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의 문자가 있는 예술] 여백 이야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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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의 문자가 있는 예술] 여백 이야기②

문화매거진 2023-12-29 09:57:47 신고

[유정의 문자가 있는 예술] 여백 이야기①에 이어

[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이번 글은 필자가 작업하며 가장 중시하는 여백에 대한 이야기이다. 통념적으로 사용되는 의미가 아닌, 유정이라는 작가가 작업을 하는데 있어 여백을 어떻게 생각하며 다루는지 함께 보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여백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여백 餘白 : 채우고 남은 공간.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 자리(네이버 어학사전)

[ 배치 = 채움 + 비움 ]으로 보았을 때, 여백은 채움보다 비움에 가까운 의미로써 주로 배치의 하위영역에 포함되는 말로 사용된다. 반면 필자는 배치를 달리 표현하는 말로 여백을 사용하곤 한다. 요소들을 배치하기 위해 여백을 먼저 고려하므로 배치와 여백을 동등한 역할로 생각하며 화면을 구상한다.

이러한 기준을 갖기까지 생각해오던 것을 쪼개어 아래와 같이 서술해 보았다. 기준없이 사물을 바라보고 흉내내는 것이 아닌,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분류하고 나열한 기준들을 토대로 작업하는 것이 유정이 늘 기초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백의 위치와 역할을 구분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디에 기준을 두고 작품을 보았는가에 따라 작품이 달리 보이는 것에서 기인한다. 여백 또한 마찬가지이다.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천천히 이미지를 감상해주시길 바란다. 먼저 보이는 것이 달라질 것이다.

(1) 일반적으로 여백이 빈 공간(blank, margin, white space)으로 의미될 경우

채워진 것들에서 이야기를 찾기 시작한다. 시선이 어디에 먼저 가는가?

배치(구상)

채움

비움(=여백)

▲ 문門door_6, 순지에 채색, 25*36cm, 2022, 유정
▲ 문門door_6, 순지에 채색, 25*36cm, 2022, 유정


- 선과 면이 있는 모양, 색이 칠해져 있는 부분으로 시선이 집중될 것이다.

(2) 여백을 우선순위로 두어 채움(fill)과 비움(empty)을 여백의 수단으로 둘 경우

바탕(흰 공간)에 보다 시선을 두게 된다. 왜 저만큼 비어 있을까?

배치 ≒ 여백

채움

비움

▲ 문門door_6, 순지에 채색, 25*36cm, 2022, 유정
▲ 문門door_6, 순지에 채색, 25*36cm, 2022, 유정


- 달리 무언가가 없다고 여겼던 공간에서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 필자가 구상을 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여백을 두었으면 채울 곳은 자연히 정해지니, 여백을 두었다는 말과 배치를 끝냈다는 말이 같아진다.

(3) 여백이 채움이자 비움으로 즉, 채움과 비움의 공통부분으로써 두 역할을 모두 포함할 경우 이는 주로 비어있지만 비어있지 않다는 동양사상으로 이어진다.

채워진 곳과 비워진 곳의 구분이 필요한가? 두 가지를 한 눈에 볼 수는 없을까?

배치

채움

여백

비움

▲ 문門door_6, 순지에 채색, 25*36cm, 2022, 유정
▲ 문門door_6, 순지에 채색, 25*36cm, 2022, 유정


- 두번째와 비슷하나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이다. 

- 작업자인 필자의 입장과 관객의 입장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겠다.

ㅇ작업자 : 개인적으로 구상을 하며 완전히 몰입했을 때 가능한 수준으로 경험한다. 채움이니 비움이니 여백이니 개념들을 구분할 새 없이 손이 움직여 공간을 구성하는 느낌이다. 이 경우 작업이 단숨에 끝나곤 한다. 완성하고 보면 어느 작품보다 시원하고 깔끔한 여백에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ㅇ관객 : 채워진 곳보다 비워진 곳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저 하얀 것 같은 면에서 무엇을 보셨던 건지, 관객 당신의 기억과 추억, 추상적인 이야기를 먼저 건네 주신다. 그것이 무슨 마음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드나 작품이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고 들을 적이 있다. 작가의 입장에선 이보다 값진 감격이 없다.

자, 세 가지 기준을 모두 경험했다. 여러분은 어떤 기준이 가장 와닿았는가, 그리고 어떤 기준이 새롭게 흥미로웠는가. 그에 따라 다시 아래 이미지를 봐주시길 바란다. 익숙했던 개념으로 작품을 감상하셔도 좋고, 필자가 좋아하는 개념으로 보려 시도해주셔도 좋겠다. 무엇이든 여러분의 시선이 여러분의 이야기다.

▲ 문의시초4, 순지에 채색, 50.5x50.5cm, 2023, 유정
▲ 문의시초4, 순지에 채색, 50.5x50.5cm, 2023, 유정


위 기준은 객관적인 자료가 아닌, 지극히 필자가 작업을 하며 고민하는 구분일 뿐이다. 이것이 비록 허술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덧대어 작성하였다. 

하나, 우리가 작품을 보는 방식이 다소 지나치게 ‘알고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인해 ‘그렇다더라 하는 타인의 기준으로' 이뤄진 것은 아닌지. 

둘, 이것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셋, 그로인해 어떠한 답답함을 느끼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렇기에 혹,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기준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달리 보게 된 기회가 되었길, 어느 방식에 기준을 두고 봤는지에 따라 어떻게 생각이 달라지는지 필자와 함께 천천히 경험해주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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