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씨알콜렉티브(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소재)는 2023년 마지막 전시로 작가 홍순명 개인전 ‘저기, Over there,’를 내년 1월 27일까지 개최한다.
홍순명 작가의 활동 기간은 국립현대미술관 앙데팡당전에 참여했던 1981년을 그의 데뷔 연도로 하면 40년이 넘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일생을 빈틈없이 채운 작업 여정 가운데 중요한 시리즈인 ‘사이드스케이프(sidescape)’의 의미변화를 톺아보고자 한다.
사이드스케이프는 작가가 독일 물리학자이자 양자역학의 선구자인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의 자서전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를 읽고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나 사회문제에 다가가려는 경험 중심적 방식과 미시사를 지향하는 태도를 통해 시작되었다.
작가는 인터넷 사용이 자유로워지던 시기에 시대상을 반영한 사진을 취득하고, 그 이미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것을 조합하여 화면에 옮김으로써 인간 중심의 사건이 아닌 자연 같은 주변의 객체 지향적이고 사변적인 풍경을 제안해왔다. 이는 담론-언어의 구조나 주체 중심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해체하고 관람자들의 시선을 해방하고자 하는 유의미한 시도일 것이다.
이번 전시 ‘저기,’는 새롭게 일상이 된 경이로운 아침 산책로의 주변 풍경을 사이드스케이프에 추가한다. 기후변화와 팬데믹 위기나 전쟁과 같은 재난 소식을 매일 접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소소한 일상은 우리 삶에 새로운 의미를 던진다. 여기서 사이드스케이프는 재난이 일상화되어 냉소와 무기력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생명의 기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는 가족의 건강과 돌봄을 위한 산책길에 빛나는 아침 해와 주변을 사진으로 담고, 같은 날 인터넷에 떠도는 재난 이미지와 외신을 한 화면에 중첩한다. 세계시민으로서 접하는 믿기 힘든 국지전쟁과 자연재해의 파동을 일상으로 마주하며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감지한다. 저 세계 반대편에 있는 국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조리하고 비현실적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 현존하는 가족의 아픔, 기후 위기도 믿을 수 없이 비현실적이다. 작가는 미디어가 노출하는 시간의 압축과 공간의 절멸 현상에 따라 가속화되는 우연적이고 파편화된 사회관계들을 그려내고 있다.
홍순명은 지대한 동시대적 관심으로 인터넷 이미지를 전유하지만, 소박한 화면은 그럴듯한 재현의 기술을 고민하거나 특정 담론이나 시류에 편승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40여년을 지속해온 담담함과 딴딴함의 실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와 공간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전면으로 배치된 사이드스케이프 작업과 오브제들을 따라 일상의 기적이 가져오는 촉각적인 산책의 과잉 공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모두가 중심이 되는 주변 풍경으로 관람자들과 공명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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