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끝없는 가족 돌봄···그 속에서 '나'를 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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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세] 끝없는 가족 돌봄···그 속에서 '나'를 돌보다

여성경제신문 2023-12-30 12: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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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청세)] 이번 편은 고려대 '탐사기획보도' 수업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이 수업을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노인 돌봄 /연합뉴스
노인 돌봄 /연합뉴스

당시 67세였던 정성기 씨는 97세 치매 노모를 홀로 모신지 9년 반이 되던 때 자기가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그간 빠진 이 만 14개, 수면 부족, 신경쇠약, 급성폐렴.

"이러고 어떻게 사셨어요?" 정씨에게 의사가 던진 첫마디였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청년 이주빈 씨(25)도 "간병 중 얼굴에 이유 모를 파란 반점이 생기고 머리 통증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족 돌봄 속에서 간병을 하는 가족들은 정작 '나'를 돌보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주빈 씨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원인 모를 뇌질환으로 쓰러지면서 이 씨는 급하게 서울로 상경해야했다. 준비했던 해외 유학길을 접고 엄마와 병원 인근에 고시원을 얻어 교대로 아버지를 돌봤다.

그렇게 흘러버린 시간. 꿈 많던 학창시절, 줄반장을 할 정도로 쾌활하고 긍정적이었던 이 씨도 우울증을 겪었다. 어머니와 교대를 마치고, 침대 하나만으로도 버거운 고시원방에 들어설 때면 숨이 턱 막혔다.

2022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가족 돌봄 청년(4만3832명)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족 돌봄 청년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61.5%로 일반 청년(8.5%)의 7배 이상이었고 미래계획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36.7%로 높았다.

20대 청년인 이씨도 졸업하고 취업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느꼈다. "불이 다 꺼진 깜깜한 병원에서 남몰래 울면서 세상아 제발 멸망해라 생각하기도 했죠. 저만 멈춰있으니까요."

그러나 스물 셋 이씨의 삶은 멈추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봉사 다니던 때를 기억하며 다시 봉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의료통역과 같은 통역 봉사를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밝은 미소와 뛰어난 말솜씨로 프리랜서 리포터로도 활동해 전국 곳곳을 돌았다. '지금의 내가 분명히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이 씨가 늘 되뇌던 말이었다.

또한 소방안전관리사부터 드론자격증까지 다양한 자격증에 도전했다. 독학한 영상편집 실력으로 프리랜서 업무를 맡거나 아버지 곁에서 틈틈이 작업하며 공모전에 나가기도 했다.

이씨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아버지의 위급 상황으로 인해 고정적인 직업이 아닌 단기적인 일거리만 찾아야했다. 그러나 그는 "그 덕에 제가 한 모든 경험들이 결국 저만의 무기가 됐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지난 6년의 간병을 통해 쌓아간 스펙으로 이씨는 N잡러 능력자가 되었고 자신을 둘러싼 우울감을 멋지게 벗어냈다.

2021 나트륨·당류 줄이기 UCC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주빈 씨 /이주빈
2021 나트륨·당류 줄이기 UCC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주빈 씨 /이주빈

정성기 씨(72)는 10년간 어머니를 위해 직접 요리하고, 요리법을 개발하고, 기록으로 남겨 책까지 낸 작가가 됐다. 광고회사의 고문으로 있던 그는 간병 6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어야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7세, 한순간에 변화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웠다. 스스로 라면 하나 끓여 먹어본 적도 없던 그가 요리왕이 된 것은 전부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고서부터였다.

반복되는 돌봄의 일상에서 새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날 먹는 음식뿐이었다. 그렇게 정 씨는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의 요리법을 따라 하다 아픈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입맛을 맞추다 보니 세상에 하나 뿐인 요리가 탄생했다. 그때부터 그는 어머니와의 일화와 함께 요리법을 기록하는 일명 '취사병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요리법만 해도 500가지가 넘었다. 그중에서도 그는 '고등어 스테이크'를 자랑했다. 90세가 넘는 노모에게 고기는 씹기가 영 어려운 음식이었다. 저염도의 영양가가 좋은 등푸른 생선 고등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양식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위해 고등어를 스테이크처럼 만들어보기로 결심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스테이크 소스, 바실리코 소스, 백포도주로 소스를 만들고 각종 야채는 먹기 좋게 푹 삶아 넣었다. 그 결과 어디서도 본적 없는, 어머니가 인정하는 최고의 음식이 되었다.

이어서 그는 냉장고에서 둥그런 반찬통을 꺼냈다. 그의 무생채는 배와 광어회가 들어가 새콤하고 특별했다. 그가 본인만의 비법이 담긴 무생채를 보여주며 반짝이는 눈으로 레시피를 줄줄 읊었다.

그는 요리하며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던 시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근데 내일은 뭐 해드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습관이 무서운 것이었다. '내일의 내 일이 있다는 것' 그것이 정성기 씨를 자꾸만 살게 했다.

정성기 씨의 가장 자신 있는 요리이자 그의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고등어 스테이크 /정성기
정성기 씨의 가장 자신 있는 요리이자 그의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고등어 스테이크 /정성기

어머니가 떠난 지도 5년이 지났지만, 그의 곁에는 만명이 넘는 블로그 이웃들이 남았다. 그만의 독특한 요리법과 어머니와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미화하는 것이 아닌, 고통과 소진 속에서 절규하는 그의 기록에 이웃들은 응원을 보냈다. 의령에 사는 이웃은 표고버섯을 보내주었고, 400킬로미터 떨어진 부산의 이웃과는 술친구를 맺었다. 현관문 손잡이에 김치찌개를 걸어두고 간 시흥의 이웃도 있었다. 어머니를 돌보며 나 홀로 고립된 섬에 사는 것만 같았던 정 씨에게도 그렇게 하나의 세상이 생겼던 것이다.

1년뿐이 못 살거라던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도 아픈 노모는 정성기 씨와 10년을 지냈다. 그가 보낸 사랑과 정성은 어머니에게 가장 효과 좋은 치료법이 되었다. 조금 전의 일을 망각하는 치매 노모처럼, 정 씨도 지난 밤 자신을 괴롭힌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증오는 아침이면 잊고 어머니를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그렇게 10년, 어머니만의 취사병 정성기 씨는 은퇴했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 먹는 밥일지라도 내가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을 한 상 차려 먹는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던 블로그는 이제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치열한 그의 하루가 담긴 기록을 남긴다.

청년 이주빈 씨는 지금도 아버지를 돌본다. 아버지 곁에서 간병을 하다 보니 매일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녀는 "저는 지금 다시 못 올 시간을 아빠와 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끝없이 기회를 만들던 이씨는 현재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되어 주 1회 방송과 행사를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긍정을 전하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던 가족 돌봄의 길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었다.

김예린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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