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의 문자가 있는 예술] 배치 이야기①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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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의 문자가 있는 예술] 배치 이야기① 수사학

문화매거진 2023-12-01 09:27:01 신고

[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지난 프리즈, 키아프 탐방글들을 다시 보니 ‘예술’, ‘예술작품’, ‘미술품’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한 것이 생소했다. 피어나고 지는 잎사귀나 구름과 어우러진 달, 누군가의 온화한 표정과 손짓을 보며 예술이라 칭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글을 쓴답시고 어쭙잖게 특정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예술이라는 말을 배제하고, 다시 유정의 작업 고민으로 돌아오겠다. 이번 편은 문자가 있는 작업 이전의 구상단계에서 시작해본다. 요소들의 배치 이야기이다.

▲ 풍성한 시간의 시작, 순지에 채색 및 은박, 64.5x82.5cm, 2023, 글씨를 쓰는 시간보다 글씨가 쓰일 도형들의 배치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며 작업하는 것 같다 / 사진: 유정 제공
▲ 풍성한 시간의 시작, 순지에 채색 및 은박, 64.5x82.5cm, 2023, 글씨를 쓰는 시간보다 글씨가 쓰일 도형들의 배치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며 작업하는 것 같다 / 사진: 유정 제공


배치. 감각에 의존하는 과정이며, 작업에 넣을 글을 쓴 후의 다음 단계이기도 하다. 쓴 글을 계속 읊조리며 비워둘 곳과 채울 곳의 도형들을 배치하는데, 여러 모양의 도형을 둘 자리로 이리저리 오랜 고민을 하곤 한다. 화판은 그대로 둔 채 내 몸만 앉았다 일어났다 누웠다 기울이며, 도형을 이리저리 상하좌우대각선으로 놓아 본다. 한 번 움직임은 보통 1mm같이 잘 보이지 않는 이동만 하며 화면을 살핀다. 미세한 차이일지라도 도형을 중심으로 사방의 여백이 얼마나 남느냐에 따라 관객이 가질 시선이 불편할지, 편할지 따져 본다.

이 과정을 오로지 감각으로 진행해오다 재밌는 책을 발견했다. ‘배치의 미학(레오나르드 코렌 저, 박영순 옮김, 교문사)’이라는 책이다. 정물 일러스트 여러 컷에 대해 수사학 이론을 바탕으로 사물의 위치를 설명한 내용이다. 사람이 보기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심미적 요소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는 게 수사학이라는데, 다음과 같은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수사학 :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효과적, 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네이버 어학사전),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한국현대문학대사전)

책에서는 이 수사학이라는 방법을 바탕으로 ▲우선순위, ▲정렬방식, ▲감각요인, ▲은유, ▲수수께끼, ▲스토리, ▲연결성, ▲여운이라는 여덟 가지 기준을 두고 화면을 설명한다. 

▲ 배치의 미학 / 사진: 교보문고 제공
▲ 배치의 미학 / 사진: 교보문고 제공


화면(이미지 또는 작품)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이 보이는가 : 우선순위
사물들이 화면 가운데 놓여있는가, 수직수평 등으로 배치되어 있는가 : 정렬방식
색깔이 무겁게 느껴지는가, 칠해진 질감이 부드러워 보이는가 : 감각요인
그려진 요소들이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가 : 은유
왜 이렇게 평범한 요소들을 배치해 놓았는가(중요한 것인가? 그냥 그린 것인가?) : 수수께끼
수수께끼에서 더 발전된 이야기. 역사, 정치, 신화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가 : 스토리
앞의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설명 : 연결성
연결성을 넘어 기억에 남게 하는가 : 여운

“그림은 공부하고 봐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늘 받고 있다. 위의 여덟 가지 기준이 이에 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한 가지를 우선순위에 두면 좋겠다고 말할 것 같다. 마지막 요소, 여운.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작가와 함께 작업들을 즐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자신의 작품이 분석되기보다는 마음의 파동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즐거워한다. 관객과의 공감과 그로부터의 영감에 환희를 느끼며. 그리고 관객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떠올릴 만큼 내 작업이 여운을 남겼는가를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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