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역할에 여러 명의 배우을 내세워, 정해진 기간·회차 동안 번갈아 연기하는 형태인 멀티 캐스트(Multiple Cast)는 뮤지컬, 연극계에서 일반화된 시스템이다. 한 역할에 몇 명의 배우를 두느냐에 따라 두 명인 경우 더블 캐스팅, 세 명인 경우 트리플 캐스팅 심지어 네 명까지 두는 쿼드러플 캐스팅까지 그리 낯설지 않다.
멀티 캐스트가 보편화된 상황에서도, 몇몇 작품들은 하나의 역할을 단 한 명의 배우가 전담하는 ‘원 캐스트’(One Cast) 시스템으로 진행하고 있다. 개성이 다른 여러 배우를 출연시켜 작품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고, 장기 공연일 경우 만약의 사고를 대비하는 데 효과적인 멀티 캐스를 포기하면서 원 캐스트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공연의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21일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무대에 서는 29명의 배우가 모두 원 캐스트로 공연한다. 이미 2006년 초연한 뒤 17년 동안 수많은 나라에서 공연 중인 작품을, 국내 뮤지컬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아시아투워권을 확보해 공연하는 첫 인터내셔널 투어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 배역에 한 명의 배우가 적용된 면은 있지만 그 덕에 작품은 언제 공연을 보더라도 퀄리티가 한 결 같다는 평을 얻는다.
사실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등 공연 선진국에선 원 캐스트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과거엔 원 캐스트가 일반적인 시스템이었다. 다만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으로 작품에서 배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장기 공연일 경우 대체 배우(얼터, Alternate)를 두도록 했다. 이 경우 한 배우가 충분히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고, 상대 배우들과 안정적을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19일 국립극장에서 개막하는 ‘고도를 기다리며’도 신구, 박근형, 박정자, 김학철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원 캐스트로 공연을 준비 중이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경력은 모두 합쳐 228년에 달한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오경택 연출의 말처럼, 배우들이 쌓은 경력, 시간의 힘들이 오롯이 충돌하면서 나오는 시너지는 이 작품의 기대 포인트다.
올해 초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연극 ‘파우스트’도 유인촌, 박해수, 박은석, 원진아 등 전 배역이 원 캐스트로 진행됐다. 한 달 가까이 진행되는 긴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에게도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이 될 수 있는 원 캐스트 시스템은 이 작품의 큰 흥행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그만큼 무대에 오른 배우들 개개인의 역량은 물론, 배우들간의 호흡도 완벽했다는 평이다.
이밖에도 2022년 개막해 황정민의 연극 복귀작으로도 주목을 받았던 ‘리차드3세’, 지난 6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이순재 주연의 연극 ‘리어왕’ 등 최근 2~3년간 전 배역이 원 캐스트였던 뮤지컬, 연극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실 원 캐스트나, 멀티 캐스트나 배우가 어떤 마음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원 캐스트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한 배우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황정민 역시 ‘리차드3세’ 출연 당시 “브로드웨이에서도 원캐스트를 한다. 우리나라만 특이하게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 돼버렸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원캐스트가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고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맡은 역할을 그 기간 동안 잘 해내야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또 관객과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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