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록스타 빌리 맥(빌리 나이 분)은 곡 ‘러브 이즈 올 어라운드’를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게 ‘크리스마스 이즈 올 어라운드’로 바꿔 부르며 이 노래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게 된다.
정말 별로지 않냐는 그의 질문에 매니저도 웃으며 쓰레기, 그것도 아주 “단단히” 쓰레기라고 답한다.
이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 속 한 장면이다.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한, 전혀 현실감 없고 우스꽝스러워 바보 같기도 한 사랑 이야기가 2시간 동안 휘몰아치는 영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다이얼 접속 인터넷, 애플사의 아이팟, 로우 라이즈 청바지 등에서 발전했을지 모르지만, 감독 리차드 커티스가 2003년 내놓은 이 영화는 비록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여전히 대표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중산층 인물들의 서로 얽히고설킨 로맨틱한 이야기는 비평가, 시청자, 심지어 해당 영화를 만든 이들로부터도 매년 비판에 시달리곤 한다.
이 영화가 사랑을 너무 비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극 중 인물들이 내리는 결정도 그 의도가 의심스럽고, 농담이라고 넣은 부분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감독인 커티스도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이 영화에 대해 비판하며 후회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출연 배우들과 다시 뭉친 자리에서 작가와 감독은 ‘러브 액츄얼리’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 있다”면서 “또한 다양성 부족으로 인해 나조차 불편하고 약간 바보 같다고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이 아마도 커티스가 ‘크리스마스 액츄얼리’라는 크리스마스 버라이어티쇼를 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해당 쇼에선 공항에서 사람들이 포옹하는 장면 위로 배우 휴 그랜트의 목소리로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디왈리(힌두교의 축제), 이드 알피트르(이슬람의 축제), 하누카(유대교의 축제)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나눈다는 대사가 나온다.
또한 커티스 감독은 뚱뚱한 몸을 웃기게 표현한 장면에 대해 “부주의했다”고 반성하는 한편 “이제 이런 농담은 재미 없다”고 말했다. 또한 최종 편집 단계에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잘라내 “나 자신을 실망시켰다”고도 말했다.
트위터 캡션: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조용히 판단하는 계절이 왔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이렇듯 여러 실수와 불편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쉬운 내용에 크리스마스 분위기, 거침없는 사랑의 표현과 나눔 등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영화에서 원하는 부분을 충족시켜준다.
영화 평론가 헬렌 오하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마스 영화가 위대한 사회 정치적 요소를 담은 명작이 되길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영화 속 유치한 로맨스를 즐기며 행복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명 스타가 총출동한 캐스팅, 모두가 좋아할 정말 멋진 순간들, 부적절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웃긴 장면들 등 덕분에 이 영화는 오늘날까지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현실성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극 중 휴 그랜트가 ‘포인터 시스터스’의 1983년 곡 ‘점프’에 맞춰 총리 관저를 휘젓고 춤추는 장면이 정말 재미있다는 건 모두가 동의한다.
철철 넘치도록 달고 우스꽝스러운 사랑의 표시를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이 영화를 더욱 즐길 수 있다.
물론 영국 총리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경찰 호위대를 이끌고 “다소 위험한 원스워스 지역"을 찾아가 비서인 나탈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스케치북에 사랑의 말을 적어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도 현실적이지 않다.
이렇듯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이는 이 영화를 넘어 계속 사랑받는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일례로 지난 2019년 총선에서 실제 영국의 총리인 보리스 존슨이 스케치북을 들고나와 “내년까지 브렉시트를 마치겠다”는, 영화보다는 조금 덜 로맨틱한 고백을 했다.
그리고 카렌(엠마 톰슨 분)이라는 캐릭터도 있다. 두 자녀를 둔 카렌은 남편이 잘난체 하는 듯한 비서 미아와 가까운 사이임을 알게 된다.
한 팬은 X(구 ‘트위터’)에서 “카렌이 조니 미첼의 CD가 담긴 남편의 선물을 풀어보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면 중 하나”라고 적었다.
이 장면은 틱톡에서 ‘러브 액츄얼리’에서도 가장 많이 본 장면으로, 게시물 하나는 조회수가 거의 1000만 뷰에 달한다.
트위터 캡션: ‘조니 미첼의 ‘지금은 양쪽(Both Sides Now)’이 흘러나오는 ‘러브 액츄얼리’ 속 명장면
또한 콜린 퍼스가 연못에 빠지는 장면(영화 ‘오만과 편견’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배우 로완 앳킨슨이 백화점 점원으로 깜짝 등장해 선물을 포장하며 “이건 봉지 이상”이라고 말하는 장면, 휴 그랜트가 마가렛 대처 총리의 초상화를 보며 관계에 대한 조언을 얻는 장면(대처 총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활한 여우’라고 불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등 이 영화는 멋지고, 익살스럽고, 이상한 순간들을 골고루 담고 있다.
그렇다면 ‘러브 액츄얼리’의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크리스마스다.
1년 중 다른 때라면 비교적 부족한 줄거리나, 지독히 감성적인 사랑의 행동, 구식으로 느껴지는 농담이 마음에 차지 않겠지만, 크리스마스 때만큼은 우리 모두 영화 속 데이비드(휴 그랜트 분) 총리가 전하는 진심 어린 낙관론, “사랑을 찾고자 한다면, 사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에 빠져버려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특히 크리스마스 음식을 만들고 선물을 포장하는 와중엔 그 불완전함도 뛰어넘어 이 영화가 전하는 축제 분위기와 기분 좋게 만드는 요소들에서 휩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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