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오버올은 Gucci. 목걸이는 마이큐 소장품.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2년 만에 정규 앨범 〈Tour〉를 발매했다. 매해 여러 장의 앨범을 부지런히 내다 오랜만에 발표한 앨범인데, 트랙 리스트를 듣다 미묘한 변화를 발견했다. 이전에는 주로 먼 미래의 꿈이나 과거에 대해 노래했다면 이번 앨범은 시점이 현재로 옮겨진 듯한 인상이다.
A 사실 더 이상 음악을 통해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늘 꿈을 향해가는 얘기를 해왔는데 어느 순간 “언제까지 난 꿈을 꾸는 거지?” 생각이 들더라. 싱어송라이터로서 내 음악은 여기까지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7월부터 매일 작업실에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A 2년 전과 지금, 내 삶의 방식이 극단적일 정도로 바뀌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졌다. 앨범 작업을 마칠 즈음 깨달은 점이 나는 항상 ‘언젠가 꿈을 이룬 그날이 올 거야’라는 어떤 확신 속에서 창작을 해왔는데 이젠 ‘그날이 오지 않아도 괜찮아, 오지 않을 수 있어, 이 순간을 누리자’라고 인정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거다. 이번 앨범은 여정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미지의 세계라기보단 현실에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에 가깝다. 꿈만 꾸던 소년은 이제 생을 마감하지 않았나 싶다. (웃음)
Q 아이의 시각에서 본 세상(‘Mike’s Speech’)이나 삶을 전시회에 비유한 곡(‘전시회’)처럼 곡에서 요즘 일상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A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냐는 친구들의 반응도 있었는데,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내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할 거였으면 앨범을 낼 필요도 못 느꼈을 거다. 누군가 듣고 공감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Q 그 정도로 삶의 방식이 변하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나?
A 내 연약함과 단점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 단지 나이가 든다고, 경험이나 지식을 쌓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매일 다듬어지고 비로소 내 약점들을 인정하게 되면서 여유롭고 유해지고 있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힘들고 어려워도, 오뚜기처럼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Q 방금 그 말과 비슷한 말을 양육자들에게서 종종 들은 적 있다.
A 오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고 하지 않나. 그 말이 정확한 것 같다. 불쑥 내가 자라오며 가장 싫었던 점이 튀어나온다. 사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이젠 아버지를 이해하고 너무 좋은 사람이란 걸 알지만 자랄 때는 힘들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 모습이 내게서 보일 때 ‘나 참 별로구나’ 한다.
A 감정 코칭 프로그램 수업을 받고 있다. 머리로 안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니까, 실습을 요하고 내 과거를 들여다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톱, 쇼츠는 Etro. 이너 셔츠, 타이, 슈즈는 모두 Maison Margiela. 안경은 마이큐 소장품.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다시 앨범 얘기로 돌아가면, 총 15개의 곡이 수록된 앨범에서 트랙을 배치할 때 어떤 점에 집중했나? 마지막 곡 ‘Tour’가 멀어진 이들과 언젠가 재회하자는 내용이어서 의도가 있을 것 같았다. “가까웠던 친구와 멀어졌어도/언제 다시 마음이 맞닿으면/안아주고 수고했다고 말해줘/그때 우리 미숙했다고 웃으며/ 몸과 마음 건강히 또 만나자” 이 가사가 특히 좋았다.
A 14곡의 트랙을 완성하고 보니 끝이 안 나는 느낌이었다. 2005년 데뷔 당시 만들어둔 곡들을 다시 들어봤다. 말도 안 되게 손, 발가락이 간지러운 노래들이 많더라. 그 중 하나가 ‘Tour’의 멜로디였는데, 듣다가 내 안에 어떤 울컥함이 생기더라. 한때 가까웠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져 못 보는 사람도, 스쳐 지나간 인연도 누구나 한둘은 있지 않나. 마지막 순간에 모두 한 무대에 올라가면 어떤 느낌일까, 라는 상상을 하며 원초적인 감정으로 쓴 가사다. 자연스러운 피날레처럼 장식하고 싶었다.
Q 사실 마이큐라는 사람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있었다. 지독한 사랑지상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 곡 ‘너의 온기’ 이외에는 비교적 사랑 노래가 드물다.
