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리그는 정말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외줄타기'하는 기분이다"
프로당구(PBA) 팀리그 포스트시즌 챔피언에 오른 김가영(하나카드)이 이번 우승에 대해 밝힌 소회다. 당구는 개인종목이기 때문에 김가영은 수많은 우승트로피를 스스로 일궈냈지만, 이번만큼은 혼자가 아닌 팀으로 이룬 우승이기 때문에 소감도 달랐다.
지난 27일 끝난 '웰컴저축은행 PBA 팀리그 2023-24' 포스트시즌 파이널에서 하나카드가 4승 3패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할 당시에 김가영은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나만 이기지 못했다"며 카메라 앞에서 겸연쩍어하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나카드는 김가영이 마지막 경기는 이기지 못했지만, 다른 팀원들이 공백을 메워 기적처럼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우승트로피는 김가영이 프로당구에서 유일하게 남은 타이틀이었다. 프로와 아마추어, 포켓볼과 3쿠션 등 무대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정상을 차지했지만, 팀리그 우승은 유독 쉽지 않아 보였다.
팀리그는 생소한 방식의 승부다. 김가영은 "팀리그를 하기 전에는 '팀워크'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1, 2년차까지는 팀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을 몰랐는데, 올해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이런 부분이 시너지가 많이 나는구나 하고 배웠다"라고 말했다.
또한, "(팀워크는)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기적이고, 감사하다. 더 열심히 팀원들을 챙기고 사랑하면서 당구를 치고 싶게 만드는 날이 된 것 같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김가영은 21살에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년을 넘게 개인종목인 '당구선수'로 살아왔다.
세계선수권을 3번이나 우승했고, 그 세월에 수집한 우승트로피로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타이틀을 얻었다.
2019년 6월에 열린 프로당구 개막전에 초청선수로 참가했다가 선수등록을 말소당해 본의 아니게 3쿠션 종목으로 전향했을 때도 김가영은 "포켓볼과 3쿠션은 완전히 달라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몸을 낮췄지만, 투어마다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남달랐다.
결국, LPBA에서 5시즌 동안 '당구 여제'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그림을 완성하고, 개인투어 6승, 월드챔피언십 우승, 상금랭킹 1위, 애버리지 1위 등 LPBA에서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은 전부 쓸어 담았다.
딱 하나, 낯선 방식의 승부인 팀리그 우승이 남았는데 이게 어려웠다. 하나카드는 지난 시즌에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이번 시즌은 아예 정규리그 하위권에 머물 만큼 4라운드까지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5라운드에서 김가영의 부활과 함께 우승하며 불가능해 보였던 포스트시즌행 막차를 탔다.
팀리그에서 김가영의 존재가 화려함을 잃어가던 시기에 기적처럼 살아나 팀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면서 슬며시 마지막 하나 남은 우승 타이틀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5라운드부터 준플레이오프 에스와이전, 플레이오프 NH농협카드전 모두 김가영의 활약이 없었으면 하나카드의 파이널 진출은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정규리그에서 좋지 않았던 SK렌터카를 파이널 상대로 만나면서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것이 또 쉽지 않았다. 5차전에서는 2승 3패가 되면서 우승트로피와 멀어졌고, 6차전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승부가 끝나는 상황에 몰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6차전 2세트에 나온 김가영은 6이닝 동안 혼자서 8점을 쳤다. 그의 활약으로 2세트 여자복식에서 승리하고 세트스코어 2-0을 만들면서 하나카드는 꺼져가는 불씨를 살렸다.
6차전을 승리하고 마지막 7차전으로 오는 동안 김가영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듯했다. 그 이유에 대해 "개인투어는 예측이 가능한데, 팀리그는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라고 말하며 팀리그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오늘 몇 점을 칠지,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다. 제일 예측이 불가능하다. 개인투어 같은 경우에는 별 실수 없으면 어느 정도 성적을 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팀리그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외줄타기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종목의 선수였던 대부분의 당구선수들은 '팀전'이라는 형식은 익숙하지 않다. 6~7명이 한 팀으로 각 세트를 분담하는 형태의 팀리그는 뱅크샷 2점에 쇼트게임, 복식전, 스카치매치 등 온갖 요소가 집약돼 있어서 승부를 결코 예단할 수 없다.
이처럼 팀리그는 선수 개인이 뛰어나도 팀워크를 살리지 못하면 혼자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김가영도 우승의 감동이 남달라 보였다.
'시즌 2승'의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김가영의 팀 동료 사카이 아야코(일본)는 "개인투어 우승보다 팀리그 우승이 더 소중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가영은 하루하루 '외줄타기'를 했던 지난 22일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상 처음 팀리그 우승을 차지한 벅찬 감동의 순간을 되새겼다.
"우승 직후 주마등처럼 한 달, 1년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정말 기적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특히, 지난 한 달 동안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1월 3일부터 훈련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같이 있는데 말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많았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것들이 핑계가 될까, 이것 때문에 승부에 영향이 생길까,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 다독이면서 해결해 왔다"며 힘겨웠던 팀리그 우승의 여정을 전했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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