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한국ESG기준원이 제시한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성적표는 업계의 양극화 양상을 다시 한번 비춘 꼴에 지나지 않았다. ESG 경영에서 낙제점을 받은 기업들의 상당수가 중소제약사와 바이오텍에 쏠린 것으로 나타나서다. 이같은 형국은 기업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천편일률적인 잣대라는 지적과 함께 그 기준에 대한 의문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한국ESG기준원(KCGS)이 실시한 2023년 ESG 평가에 따르면 제약바이오 기업 중 A+(매우우수) 등급을 받은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케미칼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환경 등급 A, 사회 등급 A, 지배구조 등급 A+ 등급을 받았고, SK케미칼은 환경 등급 A+, 사회 등급 A+, 지배구조 등급 A를 받았다.
ESG 통합 A등급(우수)에는 LG화학,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팜, 동아쏘시오홀딩스, 동아에스티, 유한양행, 일동홀딩스, 한독, HK이노엔, 에스티팜 등 누구나 알 만한 총 10개사가 이름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5개사에서 1년 만에 2배로 늘어난 수치다. 유한양행, HK이노엔, 한독, LG화학 등도 새롭게 A등급을 거머쥐었다.
B+(양호), B(보통) 등급을 받은 중위권 기업 31곳 중에는 셀트리온, GC녹십자, 한미약품, 종근당, 대웅제약 등이 포함됐다. 제약바이오 연매출 1조 클럽에 속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ESG 등급 중상위권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KCGS가 조사한 제약바이오 기업 중 65곳은 하위권인 C(취약), D(매우 취약) 등급을 받았다. 조사 대상 106곳 중 61.3%에 달하는 수치다. C, D등급은 사실상 낙제점이다. ESG에 대한 활동이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 산업이 ESG 경영에서 후발주자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산업에 아직 ESG 경영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제야 수조원대 매출을 기록하는 기업이 나올 정도로 타 업계에 비해 규모가 작다 보니 ESG 경영의 필요성과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C·D 등급을 받은 기업 대부분이 중소제약사와 바이오텍이라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ESG 등급 평가는 상장사에 대해서만 진행한 것”이라며 “아직 상장하지 않은 바이오텍, 중소 제약사들의 ESG 경영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규모에 따라 ESG 경영에도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ESG 평가 기준에 대한 의문이 업계 내에서조차 일기 시작했다. 동시에 제약업계가 전반적으로 영세한 환경에 놓여 있어 ESG 경영 시도 자체가 어렵다는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ESG 경영에는 일정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 일각에서는 체질 개선할 여유가 있는 곳은 대기업뿐인데도 기업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제약바이오 업계는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ESG에 대한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특히 바이오벤처는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인 만큼 현재의 ESG에 대한 요구는 산업 특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대규모 업체들은 별도의 ESG 경영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협회 차원에서도 내부적으로 이들의 가이드라인을 협회사들에게 공유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벤처들에게 같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획일화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 부회장은 일관된 기준이 아닌 산업·기업별 특성에 반영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그는 “평가에는 업종의 특성과 회사의 규모가 고려돼야 한다”며 “매출을 기준으로 하거나 대기업·중견기업 위주로 평가가 구성돼야지 그 이하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중소 제약사와 바이오벤처에서는 중견·대기업에 비해 ESG 경영에 투입할 인력이 적어서 좋은 평가를 받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토로가 이어진다. 기업 규모 특성상 ESG 경영 성과가 실질적인 기업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데 평가만을 생각해서 ESG에 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중소 제약사 관계자는 “ESG 경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지만 해외 사업 비중이 크지 않으면 ESG 경영 성과가 회사 운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동시에 ESG 경영에 인력을 배치할 여력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가 결과가 좋게 나오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와 같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평가 기준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한국ESG기준원 관계자는 “올해에는 ESG 경영을 선제적으로 실천해 온 기업들의 지속적인 ESG 관행 개선과 ESG 정보공개에 참여하는 기업의 확대로 상위권 기업 비율은 증가하고 D등급에 해당하는 기업의 비율은 감소했다”며 “다만 공개된 ESG 정보의 질적 수준 미비 등 ESG 경영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이 다수 존재해 상·하위권 기업의 편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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