A 사랑 노래 참 많이 했다. 사랑만큼 위대한 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못 믿겠지만 사실 난 공연 때 사랑 노래 부르는 걸 싫어했다. (웃음) 밴드 세션 멤버들의 “그 노래 빼면 안 되죠” 같은 말 때문에 부르고 나면 더 내밀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긴 했지만.
Q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일과 사랑, 삶의 밸런스라고 해야 하나, 요즘 좋아 보인다.
A 베스트 프렌즈가 있고, 아이들이라는 좋은 친구들이 있고. 감사한 일이 참 많다.
Q 베스트 프렌즈, 인연을 알아보는 법이 있나?
A 어떤 순간을 계속 그리면 그 모양은 겨울에 눈송이 조각이 모두 다르듯 다른 모양이라도 분명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는 말을 믿는다.
A 우리 심장은 안다. 순간적으로 머리로는 확신하지 못할 수 있어도 내 안에 몰아붙이는 감정. 과학인 거다. 못 속인다.
톱, 팬츠는 Erl by G.Street. 슬라이드는 Loewe.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3년 전 페인터로서 첫 개인전을 열 당시 얘길 나누었을 땐 조금 지친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첫 전시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나 두 번째 개인전 «Emo»를 열 때 동명의 앨범을 선보였던 것과 달리 이번엔 음악 작업만 했다.
A 맞다, 번아웃이 심했다. 내가 음악을 왜 하고 있지 싶고, 오래 묵은 답답함과 간절함이 뒤섞여있던 때였다. 아주 작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피냄새를 맡고 몰려오는 상어 떼처럼 어두운 감정을 부르던 시기. 난 항상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어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어야만 견딜 수 있었다. 물감이 마르길 기다리면서 음악을 다시 하는 에너지가 좋았고, 그 티키타카의 결과물이었다.
Q 꾸준히 작업하면서 첫 작업실도 생겼다. 가까이서 경험한 미술계는 어떻던가?
A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땐 발 디딜 틈 없이 캔버스로 빼곡했다. 호수가 큰 작업은 하지 못했는데 점점 더 큰 작업이 하고 싶어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작업실에 가서 ‘9 to 5’를 고수한다. 회화를 만난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었고,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정답 없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었다. 사실 일종의 배신감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온 마음을 다해 음악을 해도 피드백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던 때가 있었다. 물론 내 욕심이 많았을 수 있겠지만. 처음 전시를 했을 때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러 와주고, 각자 해석을 더해 공감해주니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그 감정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전시를 몇 차례 열며 젠더나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마음껏 “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 이건 너무 좋다”라고 솔직하게 건네는 말들이 그저 흥미롭게 느껴지고 재미있다.
A 예를 들어 난 사랑을 표현하면서 그렸는데, 그림을 보고 아픔을 느끼거나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회화에 있어 내가 굳이 의도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았다. 그저 감상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완성해주는 것이라고. 무엇이 되었든 최대한의 감정을 느끼고 가길 바랄 뿐이다.
Q 주로 색면추상 작업을 하다가, 최근 SNS에 공개한 작업들은 곡선 형태가 엿보이더라.
A 그때는 비워내는 과정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애써 채우려고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채워내고, 비워내며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심리적으로나 테크닉적으로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유연해진 것 같다. 내 안에 어떤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데, 벽을 세우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리고 싶은 느낌을 따라가고 싶다. 다시 반복하다 보면 이 시간이 어디로 이끌겠지.
Q 늘 차분해 보이는 마이큐가 작업 이외에 예민해지고 엄격해질 땐 언제인가?
A 나만의 루틴이나 패턴이 의미 없이 깨지는 걸 싫어한다. 아침엔 동네 커피숍에서 1시간 정도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6시 반쯤 일어나 작업실로 출발하기 전까지 생각을 정리한다.
Q 메모장에 종종 단어들을 기록한다고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A ‘인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나를 인정하게 되면서, 취약한 부분부터 내 가장 멋진 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었고 타인을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아까 말했듯 인정이 부재한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볼 수 있었고. 음악을 하면서 머릿속에서 스스로 경쟁자를 만들기도 하면서 자신을 힘들게 굴던 시기도 있었는데 너무 많은 실패와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에 되려 단단해질 수 있었다. 이젠 아니다. 지금은 그냥 내 갈 길을 간다.
에디터/ 안서경 사진/ 채대한 헤어/ 최은영 메이크업/ 최수일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어시스턴트/ 허지수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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