전화와 문자만 사용하는 젊은 층들도 등장했다.

유원상 씨(21)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주기적으로 정리한다. 일정 시간 동안 연락하지 않은 관계면 친구 목록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외국에 거주하는 유학생 차승현 씨(24)도 얼마 전 인스타그램 친구 관계를 정리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어 좋지만 가끔 친구목록을 살펴보며 연락하지 않는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모두가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서 친구의 의미는 '알지만 모르는 사이', '친하지만 어색한 사이'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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