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안 입는 옷 줄게, 새 옷 다오"···의류 쓰레기 대란 맞서는 '공유 옷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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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세] "안 입는 옷 줄게, 새 옷 다오"···의류 쓰레기 대란 맞서는 '공유 옷장'

여성경제신문 2023-12-31 12: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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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청세)] 이번 편은 고려대 '탐사기획보도' 수업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이 수업을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버려진 옷들 /연합뉴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버려진 옷들 /연합뉴스

붙박이장 한 켠에 옷들이 가지런하게 걸려있다. 꽃무늬 치마, 초록색 나시, 줄무늬 반팔 티셔츠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대학생 여채은 씨(21)는 총 8벌의 옷을 고작 만원에 사왔다. "엄밀히 말하면 사 온건 아니죠. 바꿔온 거죠." 그렇게 말하는 여씨의 얼굴에 뿌듯함이 감돌았다.

여씨는 '21% 파티'의 열혈 참여자이다. 비영리법인 다시입다연구소가 주최하는 '21% 파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 입는 옷들을 다른 사람의 옷과 교환하는 이른바 '공유 옷장' 행사다. 그 이름은 '옷장의 옷 중 21%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는 설문조사에서 따왔다.

'21% 파티'는 서울, 대전,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한 달에 두 세 번 꼴로 열리는데, 개최 장소는 행사 참여 희망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결정된다. 각 지역의 넓은 실내공간을 대여해 참여자들이 가져온 옷을 걸어놓아 참여자들이 마치 쇼핑몰처럼 편하게 가져갈 옷을 둘러보도록 하고 있다.

여성환경단체에서 만난 지인의 소개로 '21% 파티'를 알게 된 여씨는 행사의 의미를 듣자마자 참가를 신청했다. "'패스트 패션(쉽게 트렌드가 변하는 패션 산업을 이르는 말)'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의류 쓰레기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죠. 그래서 행사의 취지에 바로 공감했어요."

지난해 6월 22일 처음으로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21% 파티'에 참여한 여씨의 경험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충격'이었다. "정말 놀랐어요. 멋진 옷들이 참 많았는데 이 옷들이 다 누군가의 옷장에 잠들어있었겠구나, 싶었죠." 그 이후 여씨는 더 많은 '21% 파티'에 참여하며 행사에 도움이 되고자 파티의 스태프가 됐다.

작년 12월 22일, 여씨는 서울 성수동에서 열렸던 '21% 파티'의 스태프로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장 입구 테이블에 옷들이 끊임없이 쌓였다. 종이상표를 떼지도 않은 하얀색 원피스와 전혀 입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셔츠를 옷걸이에 걸고, 행사장 내부의 이동식 옷걸이로 옮겼다.

새 옷에서나 나는 화학약품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후로도 당장 다시 팔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새 옷들이 테이블에 계속 쌓였다. 옷들을 열심히 나르고 걸어놓는 게 여씨의 역할이었다.

곰곰이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던 그는 이내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만큼이나 많은 옷들이 만들어져 팔리지만 한 번 바깥 공기를 쐬지도 못한 채 옷장에 처박혀 있는 현실이 질린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대학생 권해원 씨(21)는 친구 여씨의 권유로 지난 4월 29일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21% 파티'에 처음 참여했다. 그는 이 행사를 통해 의류 쓰레기 문제와 처음 마주하며 경각심을 느꼈다고 한다.

"상상치도 못하게 많은 자원이 의류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든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시입다연구소에 따르면 중고 티셔츠 한 벌을 버리지 않는 것만으로 2700L의 물과 600g의 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다. 2700L의 물은 사람이 약 70번 샤워할 수 있는 양이다. 원래도 옷을 자주 구매하는 편은 아니지만, 권씨는 '공유 옷장'을 알고 난 후로는 더욱 옷을 사지 않게 되었다.

권씨는 내친 김에 어머니와 함께 지난 10월 29일 고향인 대전 대흥동에서 열린 '21% 파티'에도 참여했다. 가을 바람이 이동식 옷걸이에 걸려있던 빨강색 원피스를 흔들었고, 동네 아이들은 옷걸이 사이사이를 가로질러 다니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옷을 구경했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친구 무리는 서로에게 옷을 추천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날 권씨와 어머니도 만족스러운 수확을 거뒀다. 딱 찾던 옷을 찾아 웃음을 지으시는 어머니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권씨에게 그날 '21% 파티;는 단순히 의류 교환 행사가 아닌 어머니와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왼쪽부터 기자가 내놓은 안 입는 옷 두 벌, '21% 파티' 모습, 새 주인을 기다리는 여러 의류·패션 소품 /김지은

지난 10월 21일, 기자도 안 입는 티셔츠 두 벌을 들고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21% 파티'를 찾았다. 가을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고 햇빛이 따스히 내리쬐는 가을날, 참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행거에 걸려있는 옷을 꺼냈다 도로 걸어두었다 하며 한창 옷을 구경하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연인끼리, 혹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방문한 어린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행사장을 찾았다. 한 번 입고 더 입을 일이 없어 구석에 처박아두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쐬는 검은 정장 자켓부터 살이 쪄서 더 이상 맞지 않는 하얀 티셔츠, 키가 크며 너무 짧아져 더는 입지 못해 가져왔다는 빨강 치마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수십 벌의 옷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놓은 티셔츠 두 벌을 가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며 기자도 파랑색 반팔 티셔츠와 검정색 자켓을 새로 가져왔다. 이날 기자는 옷 두 벌의 생명을 이어 나가며 물 583리터, 탄소 25420그램을 절약했다.

김지은 고려대 사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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