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돌보기 전에, 나부터 돌보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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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돌보기 전에, 나부터 돌보려고 해…

독서신문 2023-12-26 06:00:00 신고

여성의 돌봄과 여성의 일은 어떤 관계일까? 둘은 정말 서로를 방해하기만 하나? 사회에서 ‘양육’의 과정이 건설적이려면(물론 무엇이 ‘건설적’인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듣지 못했던 것,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적나라하며 저마다 다른 기록들이 필요하다.

‘돌봄’과 ‘작업’은 서로 상충하거나 무관한 말 같지만, 둘 다 우리 삶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들이고 둘 다 창조성의 영역에 속한다.

창조적인 일은 특정 영역에 속해있지 않다. 운동이든 글쓰기든, 혹은 아직 이름이 없는 어떤 일이든 모두 창조적인 과업의 범주에 속한다. 작업이란 외부의 잣대나 규정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하는 일이다. 취미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업도 아니다. 『돌봄과 작업』에 실린 열한 편의 글과 그림은 각각의 필자들이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는 것과 주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사이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적응해온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들은 모두 엄마이지만 책은 너그럽게도 어쩔 수 없이 일상의 한계를 갖는 기자 같은 사람까지 끌어안는다. ‘창조적인 작업은 흘러가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라는 책 속의 문장처럼 직장인으로서 가진 한계와 짐이 오히려 창조성과 의지를 부채질하는 동력이 된다는 걸, 창작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는 걸 알려준다.

세상 모든 엄마는 제 자식을 버린다. 그래야만 아이는 홀로 서고 한 사람의 독립된 개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아이를 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고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느낀다. (...) 생각해보면 부모로서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경계를 짓는 것이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를 집단으로 뭉뚱그리지 않는다. 획일화된 단 하나의 모성으로 정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을 수용하면, 엄마와 아이는 다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엄마라는 역할로서의 삶과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로서의 삶을 구별할 때, 삶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전부가 아닌, 사랑하나 때로는 도망치고 싶은, 함께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공간을 만들려는 엄마들. 그래서 그런가. ‘양육’, ‘모성’, ‘엄마됨’과 같은 오해받기 쉬운 주제에 대해서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얘기한다.

자아를 찾고 자기계발로 생존해 온 세대가 그 경계를 허무는 장면은, 이제까지의 헌신적인 부모·자식의 상과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마냥 이벤트적인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아니고, <금쪽같은 내새끼>처럼 극단적인 것도 아니다. 열한 명의 필자들은 다양한 변수들을 통과해 나름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지는 과정을 공유한다.

식물을 키우든, 반려동물과 함께 살든, 아이를 양육하든 모든 일은 돌봄의 영역 안에 있다. 오로지 내 입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염려와 책임 속에 살아가는 만큼 성숙할 기회는 배가 됐다.

타인을 돌보는 것 자체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 나 혼자를 먹여 살리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고 훌륭한 일이지만, 가족 혹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있는 타인, 또는 가족이 아닌 타인을 돌보는 것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 있다.

‘인류의 역사상 수많은 여자들이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육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책 속의 문장을 곱씹는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보편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겨져 온 양육이라는 일에 보다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러니 돌봄의 가치를, 양육의 가치를 더 많이 알아줘야 하지 않을까. 양육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지고 돌봄의 분배는 조금 더 정의로울 수 있게.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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