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 '탐사기획보도' 수업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를 연재합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이 수업을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초, 의외의 복병은 마스크였다. 전 국민이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게 되면서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다. 마스크 수급 안정화를 위해 정부는 그해 3월 5일부터 공적 마스크 제도를 시행했으나 마스크의 재고 현황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들지는 못했다.
시민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추위 속에서도 새벽부터 줄을 섰지만 마스크를 사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불편을 해결해달라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제도를 시행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공적 마스크 판매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앱 서비스가 생겼다. 서비스를 개발한 건 정부가 아닌 '시민 해커'들이었다.
200여 명의 시민 해커 조직은 행정안전부 산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당시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제공한 마스크 재고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공적 마스크 제도 시행 6일 만인 3월 11일 공적 마스크 앱을 완성해 냈다. 시민들은 더 이상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됐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시민 해커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민 해커는 정부의 공공데이터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 해킹'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새로운 형태의 시민참여 방법인 이 시민 해킹은 2000년대 말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시민 해킹 단체인 '코드포아메리카(CodeForAmerica)' 설립 이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에 시민 해킹 단체 '코드나무(CodeNamu)'가 설립된 뒤 곳곳의 시민 해커들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웹사이트', '메르스 확산 지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그중에서도 공적 마스크 앱은 정부와 민간 기업, 시민 해커들이 모두 협력해 성공한 모범사례다.
공적 마스크 앱을 만든 200여 명의 시민 해커들은 그해 바로 시민 해킹 커뮤니티 '코드포코리아(CodeForKorea)'를 결성했다. 코드포코리아는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에도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기후위기나 산업재해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 해킹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코드포코리아의 목표는 더 많은 이들이 시민 해커가 되도록 해 시민 해킹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 그 첫 시도는 지난 10월 27일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2회 코드포코리아 콘퍼런스다. 콘퍼런스는 코드포코리아 밖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시민 해킹을 해 온 이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웹사이트'를 만든 김강민뉴스타파 기자(38),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데이터를 기록하는 캠페인을 해 온 오동운(28), 김영민사회적협동조합 빠띠 활동가(51) 등 각계각층의 시민 해커들이 모였다.
학교 매점을 이용하며 느낀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독점 결제 솔루션 '디미페이' 개발에 참여한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이하 디미고) 학생들도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디미고 내 매점은 운영시간은 짧고 공간은 협소한 데다 재고는 적고 현금 결제만 가능해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디미고 학생들로 구성된 디미페이 개발팀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전자기기 및 온라인 결제 이용 실태를 조사했다.
전교생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발팀은 안면 인식으로 학생들이 편리하게 결제를 할 수 있는 앱인 디미페이를 만들어냈다. 학교생활 속 느끼는 문제를 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을 통한 시민 해킹으로 직접 해결한 것이다.
이날 코드포코리아 콘퍼런스에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시민 해커들도 참석했다. 지역의 복잡한 청년정책 관련 공공데이터를 한데 모아 부산 지역 청년정책을 쉽게 설명하는 인공지능 챗봇을 만든 사례도 소개됐다.
부산에서 시민 해커들이 모이고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온 김광휘 패스파인더 대표는 "(코드포코리아가) 홍보가 많이 돼서 (서울을 넘어) 지역에서도 많이 참여해 좀 더 영향력이 커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 해킹은 이미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과연 코드포코리아는 곳곳의 시민 해커들을 한데 모으는 조직이 될 수 있을까. 대만의 시민 해킹 커뮤니티 '거브 제로(g0v)'는 시민 해커들을 모으는 데 성공한 사례다.
거브 제로는 2012년 복잡한 정부 예산 관련 공공데이터를 일반 시민들이 알아보기 쉽게 시각화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 해커들이 결성했다. 거브 제로는 격월로 시민 해커들이 모일 수 있는 행사를 열고, 공유오피스나 메이킹 스페이스 등 시설을 통해 대도시를 넘어 지역 곳곳에서도 시민 해커들이 모이도록 해 왔다.
어느덧 거브 제로에는 개발자, 학자, 디자이너, 변호사, 기자, 학생 등 13000명 넘는 시민 해커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 예산 데이터를 시각화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대만의 시민 해커들은 13000명 넘는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공적 마스크 앱을 만들며 주목받기 시작한 한국의 시민 해커들 역시 이제 더 넓은 범위의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한다. 과연 이들은 흩어진 데이터를 모으듯 흩어진 서로를 한데 모을 수 있을까.
신정원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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