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꼭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소극장 학전 김민기 대표의 수상 소감이다. 김 대표는 현재 투병 중인 터라 배우 장현성의 입을 통해 대신 전달됐다.
앞서 1991년 3월 15일 문을 연 학전은 올해 같은 날 33년 만의 폐관을 예고했다. 김 대표의 음반 계약금으로 시작돼 그의 저작권료까지 쏟아내 운영을 지속해왔지만, 계속되는 경영난과 건강문제까지 겹치면서 대학로의 상징이 소멸되야 하는 한계점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학전은 가요계에서도, 연극계에서도 상징적인 공간이다. 1990년대에는 통기타를 든 가수들이 학전에서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이끌었고, 1994년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000회 공연을 돌파했다.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를 비롯해 나윤선, 윤도현 등 학전이 배출한 배우, 음악인도 상당하다. 또 김 대표는 어린이 정서 함양을 위해 다수의 어린이 공연도 극단 학전을 통해 꾸준히 선보였다.
이곳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가진 배우와 가수들은 물론 많은 문화예술인과 여론이 움직였다. 폐관 결정에 이 극장을 통해 스타가 된 가수 박학기, 박승화, 윤도현, 작곡가 김형석, 배우 설경구, 장현성, 감독 방은진 등이 참여하는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가 꾸려졌고, 언론 역시 학전과 김민기 대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여기에 학전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발길이 공연장으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학전은 폐관 위기를 벗어났다.
앞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학전소극장을 재정비해 어린이 극장이나 대중가수들 공연장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유병채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정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학전의 뜻, 김민기 선생님의 뜻을 어떻게 이어갈지 협의를 해왔다. 건물주와 협의가 잘 돼 건물을 지금의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합의를 얻어냈다”라며 “김민기 선생님이 다시 회복하면 마무리해서 3월 이후에도 학전의 뜻, 김민기 선생님의 뜻이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소멸 직전에 기사회생했지만 이번 사례는 비단 학전 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티켓 판매액은 1조원을 넘겼다. 역대 최고액을 기록한 공연 시장이지만, 사실상 대형 연극과 뮤지컬, 콘서트의 호황에 기댄 기록에 불과하다.
현재 대학로 소극장은 코로나19 이후 계속된 경영난과 건물주의 재계약 불가 통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앞서 나무와 물, 정미소, 종로예술극장 등이 문을 닫았고 2002년부터 21년간 운영되던 한얼소극장도 지난해 말 폐관을 결정했다. 무기한 진행하는 일부 ‘오픈런’ 공연을 제외하면 좀처럼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대학로를 ‘문화특구’로 지정해 행정적 지원을 확대하고, 육성 규제에 관한 조례안 마련, 공공사업 추진 등의 의견을 내고 있다. 이에 연극인 출신인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학전 폐관 소식과 관련해 “연극계에서 학전의 역사적·상징적 의미와 대학로 소극장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소극장을 활성화하고 연극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다양한 지원사업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극단 관계자는 “현재 폐업을 공식화한 곳도 많고, 폐업 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공연이 없는 공연장이 허다하다. 공연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것과 달리 대학로 소극장 절반 이상은 사실상 불이 꺼진 상태”라며 “대학로의 역사를 품은 학전의 기사회생은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학전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가치가 높은 소극장을 정부나 공공기관이 보존하는 등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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