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근무가 확산된 시대에 해고당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행동은 해고로 인한 고립감에서 벗어날 힘이 되기도 하지만, 과연 긍정적 효과만 있을까?
브리트니 피에치가 화상 통화로 해고 통보를 받는 장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백만 명이 시청했다. 미국 IT 기업 ‘클라우드플레어’에서 회계 관련 업무를 맡았었던 피에치는 최근 해고됐다. 그러자 지난 1월 12일, 그는 해고 통보를 받는 모습이 담긴 9분 분량의 영상을 틱톡에 올렸다. 영상에는 “해고가 임박했음을 알게 된다면, 그 장면을 촬영하라”는 설명이 달려있었다.
이 영상에는 피에치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회사측 인사 2명이 등장한다. 그들은 피에치가 '성과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말하고, 피에치는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자신이 받았던 긍정적 피드백을 예로 들며 자신을 변호하는 한편, 회사측 인사들에게 자신이 해고 대상이 된 구체적 사유를 따져 묻는 것이다(고용주들은 사유 공개를 거부했다).
전 세계적으로 대량 해고가 산업계를 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틱톡과 ‘X(구 트위터)’에선 피에치의 영상과 비슷한 해고 영상이 주목받고 있다. 영상에 나오는 대부분의 해고는 화상 통화로 진행되는데, 사회 경험이 적은 젊은 층은 살면서 당한 첫 해고에커다란 고립감을 겪기도 한다.
시청자들 중에는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공감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영상 속 상황에 공감하며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조언을 댓글로 달기도 한다. 피에치는 1월 16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가족 및 친구들에게 공유하기 위해” 녹화를 하고 영상을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해고 사실을 소셜 미디어 콘텐츠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런 행동은 장기적으로 경력 관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콘텐츠를 통한 유대
틱톡에서 해고를 뜻하는 해시태그(#layoffs)가 달린 영상들의 조회수는 3억6600만 회가 넘는다. 그런데 해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갑자기 폭증한 건 아니다. 작년부터 글로벌 IT 기업들의 대량 해고가 시작됐고, 그 흐름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해가 바뀐 후에도 구글과 아마존, 기타 주요 기업에서 감원이 있었고, 미디어 업계에서 일어난 해고 또한 수천 명에게 영향을 줬다.
실시간 해고 중계 트렌드의 중심엔 Z세대 직장인들이 있다. 이들에게 이런 영상은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일상을 소개하는 틱톡의 콘텐츠 장르 ‘겟 레디 위드 미(GRWM)’의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크리에이터에겐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이면이 팔로워를 모으는 소재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해고는 소셜미디어에 올릴 만한 소재다. 더구나 당대에 유행하는 형식과 시대정신을 잘 맞춘다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도 있다.
해고에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창문 없는 회의실’이 아닌 자택에서 10여 분 남짓한 화상 통화로 해고를 당할 때 느낄 수 있는 고립감을 덜어내는 방법이 되곤 한다. 피에치의 영상만 해도, 공감과 지지의 댓글이 꽤 달렸다. 한 시청자는 “정말 유감”이라며 “나는 7년 동안 회사에 충성스럽게 일을 하다가 해고를 당했는데 말 그대로 ‘거의 나를 살해한 것’”이라고 썼다.” 또 다른 시청자는 “회사가 당신을 배려하지 않았으니, 이런 사람들은 박제하는 게 낫다”고 썼다.
이런 콘텐츠는 오락적인 가치가 있지만, 노동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년부터 노동 환경 내 권력은 ‘직원에게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때문에 해고 상황 생중계 영상은 작년에 있었던 ‘파업의 여름(미국과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기록적인 파업을 진행하며 널리 알려진 노조 활동 시기)’ 같은 노동 운동과 함께 고용주가 항상 우위를 점해온 관행에 대한 도전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해고에 대한 이런 대처는 요즘 직원들은 과거 방식의 경력 관리는 시대에 뒤쳐진 것이라 생각하는 한편, 일터 내 조직화와 연대에 더 힘을 싣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영상을 올린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미 해고로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도 고용주에게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술 분야 리쿠르터이자 콘텐츠 제작자, 커리어 코치로 활동하는 파라 샤르히는 이런 흐름을 소셜미디어 시대에 격변하고 있는 고용 시장에서 자연스레 생긴 결과라 평가한다.
샤르히는 “틱톡과 같은 플랫폼에 해고 경험을 공개하는 것은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디지털 세상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업의 결정이 개인에게 미치는 정서적, 직업적 영향을 조명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해고당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과 해고로 영향을 받는 당사자와 함께 실시간으로 그 상황을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죠.”
샤르히는 피에치 영상 같은 콘텐츠를 통해 직장내 노사관계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회사는 해고 책임을 직원에게 떠넘기려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대량 해고라면 그 원인은 리더십 실패거나 기술의 변화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영상들은 기업의 실패를 폭로하고 있는 겁니다.”
신중하게 게시하기
해고당한 영상 속 주인공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젊은 직장인들의 이런 접근을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이런 행동을 순진하고 생각 없는 것이라고 대놓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확산된 후 보수 성향의 논평가 캔디스 오웬스는 피에치를 두고 “철없고 어리석다”고 말했다. “이제 브리트니 피에치를 검색한 모든 기업은 그녀가 몸담았던 회사를 몰래 촬영해 폭로하는 이 영상을 보게 되겠죠. 놀라울 정도로 근시안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또 다른 논평가는 피에치와 클라우드플레어의 부적절한 행동을 함께 지적했다. “해고는 힘든 일이지만 품위 있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해고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고, 연민과 존중이 필요하죠. (영상으로 폭로하는 방식은) 양쪽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샤르히 역시 극단적인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영상으로 지지와 연대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의 향후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빅 테크 업계를 예를 들면, 그 바닥은 매우 좁아요. 이러한 영상 중 하나가 입소문을 타면 채용 담당자, 채용 관리자 또는 면접관이 그 영상을 볼 가능성이 큽니다.”
샤르히는 기업들이 “회사 내부를 공개적으로 폭로할 수 있는” 지원자라면 채용을 재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는 소셜미디어에서 확인된 극단적인 “독선”의 형태가 채용 담당자를 주춤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이러한 영상을 올린 사람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샤르히는 게시물을 올리고 싶은 충동을 따라가기 전, 퇴직 계약서를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기업 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과 관련해 비방 금지 조항이나 제한 사항이 계약서에 적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국노동관계위원회는 2023년 퇴직 계약서의 비방 금지 조항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회사 기밀을 공개, 악의적인 허위 진술 등은 몇 가지 예외로 남겨두었다.
샤르히는 “해고 과정을 세부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나 회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 이러한 조항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상을 게시하기 전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동영상의 요점은 무엇이며 잠재적인 파급 효과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틱톡에 올라온 해고 영상들은 직장인들의 직업관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과 그 변화의 중심에 피에치 같은 이들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피에치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에게서 “나도 당신처럼 내 자신을 위해 싸웠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듣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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